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리 내 코를 찌르노! 나쁜 x야..!!

할머니 부끄러워.. 소리 쫌 지르지말그 쫌!! 그믄히있으라그...

by 토토포

2022년이 되자마자 벌어진 다사다난한 여러 일들? 덕분에 경황이 없어 이제야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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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회초리 같은 바람에 양볼을 내어주던 그날.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날.

2022년 집주인이 입주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는데, 아직도 방을 빼지 않는 전세 세입자 겨울이라는 아이.

봄날이 오기 전 2월경 어느 주말이었다.


전날부터 밤을 설친 탓에 기분이 별로였다.


집에 함께 거주하는 말썽쟁이 그녀.

올해 2022년으로 기쁘게도(?) 101살 된 할매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치러야 하는 하루가 왔다.


날씨가 쌀쌀해서..(이 핑계로) 더 자고 싶었지만, 눈곱만 없애고 벙거지 모자 쓰고 후드티를 그 위에 푹 뒤집어쓴 채 신발을 꾸겨 신고 거북이 목으로 집을 나섰다.


며칠 전부터 알아본 그곳이 드디어 멀리 보인다. 다 도착했다.


맛집도 아닌 이곳에 어느 정도 사람이 몰리는지. 언제 미리 와야 되는지. 당최 가늠할 수가 없었기에 구청과 보건소에도 전화해보고 저녁 시간이라도 물어보러 가려했지만 문도 항상 닫아있어 알아볼 기회가 없었다.

주중과 주말에 전혀 방문한 경험이 없었던 나로선 처음 도착한 하얀 집 군락인 이곳이 미지의 나라 입국심사 직전 같은 당혹감이 감도는 핫플레이스였다.


가까이 왔을 무렵 웅성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부터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칙칙폭폭 기차놀이도 아닐터인데 한껏 늘어선 줄의 행렬은 눈이 코딱지만 한 나도 멀리서 잘 보이는 게 아닌가. 이광경 보자고 노래 부르면서 랄랄랄라 늦장을 부리다니.


재빠른 뛰어가 후다다닥 줄을 서고 나서 오른쪽 손을 들어 머리통을 한대 세게 쥐어박았다.


이미 맛집, 아니 아니 선별 진료소 줄은 놀이공원 입장처럼 앞부분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도록 천막을 돌고 돌아 우리네 인생처럼 뱅글뱅글 팽이 줄처럼 엉망징창으로 감겨있었다.


아.. 난 왜 더 일찍 나오지 않았는가.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BTS콘서트 티켓도 아니고 맛집도 아니고 놀이공원도 아닌데 뭐하러 줄을 1등으로 서냐고 궁금해하실 터.


올해 101살 할머니가 다니시는 데이케어센터(노인 주야간보호) 시설에서 단체로 코로나가 엄청 확진됐다.



FireShot Capture 045 - 소팔이랑 놀아요 _) _ 네이버 블로그 - blog.naver.com.png 보건소에서 이런 안내문이 엄마에게 문자로 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할머니.


<자가격리 종료일> 하루 전 PCR 검사받으라고 친해 문자까지 위협적으로(?) 보내주다니.


그리하여 할머니가 시설에 입소하려면 코로나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건 당연지사.

시설에서 불안한지 검사받았냐고 전화와 문자로 재촉하며 사람을 들들 볶기 시작했다.


'알겠다고!!! 알겠어!!'


주말이라 선별 진료소도 닫았고, 급한 데로 약국서 코로나 키트를 사서 할무니 콧쿠멍에 쑤시기로 마음먹었다.

백신 3차까지 맞은 101살할매가 여태 콧구멍 쑤실일은 없었는데. 하. 이걸 당최 어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코를 쑤셔대는 과정은 역시나 험난했다.


고개를 젖혀야 막대기를 쑤시는데, 자기 고개 젖힌다고 쌩 난리를 치는 바람에 동생이 이마를 쳐서 부여잡고 뒤로 젖히는 동시에, 핸드폰 영상을 틀어 시선을 교란시키며 관심을 끌었다.

