한국인이 간직한 첫사랑의 원형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 해 둔 것이었다.
바보 같은 것, 바보 같은 것.
— 황순원, <소나기> 중에서 —
1.
한국 남성에게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던지면, 열에 아홉은 개울가 징검다리에 앉아 있는 한 소녀를 떠올릴 듯하다. 그만큼 황순원의 <소나기>(1953년)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한국적 첫사랑의 유전자를 각인시킨 설계도와 같다. 이 설계도에는 기막힌 도식이 숨어 있다. 순박한 소년이 범접하기 힘든 고귀한 신분의 소녀를 우연히 만나고, 짧지만 강렬한 비일상의 시간을 공유한 뒤, 결국 죽음과 같은 불가항력적 힘에 의해 영원히 갈라선다는 문법 말이다.
2.
이 도식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영화 <건축학개론>(2012년)에서도 반복된다. <소나기>에서의 ‘봉건적 신분 격차’는, 이 영화에서 강남 음대생과 강북 공대생 사이의 ‘세속적 심리 거리’로 고스란히 치환된다. 소나기를 피해 들어갔던 수숫단은 서울 변두리의 버려진 빈집과 교외 철로 변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짧은 교감은 치기 어린 오해와 군 입대라는 ‘타의’에 인해 끝내 단절된다. 4백만 명이 넘는 한국인은 이 오랜 도식에 속절없이 반응하며 다시금 가슴 한구석을 내어주었다.
3.
이 도식은 한국인에게 첫사랑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이 원형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35년에 발표된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만난다. <소나기>와 비교하면 남녀의 역할이 바뀌어 있지만, 이 작품은 1961년 영화로 제작되며 우리 식 첫사랑 도식의 완벽한 초기 모델로 자리 잡았다. ‘사랑손님’이라는 근대 지식인과 ‘어머니’라는 봉건적 굴레에 갇힌 미망인 사이의 간극은 그 자체로 넘기 힘든 신분적 격차다. 옥희를 매개로 몰래 건네지는 삶은 달걀과 꽃다발 그리고 풍금 소리는 수수밭의 소나기처럼 찰나의 비일상적 교감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 역시 ‘어머니’라는 윤리적 억압과 사회적 시선이라는 거대한 타의에 의해 가로막힌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손님을 뒷산에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은, 이후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의 엇갈린 운명이나 영화 <클래식>(2003년)의 빗속 질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유실’의 전형이 되었다.
4.
서구적 첫사랑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교하면 우리 방식의 특수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셰익스피어의 연인들은 가문의 원한이라는 외부적 장애물에 맞서 독약을 마시는 극단적 투쟁을 택한다.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 금기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스스로를 불태우는 ‘실패한 혁명’이자 뜨거운 폭발이다.
반면 한국적 원형은 투쟁하기보다 순응하고, 쟁취하기보다 안으로 삭여낸다. 서구가 벽을 허물려다 산화하는 ‘비극’에 집중한다면, 한국은 벽 앞에서 멈춰 서서 그 상실을 정물화처럼 가슴에 품는 ‘애틋한 응시’를 택한다. 한국적 원형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 완성되지 못하고 흩어질 때 비로소 그 결정(結晶)이 영원해진다고 믿는다.
5.
하지만 운명은 언제나 인간의 뒤늦은 깨달음보다 한 발 앞서 달아난다. ‘바보 같은 것’이라며 자책하는 소년의 절규는 한국적 첫사랑 서사가 도달하는 가장 비극적인 지점, 즉 ‘불가항력적인 이별’을 상징한다. 소녀가 죽기 전 남겼다는 지독한 유언—자기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 묻어달라는 그 잔망스러운 부탁—은 이 이별을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박제로 만든다.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 묻은 분홍색 진흙물을 저승까지 가져가겠다는 이 결연한 순수는, 사랑이 현실의 때가 묻기 전에 가장 고귀한 상태로 멈추길 바라는 우리 모두의 집단적 무의식이 투영된 결과다. 어쩌면 우리에게 첫사랑이란 성공했어야 할 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미완으로 남음으로써 비로소 신화로 남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견고한 원형의 자장 안에 한 번쯤 머물렀을 것이다. 비록 신분의 차이가 크지 않았거나 공유했던 비일상의 시간이 강렬하지는 않았더라도, 우리에겐 저마다의 사정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했던 불가항력적인 이별이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것은 영락없는 <소나기>의 도식이며, 우리가 여전히 그 시절의 열병을 몰래 앓는 이유이기도 하다.
6.
숫자가 모든 가치를 증명하는 팍팍한 ‘숫자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문득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가슴속 개울가나 수수밭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세속적 욕망에 찌든 현재의 민낯 뒤에 “나 역시 한때는 저토록 순수한 가치를 갈망했던 존재였다”는 실존적 알리바이를 찾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첫사랑은 지나간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가 끝내 도달하지 못했기에 영원히 늙지 않는 ‘가치론적 젊음’의 성소(聖所)다. 그 상실의 기억이 실은 우리를 가장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