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우리 집 이름은 ‘에스더 피아노’.
초등학교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피아노 교습소 문을 열면, 4~5개의 칸막이 안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하나씩 들어있었다. 그 공간과 연결된 미닫이 문을 열면, 우리가 살아가는 집 안방이 이어졌다. ‘에스더 피아노’는 곧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처녀 시절부터 피아노를 가르쳤기 때문에, 나는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손끝에 전해지는 건반의 진동과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태교를 받았을 것이다. 자라면서도, 원하든 원치 않든 다른 사람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늘 듣고 살아야 했다.
방학이면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운 것은 바이엘과 체르니의 선율이었다. 너무 많이 들은 탓에, 악보의 첫 부분만 봐도 곡의 처음과 끝을 이미 알 수 있었다. 나는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싶지 않았고, 필요한 만큼만 연습하며 책 읽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가 끝나면 늘 들르던 동네 오락실에서, 당시 유행하던 ‘보글보글’이라는 게임의 배경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내 동생을 보았기 때문이다. 악보 없이, 왼손은 반주를, 오른손은 주 선율을 치며 게임 음악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놀랐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생이 음악적으로 약간 천재적이지 않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들은 음악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해 연주하는 모습은, 그때까지 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나는 질투심 때문에 이전보다 피아노 연습에 더 열심히 매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은 내 의지를 꺼뜨리는 완벽한 막 타를 쳤다.
동생은 슈퍼마리오 게임의 물속 스테이지 음악을 연주했다. 근음의 개념을 혼자 깨우치고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가며 연주하던 초등학교 3학년 짜리를 보며, 나는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스더 피아노'의 학생들 모두 모여서 그 연주를 구경했다. 우리는 바이엘과 체르니, 하농 책을 보며 연습만 했지, 아무도 그런 식으로 피아노를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피아노 연습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훗날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보며 표정이 굳어지는 장면을 볼 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살리에르가 왜 그렇게 당혹스러워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동생은 시청 공무원이다.
음악과 무관한 직업을 선택했지만, 성인이 되어 배운 바이올린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피아노 연주를 인터넷에 올리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
특히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아라베스크’를 연주할 때는 입이 딱 벌어졌다.
반면 나는, 공개 수업에서 아이들의 노래에 맞춰 ‘학교 가는 길’을 반주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아주 오래 연습해야...
엄마의 피아노 건반.
분명 두 명 다 뱃속에서 그 진동을 느꼈을 건데
한 놈이 싹 다 가져갔음이 분명하다.
아니지, 내가 3년 먼저 나왔으니,
동생이 뒤늦게 다 가져갈 순 없었을 것이고...
엄마가 숨겨놓았다 동생에게 몰아준 것이 분명하다.
엄마 탓이나 하고 말아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