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력 탈출기>가 쓸모없어지도록
이 브런치의 유입키워드 중 꾸준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검색어가 있는데, 바로 '물경력'이다. 이 유입키워드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복잡해진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물경력을 의식하거나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애초에 물경력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일이 있고 난도나 전문성 등은 제각각이다. 다 각자의 분야에서 각 조직이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난도가 높든 낮든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해서 돈을 받고 생계를 꾸리는 이 일련의 흐름에서 왜 물경력이니 불경력이니 하는 말로 구분을 짓고 불안함을 느껴야 할까. 설령 내가 하는 일이 '물경력'이라 한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문제의 이유를 들여다 보면, 낮은 연봉 인상률, 고용의 불안정성과 같은 현실적인 면과 자기효능감 및 공헌감 부재, 인정욕구 불충족 등의 정신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신적인 측면은 업무 밖에서 자아 실현을 위한 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불안은 계속된다. 결국 더 임금이 낮은 인력으로 언제든 대체가 가능하고, 전문성이 낮기 때문에 이직도 쉽지 않다는 점이 물경력에 대한 문제 의식의 핵심이다.
이 시점에서 묻고 싶다. 난도가 비교적 낮은 일을 한다고 해서 경력을 인정받기 어렵거나 고용안정성을 걱정해야 하는 현재의 고용 환경과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인가? 물경력은 이런 부조리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의 단어다. 난도가 낮든 높든 합법적 노동을 하는 한 생계에 위협을 받거나 비관하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와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하는 게 이치에 맞다. 만약 우리가 '물경력'이라고 부르는 일을 노동 의지가 있는 한 지속할 수 있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면 과연 지금처럼 물경력을 불안해 할까? 아마 물경력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물경력 자체가 아니라, 물경력으로는 불안하지 않게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부 다 사회 탓이니까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조리를 인식하고, 자괴감이나 불안에 잠식되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물경력 탈출기'를 쓰기 시작했다. 당장 숨만 쉬어도 월세와 생활비를 내야 하는 소시민에게 커리어패스는 생계의 문제다. 물경력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현 세태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현실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물경력을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지나친 경쟁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물경력이 불안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현실이 납득 가지 않는다고 생계와 직결되는 커리어패스를 내팽개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환경과 사회 탓을 하면서 무력감이나 허무주의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삶을 더욱 지치게 만들 뿐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행동하기 시작하자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세상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예측하기도 어렵다. 현재의 불경력이 하루아침에 물경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큼 든든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지름길을 찾는 것도 좋지만, 지름길을 찾느라고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것보다는 일단 길을 나서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길을 만들다 보면 점점 물경력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