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무니는 스틸러

그녀의 방은 미니멀시대에 반항하듯 뭐가 자꾸만 주섬주섬 늘어만 간다.

by 토토포

우리 집은 내가 어릴 적부터

화장지 한롤이 얼마인지

뽑아 쓰는 크리넥스가 얼마인지

휴지에 대해서 만큼은 가족들이 일절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휴지 공장 딸이냐고? 훗 아니야)

항상 장롱 위, 빈방, 창고. 집안 곳곳, 그득그득 휴지로 가득 찬 집에 살았기에.. (우리 집 레알 찐 부자인 줄)

그 휴지가 어디서 나오는지는 좀 커서야 천불 나는 내막? 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기 전에 혼자 사셨고 매일 집에만 계시니 티비도 무료하여 약장사를 다니셨다.



약장사 가 뭐냐고요?


건강식품이나, 물건들을 홍보하기 위해 노인들을 모셔놓고 노래, 춤, 마사지 등 온갖 아양을 다 떨면서

(들어보니 발도 막 닦아주고 자식보다 더 잘해준다고 한다. 정말 좋았었는지 이 얘길 수천번 하셨다) 판매하는 떴다방 식의 집단들을 일컫는다.

홍보관이라고도 하고 보통 임대료가 저렴한 건물 지하에 노인들(젊은이들은 안 속아서 안감)을 모아놓고 재롱잔치를 한 뒤 물건을 판다. 시사프로에서는 사기당하는 노인들과 홍보방의 정체를 파헤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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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사던 사지 않던 일단 할머니들에게 약간의 미끼를? 제공한다. 그들의 수법이다.

일주일 내내 계란, 수건, 휴지 이런 것들을 줘놓고 나중에 미안하게끔 한 뒤 손자 같은 사람들이 홍보하니 동정심과 반협박?으로 팔아주게끔 하는 그들의 판매전략.

아이고야. 돌겠네. 여기가 화폐가치가 추락하는 짐바브웨(100조로 계란 3개 구매하는 현실)도 아닌데 2천 원이면 살 법한 그지 같은 저가의 양말을, 음이온이 발생하고 천연옥 박힌 양말이라 아픈 자식의 병도 낫게 한다고 해서 샀단다. (어떤 부모가 아픈 자식을 그냥 보겠나.. (후.. 분노가 치솟는다.)

구찌 양말도 아닌 주제에 그 양말은 20만 원으로 둔갑했고, 우리 아빠 발가락을 겨우겨우 가려주는 용도로만

2번 정도 일하다 세탁기 안에서 그만 세상을 하직했다.

양말, 옥장판, 샴푸, 치약, 등 다이소 급도 안 되는 쓰레기 물건을 수십백 배의 가격으로 사 온 할머니 때문에 아빠는 화병으로 속이 뒤집어지신다고 매번 할머니 집을 다녀올 때마다 말씀하곤 하셨었다. (가족 모두 속이 뒤집어진 건 공공연한 안 비밀)


한 푼 한 푼 아껴서 적금 붓고 돈 모으는 게 즐거운 아빠인데, 할머니는 돈을 아낌없이 펑펑 써대니 나 같아도 가만 안 있을 것 같다. 아빠가 혼꾸녕을 아무리 내도 줄기차게 아들 준다고 이것저것 사 오던 그랜마.



이건 잠시 새는 이야기인데 (속닥속닥) 잠깐 해보자면,

예전에 부서에 친한 한xx 차장님이 자기 고향 대구에 있는 새로 생긴 홍보방에 친한 친구가 취직을 했는데,

3달 만에 1억을 벌어서 렉서스를 샀다고 부럽다고 점심 먹으면서 말해주는 거 아닌가?

그 뒤에 이야기가 더 놀라웠다.

그 친구가 힘들게 회사 다니지 말고, 여기 고향에 내려와서 자기랑 같이 이거 하자고. 떼돈 번다고.. 했단다.

무슨 일을 자기가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똑똑한 친구가 없으니 내려와서 돈 정산하고 회계하고 금전적인 부분 정리해주는 업무라고 했단다. 이 차장님은 (지금은 부장) 어릴 적 그 지역에서 알려진 수재였고, 회사 입사시험도 승진시험도 전국 1등을 해버린 괴물인지라 그 말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


그 차장님은 홍보방에 빠삭한 내 설명을 듣고 나더니,


"뭐냐?? 노인들 상대로 사기 치는 거 아니야?" 라며 분노했고...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라고 속으로 우물쭈물 물어볼 타이밍을 찾던 난 뜨끔하며 마저 밥을 퍼먹었다.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지만,

이런 연유로

7-8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약장사를 계속 다녀 우리 집에는 휴지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하루하루 모아 온 휴지는

명절마다 집에 온 친척집들에 입양되어 갔고 휴지는 점점 줄어가는 듯했다. (이것은 다행인가)


그런데

개버릇 남 못준다 는 조상님들의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할무니는 매일 가는 데이케어센터에서 야금야금 휴지를 뽀려오기 시작했다.


이걸 뽀려온다고 해야 하나, 아님 본인이 쓰다 남은 걸 개춤치(경상도사투리:주머니)에 넣어온다 해야 하나.

변명을 들어보면, 곧 죽어도 자기가 쓰던 거 남아서 아깝기 때문에 가져온 거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매일 밤 퇴근 아니, 하원하고 돌아와 몰래 방문을 닫고 (찔리는 행동인 건 본능적으로 아는 건가 할무이 -_-)

고쟁이 바지 주머니에서 휴지를 한 움큼씩 꺼내며 쓱 미소 짓는 100세의 그녀...


