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벨의 다중 정체성과 장자의 ‘방생(方生)’
“나는 경제에서는 사회주의자이고,
정치에서는 자유주의자이며,
문화에서는 보수주의자이다.”
— 다니엘 벨,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중에서 —
1.
가끔 내 안의 내가 서로 충돌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사안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보적이다가도, 다른 지점에서는 고집스러울 만큼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밀기도 한다. 이런 모순적인 모습에 스스로 당황하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의 내면이 단색의 도화지가 아님을 보여주는 당연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다니엘 벨(1919~2011)의 저 유명한 고백은 바로 이런 인간의 입체적인 내면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 준다. 한 인간의 내면에 경제적으로는 정부의 개입을, 정치적으로는 간섭보다는 자유를,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새것보다 오래된 것을 선호하는 다층적인 결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2.
하지만 우리 사회의 흑백논리는 이 입체적인 정체성을 끊임없이 검열해 왔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소문의 벽」은 한국전쟁 당시 밤낮으로 깃발을 바꿔 들어야 했던 마을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을 보여준다.
“낮과 밤의 주인이 달랐다. 낮은 대한민국이었고 밤은 인민공화국이었다. (...) 어느 날 밤,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너는 어느 쪽이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등을 켜려 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등을 켜지 마라!’”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온 “전등을 켜지 마라!”라는 함성은 기회주의적 생존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서늘한 협박이다. 전등(빛)을 차단한다는 것은 상대를 확인하고 대답을 가공할 여지를 없애겠다는 뜻이다. 오직 목소리만으로 네 안의 순수한 ‘색깔’을 즉각 증명하라는, 즉 영혼의 색깔까지 흑백으로 박제하려는 폭력이다. 이 소설이 나온 지 약 50년 후 작가 김훈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를 통해 이러한 양자택일의 허구성을 모질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3.
이 캄캄한 소문의 벽 앞에서 고전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 편을 다시 펼쳐 본다. 장자는 일찍이 이러한 억지스러운 대립의 어리석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세상을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는 분별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강조하며 방생(方生)의 원리를 제시한다. 방생이란 쉽게 말해 이것은 저것이 있기에 존재하고, 저것 또한 이것을 배경으로 태어난다는 상호 의존의 법칙이다. 삶과 죽음, 옳음과 그름은 서로를 밀어내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지탱하며 동시에 생겨나는 짝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세상이 서로 얽혀 돌아가는 방생의 원리를 깊이 이해할 때,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마음가짐이 바로 인시(因是)이다. 어느 한쪽의 깃발을 들라고 강요하는 일방적인 편견에 의지하지 않고, 모든 분별을 넘어서는 ‘하늘의 빛’에 비추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사유의 자유이자 ‘인시’의 참뜻일 것이다.
4.
다니엘 벨이 말한 다중 정체성은 바로 이 장자의 ‘방생’과 ‘인시’의 현대적 변주라고 본다. 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자유, 문화적 전통은 서로 반목하는 적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지탱하는 사유의 겹들이다.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며 상황에 따라 가치를 조율해 내는 태도는 의뭉스러운 기회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흑백의 커튼 뒤에 숨지 않겠다는 당당한 선언이다.
5.
이제 우리는 질문지에 적힌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객관식 인간이 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상대를 식별해 비굴한 답을 내놓으려 전등 스위치를 더듬는 비극도, 전등을 켜지 말라고 소리치며 눈먼 순혈주의를 강요하는 폭력도 모두 끝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전등 아래에서 나의 다층적인 진실을 당당히 드러내는 데 있다. 어둠의 벽을 허물고 쏟아지는 빛 아래서 서로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느 쪽이냐”라는 서슬 퍼런 협박을 넘어, 다니엘 벨과 장자가 함께 거닐었던 그 풍성한 사유의 영토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나는 나만의 전등을 켜고 누군가의 색깔을 아프게 비추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밤, 손에 든 전등의 방향을 가만히 내 안으로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