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드 <소년의 시간> 리뷰
분명히 좋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 작품이 있다. 내게는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그랬다. 로튼 토마토 지수 100%, 에미상 6관왕, 지인들의 강력 추천 릴레이가 이어졌지만 이상하게도 선뜻 재생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드라마 한 편을 진득하게 앉아서 볼 시간적 여유, 아니 이 작품이 던질 묵직한 질문을 마주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나눌 주제로 <소년의 시간>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모임을 사흘 앞둔 주말 밤, 자기 전 한 시간을 확보해 남편과 TV 앞에 앉았다. 내 앞에는 건조기에서 막 꺼낸 빨래 더미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눈은 화면에 두고 손은 빨래를 개며, 마지막 남은 집안일을 처리하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깨달았다. 이 드라마는 그런 얄팍한 멀티태스킹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소년의 시간>은 시작부터 끝까지 나의 온전한 집중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시작은 강렬했다. 이른 새벽, 영국 북부 지방의 두 명의 경찰관이 가정집 대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체포 대상은 13살 소년 제이미 밀러, 죄목은 무려 살인죄다. 1화는 소년이 체포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원 테이크로 따라간다. 나 역시 13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영문도 모른 채 허둥거리는 부모의 모습에 자연스레 나 자신을 대입하게 되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체포를 집행하고, 머그샷을 찍고 혈액을 채취하는 장면을 보면 분명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수사에 임하고 있을텐데 나는 1화가 끝날 때까지 ‘과연 이 아이가 진범일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동급생 소녀를 칼로 일곱 번이나 찔러 살해했다기엔, 제이미의 얼굴은 너무나 앳된데다(열세 살은커녕 열 살 정도로 보인다) 끝까지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2화의 무대는 학교로 옮겨진다. 경찰은 제이미가 다니던 학교에서 탐문 수사를 진행한다. 이미 CCTV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상황에서, 이들의 관심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다. ‘왜, 어떻게 이 아이는 살인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 실마리를 찾고 싶어서다.
이 회차를 보며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영국 공교육의 현실이었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영국에 거주하던 시절, 주변의 한국 부모들은 어떻게든 사립학교나 시험을 봐야 들어갈 수 있는 그래머 스쿨로 아이를 보내려 애썼다. 공립 중·고등학교는 면학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고, 마약이나 흉기 소지로 불시에 가방 검사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당시에는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는데, 복장불량인 학생들, 수업에는 관심없고 수시로 자리를 비우는 교사들, 괴롭힘이 난무하는 교실 같은 드라마 속 학교 풍경은 그 때 들었던 말들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놀란 점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학교에 간 경찰들이 계속 헛다리를 짚자, 보다 못한 경찰관의 아들이 SNS 속 별 뜻 없어 보이는 기호와 표식들이 실제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해 준다. 호감의 표시로 보였던 것이 조롱과 괴롭힘의 신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경찰관은 큰 충격을 받는다. 성인이 된 뒤 인터넷을 접한 '디지털 이민자' 세대와,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디지털 원주민'인 아이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아득하다는 걸 드라마는 가감없이 보여준다.
3화는 상담실 안에서의 대화가 전부다. 여성 심리학자와 제이미, 단 둘만 등장하지만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제이미는 결코 쉬운 대화상대가 아니다. 제이미는 끊임없이 상대를 떠보고, 무시하고, 때로는 애원하다 위협하기까지 한다. 특히 남성성에 관한 질문 앞에서 그는 의자를 던지며 폭주한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라 해도, 살인을 저지른 전력이 있는 상대가 그렇게 폭주할 때 상담사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상담이 끝난 뒤 그녀가 흘린 눈물에는 공포와 수치심, 그리고 끝났다는 안도감이 뒤섞여 있는 듯 보였다.
부모로서 가장 마음에 남은 회차는 마지막 4화였다. 드라마는 제이미가 살인에 이르게 된 과정을 더 파헤치는 대신, 사건 이후 13개월이 지난 가족의 일상으로 시선을 옮긴다. 제이미가 체포된 후 제이미의 아버지는 50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가족들은 어떻게든 그 하루를 무사히 보내려 애쓴다. 아들이 소년원에 있는데 생일이 무슨 의미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국에서 50번째 생일은 그냥 넘길 수 없는 큰 이벤트다. 엉망진창이 된 생일날, 축하 전화를 걸어온 아들과 통화를 마친 뒤 제이미의 아빠는 아이의 빈방에서 결국 눈물을 쏟는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애썼지만, 그래도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회한이 나에게도 깊게 와 닿았다.
이제 십 대에 들어선 두 아들을 키우며, 아이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매와 여자 친구들로 둘러싸여 자랐던 나의 소녀 시절과 달리, 남자 아이들의 세계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 분명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지켜봐 온 사람은 나일 텐데도 말이다. 사춘기니까 어쩔 수 없다고, 때가 되면 지나갈 거라고 넘어가던 나에게 <소년의 시간>은 분명히 말한다.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말을 걸라고. 점점 파고드는 인터넷과 게임의 세계, 왜곡된 남성성의 압박, 학교 안의 괴롭힘과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말라고. <소년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부모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의 방문을 두드리고 한번 더 말을 걸어야 할 시간. 어색함을 견디며 너에게 다가가야 할 시간. 다행히도 아직은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