급하게 훔쳐오다 보니 휴지가 지들끼리 엉키고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뒤죽박죽인 것을, 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에 펼쳐놓고 착착 다리미로 다려 개듯이 정성스레 자기 전에 뿌듯한 미소로 수확물?을 정돈하고 잠이 든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방안에 휴지가 주변을 산처럼 둘러싼다.


할머니가 수확 해 온 휴지들 (엄마가 가득 쌓이면 헐머니몰래 방에서 들고나와 봉지에다 가득가득 모아 청소때 재활용한다 )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가?

쓰레기나 주워 온 물건 등을 버리지 못해 집안에 갇혀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나올 때마다 난 격하게 공감한다.


엄마가 휴지 가져오면 나쁜 짓이라고 가져오지 말라고 하니, 며느리가 하는 말인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바통 터치해서 아빠가 출동해서 혼내도 그녀의 분노만 일으킬 뿐, 당최 들어먹질 않는다.

데이케어센터에서 이미 연락이 여러 번 왔었고, 한 두 번 제재를 가했지만 그곳에 제정신인 노인이 몇이나 있으리랴. 식사시간에 쓰던 휴지나 화장실에서 가져가는 몇 칸 정도의 양이기에 별 말이 없었나 보다.


자꾸 보호자인 아빠에게 전화가 왔고 안 들어도 되는 잔소리를 들으니, 아빠는 거짓말로 할머니한테


"거기서 이제 휴지 자꾸 훔쳐가니깐!! 엄마 이제 오지 말래!! 내일부터!! "



호기롭게 말했다가 일주일 간 삐져서 그랜마덜은 집에서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단식 투쟁을 했다.

정신연령이 딱 3살 같다고 나는 절실히 느꼈다.


eventually(결국) 아빠가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할머니 덕에 우리 가족은 졸지에 헌 휴지가 아까워 버리지도 못하고 억지로 쓰면서, 센터에는 새 휴지를 박스로 사다 나르는 괴기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할머니는 해방과 6.25 전쟁을 전부 겪고 막내인 아빠가 태어나고 몇 개월 후, 여러명의 자식들을 홀로 돌봐야 하는 과부가 되어버렸다. 그 시절 홀로 줄줄이 사탕같은 남매들을 키워야 했으니 얼마나 악착같이 살아야 했겠는가. 뭐든 아껴 써야 했고, 살기위해 모아야했으며 휴지는 얼마나 귀했겠는가.

여지껏 물건 하나 허투루 절대 버리지 않는 습관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 할머니를 보고 자란 덕에 나도 본능적으로?(핑계를 대자면) 뭐든 버리지 않고 다 쟁이는 맥시멈라이프를 지향하는 것 같다. 엄마 말에 의하면 아주 닮아도 똑 닮았단다. (기분이 좋진않다)

물건을 아껴쓰고 뭐든 아깝고 또 쓰일것 같아 대차게 확 버리지 못하는 점이 딱이라나. 피는 못 속이는 법.


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 본인이 직접 농사지은 호박,고추 등 을 시장에 가지고나가 팔아서 집에 돌아 올 땐, 손녀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들고와서 복숭아조림을 자주 해주셨는데, 그게 참 맛있어서 학교에 자랑삼아 가져가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요새 언어로 치면 한정판 할머니라 생각했었는지 친구들에게 "너는 이런 할머니 없지?"라는 자랑질을 종종 하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늙은할매가 고생해서 날 위해 해준 마음씀씀이를 자랑하고 싶었던 거였을까..?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오래 무병장수하는 할머니를 보니 어릴 적 친구들은 간간이 아직도 살아계시냐고 궁금해하며 할머니의 안부를 묻곤 한다.


"응 고마워. 할머니 잘 계셔. 밥도 나보다 대따 많이 먹고 간식도 때마다 먹고 똥오줌도 아직까진 괜찮아"


까놓고 말해서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는 고충에 대해선 설명하기도 어렵고 사실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애완동물 안 키우고, 애 없는 사람들한테 개 사진, 애사진 보여주면서 공감해달라고 썰 푸는 느낌이랄까??

그나마 재밌게 에피소드처럼 얘기하면 주변 절친들은 공감하고 걱정하며 제 각기 한 마디씩 한다.


86.5% 너희 엄마, 아빠 진짜 힘드시겠다. (안타까움이 동반된 슬픈 리액션)

13% 너가 고생이 많네. (나를 토닥여주는 절친들)

0.5% 요양원에 왜 안보내? (주로 시어머니를 싫어하는 엄마 친구들ㅋㅋㅋㅋㅋㅋ)


공감을 바라는 건 아닌데, 답답하니깐 털어놓고 싶다가도 얘기해서 뭐하나 싶어 입을 다물 때가 부지기수다.






금요일 저녁, 할머니 방에 불을 꺼주며 할머니 자는 귀에 대고 (소곤소곤) 속삭였다.



"(이빨 꽉 깨물고) 흘므니.. 제으발 휴지 쫌 그믄 갸쟈와. 흘므니가 가즈오믄 우뤼 또 사다 줘야 흔든 말으야.."




할머니는 오늘도 도둑....(아니 아니) 사회에 자본순환에 기여하는? 프로 스틸러로 하루를 끝맺음하셨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