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초록 Oct 29. 2021

나 같은 인간들, 부디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일의 기쁨과 슬픔》 리뷰


일의 기쁨과 슬픔 

저자 장류진

출판사 창비
출간일 2019.10.25

페이지 236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리얼한 현실 인식이다. 책의 해설 부분의 분석이 너무나 적확해서 끝까지 공감하면서 읽었다. '장류진의 소설에 등장하는 산뜻하고 담백한 인물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의 작고 평범한 기쁨을 포착해낸다.'는 해설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축의금 오만원을 받았으면 오만원을 돌려줘야 하는 '기브앤테이크'의 원리를 잘 모르는 지인에게 짜증이 난 나머지 축의금을 차액의 선물로 대신한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되자 중고 거래 앱을 이용해 현금화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인물, 다큐멘터리 피디가 꿈이었지만 현실적인 직장을 선택한 <탐페레 공항>의 주인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내 모습 같았으니까.

나를 포함한 직장인들의 흔한 멘트 중 하나가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단순히 일은 하기 싫고 돈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소망으로 바라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노동자로 10년은 넘게 일해야 서울에 집 한 채를 겨우 장만할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을'로 몇십 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절망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백수'를 소망한다. 돈이 없는 백수로 살아가기에는 행복을 누리기 힘든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백수도 아닌 '돈 많은 백수'를 꿈꾸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망을 가진 자들은 그게 불가능한 소망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돈 많은 백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자들이기 때문에 사회 체계와 자신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금수저가 아니라서 회사가 맘에 안들어도 퇴사 대신 자신을 위한 덕질이나 여행을 함으로써 균형을 맞춘다. 4대 보험의 안락함과 자아 실현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저울질을 하거나 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나름 열심히 살아도 효율 '다소 낮음'으로 규정지어진 인간 군상과 현재를 잘 포착했다. 나 또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서글펐고, 조금은 따뜻했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유쾌하지 않은 인간들을 잠시나마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이 그랬듯 부디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고 중얼거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 직장인이 살아남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