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초록 Oct 25. 2021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 직장인이 살아남는 법

《출근길의 주문》 리뷰


출근길의 주문

저자 이다혜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간일 2019.09.30

페이지 288


읽는 내내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담아두거나 친구들끼리 만나 욕하기만 했었던 회사 생활의 불편하고 불쾌한 실상을 기자의 글발로 시원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회사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부당함을 꼬집는 ‘사이다’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준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책의 제목이 ‘출근길의 주문’이긴 하지만 앞에 ‘여성 직장인’이라는 말이 생략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성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대표적 조직인 회사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고 일해야 하는지를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 그것도 개인의 안녕만을 위하지 않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조언을 주고 있어서 일종의 인류애를 느꼈다.


책임지는 자리에 여성들이 많이 도달해야 다른 여성들을 능력에 맞는 자리에 배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것이 광의의 협업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선배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신입으로 입사하는 직원의 성비는 비슷한데 직급이 높아질수록 급격하게 줄어드는 여성 비율을 보면서 회사라는 조직이 여성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새삼 실감한다. 아직도 대기업 임원으로 여성이 발탁되면 신문 보도에서 '여성 임원 발탁'임을 강조한다. 무려 2021년인데도 말이다. 내가 이 부당함을 버티고 책임지는 자리에 도달해야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아직은 버거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이 허락할 때까지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렇다면 내가 겪은 어려움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는 시도를 하고 싶다.


1. 말끝은 분명하게
2.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자
3. 타인의 불행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지 말 것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말끝이 흐리는 습관이 생겼다. 아닌 건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잘 몰랐던 것이다. 생각보다 나같은 사람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은 일의 성과보다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부터 이미 프로라고 하기 어렵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꾸준히 단련하고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일정한 아웃풋을 만들 수 있으며 자기 자신과 타인의 실력과 능력치를 가늠해 협업해 용이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모든 중간관리자급 이상의 인간들의 모니터에 궁서체로 붙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많은 이들이 자기가 싫어하는 ‘자기과시형 사기꾼형 미치광이’처럼 되기 싫다는 이유로 자기 홍보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자기 홍보가 아니어도 충분히 일해서 먹고 사니까 굳이 그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견실한 당신이 침착하게 ‘관심 비즈니스’를 손에서 내려놓으면, 그것을 ‘자기과시형 사기꾼형 미치광이’들이 냉큼 채간다.

SNS의 과시성은 내 성격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사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발견되기 힘든 시대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팩폭은 뼈를 때렸다. 심지어 내가 그걸 포기하면 그 자리를 ‘자기과시형 사기꾼형 미치광이’가 채간다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누구 한 사람만 있어도, 한 명만 눈에 보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흔히 전체 직원 성비 대비 직장의 임원 혹은 관리자급의 성비를 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조직의 '유리천장' 유무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현실적인 지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허허벌판에 서 있는 것 같은 막막함과 두려움에서 구해 준다는 것 또한 유의미하다. 내가 그 앞에 있는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자는 용기가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가 아프고 슬프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