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으로는 밥을 못 먹는다는 걸 알게 된 하루
모처럼 휴가날
영화를 보러 갈까
뷔페를 먹으러 갈까
쇼핑을 갈까
안 그래도 작은 나의 두 눈을 부릅뜨며, 윙크하는 척 깜빡이다 0.2mm 정도로만 앞을 볼 정도로 오픈한 채..
느지막이 (원래 기상은 새벽 5시) 배를 긁으며 거실로 나가서 콧노래를 흥얼흥얼 거리고 있는 그때
아빠의 전화기가 온몸으로 자기 좀 봐달라고 으잉으잉 거린다.
"여보세요"
.
"예 아버님~ 데이케어센터예요."
.
"예예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십쇼"
.
"다른 게 아니구요.. 어머님이 집에다 틀니를 놓고 오셔서, 가지고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이가 없으시다네요..?"
.
들었다 나는
여느 60대와 다를 바 없이.. 세상 모든 이 다 듣게끔 스피커폰 흡사한 어마무시 볼륨으로 통화한 아빠 덕분에
보았다 나는
아빠의 미간이 여덟 팔 자로 흉측하게 찌푸러지는 모습을....
느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앞으로 이런 일쯤은 자주 일어날, 대수롭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올해 100살
태어난 년도는 1922년
매일 아침 데이케어센터에서 유치원처럼 통학버스가 와서 등원을 하고 저녁엔 퇴근, 아니 하원을 한다.
아침에 잠깐 방심한 사이에... 할머니가 틀니를 빼고 등원을 했다. 지져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마스크를 집에서부터 장착하고 나가는 바람에 아무도 할머니 입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 는게
비겁한 우리 측 변명
(틀니꼇나안꼇나 쉽게 확인하기 위해 입부분 투명마스크로 교체해줘야 하나.. 가족 모두 심각한 고민 중이다)
자. 여기서 포인트.
자기 엄마면서
아빠는 왜 저렇게 쒹쒹 거리는지 모르겠다.
난 우리 엄마가 틀니 놓고 가면 우리 엄마만 맛있는 거 못 먹으니깐, 열일 제쳐놓고 달려가서 가져다줄 것 같은데 다 내 맘 같지 않은가 보다. 내가 장녀라 그런 건가. 나만 그래? 나만 그런 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머나먼 주방에서 서랍을 온 힘으로 여닫는 소리와 함께 오만 신경질 내며, 위생봉투를 거칠게 쭈~악
찢는 소리가 들렸고,
화가 잔뜩 난 (쒸익쒸익) 아빠의 손에 붙들린
할머니 틀니..
위아래 2짝은....
이산가족 얼싸안듯 다신 헤어지지 않겠다는
꼭 부둥켜 안긴 모습으로 (흙흙)
자기네끼리 주인 찾아가는 걸 어찌 아는 건지
딱딱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ㅋㅋㅋㅋㅋ
주인을 영접하러 떠나갔다.
금세 집으로 돌아온 아빠에게
다시 또 가져다주기 싫으면, 다음부터는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할머니 아 해봐"
라고 꼭 검사하고 차에 태워 보내라고 했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틀니를 잊어버리고 갔다는 사실을 밥 먹을 때까지 전혀 몰랐던 건가... 너무나 신기하다.
아니면,
그냥 잇몸으로 먹으려다 안 씹어지니까 그제서야 틀니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건가..?? (혹시 아시는 분? ㅋㅋㅋ )
이해해보려 고민해봤으나
엄마가 옆에서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나중에 니가 틀니를 해보면 알 거라고 했다.
이 닦으러 가야겠다. 엣헴 틀니 안 하려면 꼼꼼히 닦아야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