3살 아이가 따로 없었다. 아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무사히 시술? 이 끝나고. 손녀가 들을수 있는 최고난이도의 욕지거리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간만에 별 쌍욕을 다 들었다.ㅋㅋㅋㅋㅋㅋ

아오.

난 정말 오래 살 거 같다.


키트 검사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자기 코를 쑤시는 게 낌새가 이상했는지 자기 죽을병 걸렸냐고 물어보길래 성질 나서 대꾸도 안 했더니 웬일로 바로 자리에 눕지도 않고 뚫어져라 키트 검사과정을 지켜보는 게 아닌가.

코로나가 뭔지 모르니 설명하기가 정말 너무 어려웠다.


그날 저녁이 무사히 지나가고..

다음날 할매 다니는 요양센터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자가 키트 가지고는 센터 입소가 안된단다.

진료소 가서 반드시 PCR 검사를 꼭 받아오란다.

첨부터 PCR 하라고 할 것이지. 괜히 두 번 할매 코 쑤셔야 해서 나만 욕 오지게 먹고 아주 불로 장생하게 생겼다.


다시금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런 연유로 황금 같은 주말에 PCR 검사를 하러 이 할매를 위해 나는 선별 진료소에 줄을 서야만 했다.

정말 이른 아침에 갔는데 다들 새벽에 줄 선 건지. 사람이 앞에 너무나도 많았지만, 내가 키가 오척 장신 급으로 꽤 크기 망정이지. 까치발을 들고 목을 쭉 빼고서 얼추 세어봐도 앞에 45명이 넘게 서있다.

혼자라 자리를 이탈할 수도 없고 QR로 미리 문진표도 해야 하고 검사 경험이 처음이라 어리바리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너무 추워를 읊조리는 동시에 어깨 모으고 벌벌 떨며 한참을 외로이 서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내 뒤로 10분 뒤 200명 가까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뒷사람 앞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앞으로 가서 주의사항을 읽어보고 왔다 갔다 하기 수차례.


점점 진료소 문 여는 시간이 다가왔다.

초조해져서 오줌이 마려웠지만 싸면 안 되니깐 다리를 가위자로 바싹 꼬아 위로 당겼다.

직원분들이 다니면서 65세 이상만 검사가 된다 소리치셨고 가족이 확진이 된 사람, 가족관계 증명서 여부 등 체크를 하시면서 돌아다니셨다. 예전처럼 아무나 줄 서면 검사해주던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었다.

앞쪽부터 서있는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검사 이유를 물어보셨다.


"할머니가 오실 거예요. 전 대신 줄 섰어요"


나에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받은 격리 통지서도 가져갔고 할매신분증도 대신 들고 왔다.

만만의 준비를 갖췄지만 진료소 오픈 시간이 다가오자 샤넬 오픈런도 아닌데 심장이 주책맞게 또 바운스 바운스 했다.


앞쪽 줄은 월급처럼 쑥쑥 줄어들기 시작했다.


동생이 시간에 맞춰 할머니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한 사람당 걸리는 시간을 체크해서 예상시간을 알려줘야만 했고 날씨도 추운 데다가 할머니는 오래 서있을 수가 없었기에 모든 과정이 대통령 공항 통과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만 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 시나리오는 그러했다.

줄이 점점 줄어들면서 동생에게 전화해서 할머니 스탠바이 시키라고 했다. 바람이 귓방망이를 때리니 두껍게 입히고 목도리도 해서 데꼬와야한다. 그렇게 3번 정도 강조했다.


"알았다고.. 당최 몇 번 전화하냐. 그만 전화하고 끊어. 이따 봐."


흥, 쌀쌀맞은 대답이 돌아왔다. 동생이 할머니를 모시고 나오는 사이, 줄어드는 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팔짱 끼고 그 와중에 잠깐 서서 졸았다. 기둥 옆에 기댄 채 눈을 뜨니 갑자기 줄이 확 줄어있는 게 아닌가.

헐. 예상보다 인당 걸리는 소요시간이 어메이징 하다. 빨리빨리 코리아답다.

