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력 포지션 퇴사 그 이후
물경력 탈출의 핵심은 사실 퇴사 이후가 아닌 재직 기간동안에 달려있다. 멘탈 관리를 하면서 다른 곳에서도 통용될만한 자신의 무기를 갈고닦아두는 것이다. 스포츠로 치면 훈련 기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퇴사 이후는 일종의 실전을 치르는 개념에 가깝다. 지금까지 갈고닦은 기량을 잘 정돈해서 세상에 내놓는 시점이다. 훈련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전에서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곤 한다. 내가 그랬다.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한 활동과 자기계발을 꾸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소개서나 포트폴리오에 어떤 식으로 녹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몇 개월을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대략적으로 줄여 한 줄로 적는 식이었다. 물론 배포까지 마친 웹 프로젝트 주소나 깃허브 링크를 제출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넣지는 않았다. 수료했던 여러 교육도 강의명 정도를 적어넣었다. 어떤 것을 배웠는지 자세하게 쓰기에는 구구절절해 보일 것 같았고 과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키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한 이력이 그대로 커리어가 되는 경우라면 경력기술서를 잘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커리어 입증이 될 수 있겠지만 물경력자는 상황이 다르다. 물경력자는 경력기술서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나는 커리어를 전환한 이직이었기 때문에 더욱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나름 재직 중에 자격증도 땄고 업무 관련 교육도 많이 들었고 프로젝트도 많이 참여했으니 대략적으로 적어두면 되겠지’라고 타협했다. 사실 적극적으로 자기 어필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데이터 분석 중에서도 내 주력 분야에 맞는 기업 위주로 지원을 했고 종종 면접을 보기도 했다. 몇 번의 면접을 겪으면서 내가 제출한 포트폴리오로는 충분한 정보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물경력이라서 경력기술서에 쓸 내용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신 일하면서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업무에 임했고 커리어와 관련해 얼마나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관점에서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 업무를 골라서 포트폴리오에 정리했다. 어떤 기술을 썼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레이아웃을 편집했다. 개인적으로 진행한 토이 프로젝트와 공모전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도 비슷한 형식으로 톤앤매너를 맞춰서 정리했다. 저작권이나 업무 기밀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 선에서 프로젝트 구현 이미지를 첨부해 가시성을 높였다. 만들어 놓고 나니 내가 봐도 이 포트폴리오를 낸 지원자가 궁금해질 것 같았다. 눈으로 보이는 형태로 정리해 두고 보니 지금까지 정말 꾸준히도 노력해 왔구나 하는 자부심이 들었다. 새로 만든 포트폴리오로 지원하면서는 이전보다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이 마인드셋은 굉장히 중요하다. 서류 합격률이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우리도 지리멸렬하게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겠는 텍스트가 나열되어 있는 것보다는 보기 좋게 편집된 콘텐츠에 눈이 더 간다. 그렇다고 속 빈 강정처럼 내용(경력, 프로젝트, 교육, 활동 내용 등)이 부실한데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역량과 경험 내용을 잘 어필하는 방식에 대해 고심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경력자라면 모를 리 없다. 어필하려는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을 모색해서 실행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업무 능력이라는 것을. 실제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이 부분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들조차도 이직할 때에는 자신을 어필하는 데에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는 적극적으로 자기를 어딘가에 어필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유형이 있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최대치로 어필하지 않아서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하게 노력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어필해야 할 때는 잘 어필하는 것도 필요하다. 《출근길의 주문》이라는 책에 ‘자기과시형이 되기 싫어서 자기 홍보를 열심히 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데, 견실한 이들이 ‘관심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면 그것을 진짜 자기과시형 인간들이 채간다’는 내용이 있다. 취업과 이직에도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들 크고 작은 성취들이 있을 것이다. 취업이나 이직할 때에 자신의 성취를 어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행해야 할 것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본인의 인정이다. 그 성취가 크든 작든, 업무 효용성이 있든 없든 노력해 나가는 삶의 태도 자체가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알리는 것을 등한시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알아보는 곳이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