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선생님, OOO 울어요!”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초등 1학년 키 작은 여자아이가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옆에 아이가 대신해서 아픈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역시 뜨끈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단다. 곧바로 전화기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랑하는 엄마’라는 여섯 글자가 화면에 떴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고만 있었다. 내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여기 *** 학원인데요, OO 이가 지금 열이 많이 나는데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다고 해서 연락드렸어요.”
“아 그래요? 그럼, 선생님 OOO 가방 앞주머니에 해열제가 있거든요. 그거 좀 먹여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찾았어요. 이거 먹일게요.”
해열제를 찾아 먹이고 힘들면 엎드려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한동안 축 처져 있던 아이는 한 이삼십 분이 지나 약기운이 돌자, 기운을 차렸다. 평소처럼 밝고 환한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나도 안심이 되었다.
별일 아니었던 장면이었는데 잔상은 오래 남았다. 학부모님의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아이어머니가 “아, 그래요? 제가 지금 당장 아이를 데려가겠습니다.” 할 거라고 예상했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늘 그렇게 대답했으니까.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뭘 하고 있든 상관없었다. 아픈 아이는 내게 늘 1순위였으므로 당장 달려가 재깍 아이를 찾았다.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먹이고, 집에 가서 편안히 쉬게 했다. 바로 오겠다가 아니라 그냥 해열제를 먹여달라고 부탁하는 말이 내게는 뭐랄까 ‘낯설게’ 들렸다.
더 의아했던 건 너무도 차분한 아이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이런 일을 많이 겪어봤다는 듯 한치의 동요도 없는 목소리. 해열제를 가방에 넣어준 걸 보면 어쩌면 이 엄마는 오늘 전화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프다고 울어도 당장 달려올 수 없는, 그저 꾹 삼키고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는 워킹맘의 심정에 대해 그간 나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일을 포기해야 했던 내 처지에 늘 억하심정이 있었는데 어쩌면 ‘전업주부’로 살 수 있었던 것도 일종의 특권이 아니었을까?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네가 그런 일까지 해야 해?” 란다. 친구는 나를 아끼는 마음에 내 경력에 어울리는 좀 더 그럴듯한 일을 하길 바란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학원 강사이기 이전에 나도 엄마다. 열나는 애 이마 짚어보고 체온 재고 해열제 먹이는 건 엄마로서 내가 늘 해왔던 일이다. 이렇게 다른 엄마/여성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내가 일하는 학원에는 부모님이 둘 다 일하시는 집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엄마 혼자,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 부모 가정도 제법 있다. 엄마도 아빠도 장시간 노동에 붙들려 있는 현 상황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선거 때마다 “초등생 돌봄, 학교가 책임집니다.” 온갖 구호가 난무하지만,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고충은 답보상태다. 돌봄교실도 있고 늘봄 학교도 생겼지만 현실적으로 네 시 이후에 남아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우리 학원에 오는 아이들의 시간표는 돌봄 혹은 늘봄, 방과 후 수업, 피아노 미술 태권도 같은 예체능 학원, 교과 학원까지 꽉 짜여있다. 그나마 6시에 집에 갈 수 있으면 다행이다. 부모님이 매일 저녁 늦게까지 일하셔야 하는 집 아이들은 우리 학원을 마치고 졸업한 어린이집에 야간 돌봄을 간다. 거기서 저녁과 간식을 먹고 놀고 있으면 저녁 9시가 되어 퇴근한 부모님이 데리러 오신다고 한다. 매일 아침 집에서 나오면 다른 아이들이 잠에 들 때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피곤하고 힘들 법도 한데, 그래도 해맑고 씩씩해서 고맙다. 나는 이 아이들이 잠시라도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쉬는 시간에 줄넘기할 때 숫자도 크게 세어주고, 술래잡기하면 심판도 봐 준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에 애정을 담아 건네려고 노력한다.
보습학원에서 일하기 전에는 “학원 = 선행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웬만한 건 집에서 엄마표로 가르쳤기에 학원을 많이 보내지도 않았고, 학원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몰랐다. 올해 초 갑자기 학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내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사안을 바라봤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남보다 앞서나가려고 하는 사교육도 있지만,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사교육도 있다는걸, 공교육에서 다 할 수 없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교육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책상에 앉아 일방적으로 공부를 강요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롭고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면 더 좋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묻는다. 이제 학원 일을 하게 되었으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도 고민을 많이 했던 터라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하면서 사교육에 종사하는 것이 일견 모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학원에서 일하면서 또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고, 무엇보다 여기 우리 아이들이 있다, 고 말해주고 싶다. 이 세계에 속하면서 세계 너머를 보는 일, 선명했던 것이 흐릿해지다가 다시 넓어지는 일, 어쩌면 살아가는 것이 다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