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할머니를 만났을 때

모두에게 찾아오듯 그녀에게도 찾아오고야 말았다.

by 토토포

코로나 시대가 저물어가는 요즘에서야 한숨 돌리고 겨우 기억을 곱씹으며 글을 자근자근 써내려 가본다.


몇 주 전 치러진 선별 검사소의 고된 경험에서 할머니 PCR 검사는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월급통장에서 돈이 사라지는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시간이 도망쳐 내달리던 어느 평일날, 할머니가 아침에 데이케어센터로 등원한 지 2시간도 안돼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센터에서 확진자가 3명이나 나왔단다. 그래서 할머니 PCR 검사를 급히 행하고선 내일까지 자택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며 집으로 부랴부랴 돌려보낸 것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왔고 동물원 낙타처럼 우리 안에 아니, 방 안에 갇혀버렸다.


할머니는 코로나가 무엇인지 모른다.

초창기에 마스크를 씌우려 했더니 아이처럼 자꾸 벗어서 집어던져 버려서 애를 먹고 어지간히 속을 썩였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눈에 보이는 휴지 같은(?) 존재가 아니다 보니 설명할 수 없어서 결국 먹을 것으로 달래서 마스크를 씌웠고, 마스크 안 쓰면 유치원 못 간다고 하니깐 순순히(?) 말을 들었던 것.


다음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족들은 전부 초긴장 상태로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라는 말로 서로를 억지로 위안하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주말 아침.


"으악!!... 여보오!!! 얘들아!! 아오.. 큰일 났다... 할머니 확진이래.... "


"진짜?! 봐봐.. 잠결에 음성, 양성 제대로 본거 맞아? 다시 제대로 봐봐. 아니다. 문자 온 거 나 좀 보여줘 봐"


할머니는 신세대라 (응?)


핸드폰이 없어서 센터에 등록된 엄마 핸드폰으로 보건소에서 문자로 연락이 왔다.


우리 가족 중에 처음으로 확진자로 등재된 그녀.

MZ세대도 아니면서 남들 하는 거 본인도 꼭 해보겠다고 유행에 뒤처질세라 헐레벌떡 따라가려는 그녀 덕에 아침부터 우리 집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과 모두의 한숨들이 뒤섞여 텁텁한 공기로 감돌았다.


확진 사실을 그녀에게 인지시키는 건 절대 무리다.


방에 혼자 격리해 놓았다고는 하지만, 격리가 얌전히 될 리가 없었다. 자물쇠로 밖에서 잠거야 하나 고민했지만 흡사 노인학대(?)가 연상되어 차마 실행할 수 없었다.


자꾸 오줌 마렵다고 1시간마다 나오고, 식사를 쟁반에 가득 담아 밥상에 놓아주면 자기랑 같이 먹자고 손을 잡고 당기기를 수차례.



왜 자기 방에 들어올 때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들어오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유를 물었다.

할머니 방문을 닫는걸 평상시에도 굉장히 싫어했었는데, 코로나라 엄마가 자기 방문을 자꾸 닫으니 밖이 더 궁금해 미치겠는지 왜 자기 방문 꽉 닫냐고 답답하다며 발딱발딱 일어나서 축구선수처럼 방문을 냅다 걷어차길 여러 번. 문이 아프다고 '달달달달' 거리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문을 꽉 닫으면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살며시 열어둔 1cm 남짓한 문틈으로 누워있는 할매를 윙크하며

빼꼼히 지켜보고 있는데, 열이 조금씩 오르는지 얼굴이 석류처럼 벌게지는 게 아닌가. 고령에다가 고혈압도 있고, 치매도 있고 내심 좀 불안해졌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막으로 지나가던 코로나 '일일 사망자'라는 단어와 할머니 얼굴이 싹 겹쳐서 지나갔다.