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야 야야야 빨리빨리!!”


할머니는 내 옆에 없는데 난 내 순서를 맞닥뜨려버렸다.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앞으로 가셔도 된다. 말했고 하나 둘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뒤로 줄이 500명이 넘게 서있었고 또 몰려드는 상황인지라, 할머니 도착하자마자 쉽사리 껴들 수 없을 것 같은 직감에 똥줄이 탔다. 긴 줄 끝 입구에 도달하자 손 소독하시고 신분증 보여달라고 직원분이 말씀하셨다. 여자 직원분께 주절주절 사정을 이야기하고 입구에 쪼그리고 서있었다.


반짝이는 후광을 내며 저 멀리 동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옆에 여기가 어디냐며 질질 끌려오는 할머니 모습에 실소가 났지만,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니다.

할머니는 멀쩡한 길로 들어오길 마다하고 길이 아닌 진료소 천막과 천막 사이 틈으로 몸을 구겨 넣어 넘어오다가 와장창 앞으로 넘어졌다. 왜 추운데 나를 데리고 왔냐고 넘어져서 아파 죽는다고 소리 지르는 그녀 때문에 동생은 어쩔 줄 몰라하고 나는 그 와중에 재치 있게 손들어서 “선생니임!!!!! 여기 저 할머니 왔어요!!”를 알렸다,

진료소 초입 현장은 난민들의 탈출 행렬 같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할머니만 데려오면 만사 오케이 일 줄 알았는데 뒤에서 쭉쭉 진격해오는 어르신 무리들이 네가 앞에 줄 서있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냐며 다시 뒤로 가서 줄을 서라고 밀면서 할매를 중간에 껴주질 않았다.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져버렸다. ‘아.. 신이시여 정녕.. 다시 뒤로 가서 줄을 서야 하는 것인가.... 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울컥하던 그때.


키 180 넘는 훤칠하시고 파란색 스머프 색 옷을 입으신 50대로 추정되는 남자분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세상에! 엄청 나이 드신 어르신이 오셨네!! 저기요 다들 길 좀 양보해주세요! 어르신 이쪽으로 오세요. 다들 양보 좀 해주세요! 어르신 이쪽입니다 이쪽이에요 “


하늘에서 선녀님 아니 예수님 부처님이 내려오신 줄 알았다. 그 목소리와 위엄. 그리고 순간적 판단력과 결단으로 지시해주시는 실행력. 나는 경이로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종교가 없는 나는 왜 종교를 믿는지 그 순간만은 알겠더라.

그분의 말에도 쉽사리 입구 쪽은 대기자들 대부분 본인 차례라며 선뜻 길을 양보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분이 다시 한번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가리키며)

"이분이 아침부터 와서 서계신걸 제가 봤습니다. 이분의 순서가 아까 밀렸으니 양보 좀 부탁드립니다." 라며 옆에 플라스틱 의자를 근육 있는 팔로 번쩍 드시더니 “할머니 일단 여기 앉으세요” 라며 할머니부터 앉히는 게 아닌가.

와 세상에.. 동생과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나갈게요”를 외치며 할머니를 연행하듯 양쪽 팔에 끼고 진료소 안으로 입성했다. 꼬불꼬불한 줄을 지나 들어간 진료소 안쪽도 사람이 가득 서있었다. 그분은 우리 보고 따라 들어오라며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양쪽에서 부축하는 우리를 위해 플라스틱 의자를 휘휘 저으며 길을 터 주시기까지 하셨다. 또 유리창을 향해 줄 서계시던 천막 안쪽분들께도 큰소리로 “이분이 연세가 많으시니 양보 좀 해 주심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연세 많은 분 배려 좀 해주십시다. 제가 대신 고맙습니다” 라며 길을 막으시고 (우리들에게 큰소리로)

"언니는 저기 유리창 가서 할머님 신분증 보여주고 동생은 저쪽 구석 가서 의자 놓고 할머니 앉힐 준비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일사불란하고 현란한 지위를 고분고분 따르던 우리.

