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초록 Oct 18. 2021

모두가 아프고 슬프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쇼코의 미소》 리뷰


쇼코의 미소 

저자 최은영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16.07.07

페이지 296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아픔과 슬픔이 한 편 한 편에 다른 형태로 산재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매서운 현실, 전쟁이라는 폭력, 국가 권력의 폭력, 사회문화적 차별과 편견 등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렸다. 읽는 내내 많이도 슬펐고 아팠다.

나에게도 일 년에 한두 번쯤 연락하는 일본 친구들이 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물리적 거리가 멀고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마치 가상의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가깝지 않은 사이이기에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그 생경하면서 신기한 거리감이 떠올랐다. 사람마다 삶의 굴곡진 모양과 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거리감.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거쳐 온 쇼코와 꿈을 향한 여정에 좌절하는 소유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한일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베트남 전쟁의 한국군 파병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다. 전쟁 주도국 여부나 파병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배제하고서라도, 전쟁의 비인간성과 폭력성이 인간의 삶에 주는 아픔과 슬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씬짜오, 씬짜오>는 제 3의 나라에서 베트남 가족과 친밀해지면서 겪는 '개인적 경험'에서 거시적인 메시지를 환기한다. 피해자 입장에 섰던 한일 관계와는 다른 포지션에 서 보는 시각이 신선했다.

인혁당 사건을 배경으로 한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나 세월호 참사를 다룬 <미카엘라>와 <비밀>(<비밀>의 이야기가 세월호 참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견해이다)에서 피해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그래서 더 공감이 갔다. 우리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던 굵직한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은 피해자다. 국가 단위의 폭력 경험은 집단 트라우마를 만든다.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우리는 그 트라우마를 군데군데 안고 살아간다. 서로를 연민하면서, 서로와 유대하면서 살아간다. 《쇼코의 미소》는 그 면면들을 섬세하게 그렸다.

《쇼코의 미소》는 전체적으로 아프고 슬픈 정서가 깔려 있지만 극단적 우울로 치닫지 않는다. 책의 해설에서 작품 세계의 공감력 때문일 것이라 추측하는데, 나 또한 동의한다.

그런데도 이 책의 원고를 한 호흡에 읽고 난 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좀 신기해했다. 절망도 우울도 사람의 삶인 한 불가피한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최은영 작가가 만들어놓은 순하고 맑은 정감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좀더 쉬웠던 것일까. 그래서 내 마음이 따뜻해졌던 것일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탁월한 공감력이 있어 날선 마음들이 잘 감싸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있어서 슬픔과 아픔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쇼코의 미소》의 세계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되 냉소나 체념의 자세가 아닌 점이 좋았다. 적당한 온도와 세기로 보듬어주는 듯한 이 작품 세계에서, 당분간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