급한 데로 비상약을 꺼내 먹이려 타이레놀과 소염제 등을 챙겨 종이컵에 물과 함께 가지고 방에 들어가 손에 쥐어주자 할머니가 날 게슴츠레 쳐다보며 말했다.


"이거 뭐꼬? 내 먹으라고? 다 많은걸 다 묵어야 하나?"


'아. 나이쓰. 일단 알아들었어! 다행이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크게 말해도 귀도 잘 안 들리고, 손짓 발짓 알약을 삼키는 시늉을 마임연기자처럼 수차례 하고 나서야 알약과 캡슐약을 목을 젖혀 꿀꺽 삼켰다. 삼킨 걸 확인하고 뒤를 돌아서는데,

"튯.. 툭.. 퉷... 퉤.. 췌풰.." 희한한 소리가 들려온다.


불안하다. 싸늘하다. 심상치 않은 소리가 뇌리에 스친다....


할머니가 약을 라마도 아닌데 바닥에 침 뱉는 것처럼 죄다 캭 퉤 뱉어놨다. (한 대 쥐어박을 뻔..)

알약이 너무 큰데 틀니로는 안 깨물어진단다. 캡슐은 안에 내용물만 살짝 씹어 즙만 먹고 다 뱉어버렸다.

열받아서 코에서 뜨거운 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참을 인 자를 이마에 4백 번 새기고 다시 억지로 약을 먹였다.


힘든 하루가 또 지나가고,

보건소에서 병원을 지정해줬는지 할머니에 관해 확인하겠다며 전화가 왔다.

코로나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족들 아무도 몰라서 시키는 데로 차분히 따라 하기로 했다. 병원에서는 하루에 2번씩 전화를 해서 상태를 관찰한다고 했고 (초고령이라 그런지 원래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약을 조제해줄 테니 지정약국에서 약을 타라고 하길래, 할머니가 알약, 캡슐, 항생제 다 뱉어내니 가능한 한 아이들이 먹는 시럽이나 작은 태블릿을 주실 수 있나 여쭤보니, 가까운 동네는 없고 멀어도 괜찮다면 시럽이 남아있는 약국을 지정해줄 테니 그곳에 가서 이름을 말하고 약을 수령하면 된다고 했다.


FireShot Capture 054 - 소팔이랑 놀아요 _) _ 네이버 블로그 - blog.naver.com.png


후다닥 약을 수령했고, 약을 먹였고 세상모르게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코로나 걸린 기간 동안, 기침과 열을 반복했지만, 우려와 다르게 왕성한 식욕으로 우리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코로나 걸리면 질병관리본부에서 키트(체온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를 보내준다고 하길래 전화를 해봤더니 예산이 소진된 문제로 슬프지만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아. 그렇겠지, 워낙 확진자가 많으니까. 쿨하게 이해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세..... 가 지나고 점차 본인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에 적응을 했는지 불쑥불쑥 뛰어나오는 빈도가 줄었으며 열과 기침으로 기력이 자꾸 약해지는지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마스크를 쓴 뒤,


"내 준비 다했다! 지금 몇시고? 차가 나 데리러 온 거 아니야? 어서 나가야지"


라며 등원할 채비로 설레어했었지만, 이내 돌아오는 자식들의 "오늘은 쉬는 날이에요 어머니.."라는 말에 너무나도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2주간은 꼭꼭 고이 접어야만 했다. 매일같이 등원이 좌절되자, 본인이 등원을 했었는지에 대한 기억조차 점차 희미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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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뒤.

할머니는 다행히 다양한 후유증(?)을 겪어내고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심하게 아프진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격리 해제를 푸른 하늘과 함께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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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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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은 순으로 키트 세트를 보내주기로 하신 건지. 퀵 아저씨가 집 앞에 정부에서 주는 키트 박스를 슝 던지고 가셨다. 다양한 물품이 안에 들어있어서 기분이 좋고 감사했다.


아싸라비야.콜롬비야. 쿵짜라작짝삐약삐약.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