유리창 안쪽에 계시던 의료진분들은 할머니 신분증을 보시자마자 "어머나 우리 진료소에 100살이 넘으신 분이 처음오섰네 “ 라며 감탄과 우려로 신분증을 검사하시면서 나에게 왜 검사받냐 보건소 문자 받은 거 있냐 문진표 작성했냐 등등 자세히 질문 하셨고 나는 법원에 출두한 느낌을 받으며 검찰 조사가 아닌 의료진의 조사에 성실히 응답했다.

그리고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검사 채취 통을 받고 구석에 앉은 할머니에게로 갔더니, 안에 계셔야 할 방진복 입으신 검사원이 밖으로 나오시는 게 아닌가?? 동생은 안 그래도 잠자리같이 큰 눈이 더 커졌고 난 상황 파악이 안 되고, 둘 다 우물쭈물거리고 서있는데 다시 슈퍼맨 그분이 나타나

“할머니는 밖에서 채취할 거예요.”라고 얘기해주셨고 방어복을 입으신 그분은 할머니 머리 잡으라고 또 움직이면 안 된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크게 소리 지르는 퍼포먼스를 직원분 앞에서 부끄럽지만 선보이고 난 후. 시작된 코 쑤시기.


혹시 나가 역시나지. 할머니가 발버둥을 치며 쌍욕을 하며 움직여버렸고 직원분은 채취를 중단했다.


예상은 했지만, 치매에다 낯선 이는 무섭고 모르는 사람이 자기 코를 뒷머리 구멍 낼 기세로 뚫어대니 굉장히 싫어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분이 주춤하다 다시 깊게 찌르니 할머니가 그분에게 "네이뇬 나쁘다"고 욕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코를 찌르는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니 화가 더욱 가득했다.

할수없이 내가 할머니 머리를 잡았고, 코를 쑤신 선생님에게 끝내 발을 구르며 눈을 부릅뜨고 중얼댔다.


"와이라노!! 와 찌르노!!? 참말로..아주 못된것.지랄한다! 왜 멀쩡한 코를 쑤시노!!"


마지막 시도는 성공이였다.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 성공에는 노력..아니아니..무지막지한 욕과 분노가 따라오는건가 보다. 휴


할머니를 보자마자 오래 서있을 수 없는 연세라는 걸 직감하시고, 경황없는 우리를 위해 주변분들에게 대신 말도 해주시고 의자도 챙겨주시고(난 의자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마 내부 컨테이너에서 가지고 오신듯하다)할매키도 코딱지만 해서 그 유리 검사 벽에 서서 코를 검사받기가 어렵다는 걸 판단해주셔서 검사하시는 분이 밖으로 나오시게끔 부탁까지 해주신 덕에, 성을 내는 할머니를 질질 잡아끌고 나오며 많은분들께 정말 깊이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렸다.

짧게 몰아치는 찰나의 십여분 이였지만, 그분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느낌이었다.


추운데 잠깐이지만 집을 나서서 걷고 10분 가까이 서있고 이동하고 검사받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피곤했을법도 한데,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벗기도 전에 마스크를 벗기도 전에 쌓인 분노를 표출했다.

"아까 그.그뇬이..내 믈쯩한 코를 막 쑤셨다 아이가..(씩씩) 못된것.. 뭐할라고 남의 코를 팍 쑤시노!!증말로"


그리고서는 분노에 차서 씩씩거리다 바로 잠에 곯아떨어져버렸다.


다시 돌아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주셨던 그분 그리고 모든 분들 때문에 그날은 정말 완벽했다.


지친 마음에 예상치 못한 기적 같은 따뜻한 도움을 받게 되어 마음에 위로와 감동으로 크나큰 힘이 되어주셨다. 고생하시는 그분들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은 소중한 잊지 못할 기억으로 평생 자리 잡을 것 같다.

모든 선별 진료소에서 고생하셨던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슈퍼맨님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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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지만? 아이고 고되다. 이런 경험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다음날 문자로 통보된 검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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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음성"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