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력이라서 가능한 것이 있다

물경력 자리라서 가능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다

by 연두초록

흔히 말하는 물경력은 전문성이 낮고 대체가 어렵지 않은 일을 가리킨다. 물론 업무의 종류나 강도, 회사 분위기 등 물경력 상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우선 내 경우를 말하자면 업무가 물경력인 대신 정시 퇴근을 하는 분위기였다. 정시 퇴근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를 많이 겪었던 지라 꽤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물경력이 될 것임을 알고도 그곳을 몇 년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워라밸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퇴근 이후의 시간은 커리어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보냈다. 물리적인 시간 자체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에너지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보통 물경력 자리는 핵심 업무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할 때 쏟는 에너지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에서의 에너지 소모가 크지 않으면 퇴근 이후에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는다. 생계에 필요한 월급은 벌면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물경력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업무에 대한 불만을 줄이자 업무 능률도 더 오르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요점은 현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을 발견하고 최대한 커리어 향상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활용하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나에게는 물경력인 대신 워라밸이라는 장점을 발견했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현 상황에서 내가 활용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누리자. 이 사고방식의 포인트는 현 물경력 상황에 대한 인식의 초점을 불만과 불안에서 긍정과 향상으로 바꾸는 데에 있다. 불만과 불안에 휩싸이면 일단 나 자신이 괴로워진다. 당장 물경력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생계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왕 다녀야 한다면 괴롭게 다니기보다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패스를 끌고 가기 위한 시도를 하는 편이 이롭다. 뭔가 방향을 설정하고 노력을 시작하는 데에는 향상하려는 긍정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물경력의 폐해(?) 중 가장 큰 부분은 사실 커리어패스에서의 불리함이라기보다는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자기효능감과 공헌감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면 퇴사는 안(사실은 불안해서 못)하면서 불만만 많은 썩은물이 되기 십상이다. 제발 그렇게 되지는 말자.


‘물경력이라 앞으로 뭐해야 할지 막막한 나’보다는 ’4대 보험의 안락함 속에서 다음으로 도약하는 나’가 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내 경우 퇴근 후 개인적인 토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웹사이트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어렵고 오래 걸렸다. 만들어 놓고 보니 뿌듯했고 포트폴리오의 꽤 쏠쏠한 일부가 되었다. 해커톤과 같은 공모전에도 참가했다. 3개월 정도 거의 퇴근 후 개인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물경력이었던 당시의 회사 업무에서 얻지 못한 프로젝트 경험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때로는 퇴근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한다는 것에 지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멀리 여행을 떠나 휴식을 취했다. 물경력 자리라서 다소 연차를 오래 쓰더라도 업무 인계가 필요하지 않아서 해외 여행도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상황은 각자마다 너무나도 달라서 누군가는 물경력이어도 워라밸은커녕 야근의 연속일 수도 있다. 혹은 업무 성격 자체는 물경력인데 회사 내에서 핵심 업무에 해당해서 에너지 소모도 크고 업무 강도도 높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케이스들이 물경력 계열(?) 중에서 가장 탈출하기 어려운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에너지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물경력에 워라밸이 좋지 않아도 다니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내기를 권한다. 업무 강도가 높은 곳에서 일했다는 경험 자체가 어떤 일을 하든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자신이 하는 일 자체가 단순 업무거나 전문성이 낮다고 자기 자신을 ‘후려치는’ 경우가 있는데, 일정 기간 이상 회사라는 조직에서 조직원들과 더불어 일하고 업무를 수행했다는 경험과 성실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업무 스킬이다.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떤 물경력이든 회사에서는 필요하니까 만들어진 자리일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무의미해보이고 회사에 하등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는 경우라도 들여다보면 조직 관리 측면의 필요에서 만들어진 자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는 괴로울 수 있다. 일단 회사에서 필요하니까 업무를 할당한 것이고 월급을 받는 이상 그걸 수행하는 것이 기본적인 노동 계약이다. 성취감이나 공헌감같은 노동에서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요소들도, 커리어패스도 당연히 중요하다. 단점과 장점을 저울에 달아보고 도저히 단점을 상쇄할 수 없다면 결단을 내리는 편이 좋다. 조금 기울어 있긴 하지만 상쇄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다음’을 생각하고 시도해 나갔으면 좋겠다. 조금 더 내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기울기를 만들기 위한 다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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