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30대 후반이 되고 나니,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 자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예전처럼 아무 말이나 던지고 깔깔 웃던 자리에서는 이제 “잠실 아파트 팔고 대치동으로 가려고”, “CFO 자리에 지원 중인데, 너도 이쯤 되면 슬슬 이직할 타이밍 아니야?”, “강동에 새 아파트 계약했어”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듣는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지나왔고, 얼마나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어서, 그 말들이 단지 자랑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예전처럼 질투하거나 비꼬는 마음 같은 건 없다. 다만 그 대화들이 이제는 어딘가 나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세계의 언어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 사실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처음엔 나도 흔들렸다. 나도 열심히 살면 뭔가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차라리, 현실적으로 내가 가지기 어려운 것이라면 그걸 가진 누군가와 함께하면 되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부자인 남자를 만나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같은 생각. 사실 어쩌면, 나도 ‘나 이런 거 있어’, ‘이 정도는 돼’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꺼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대기업 임원도 될 수 없고, 강남 50평 아파트 같은 건 애초에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부끄러웠고, 괜히 내가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뭘 이룬 게 없다는 자책으로 몇 날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대화들이 이상하리만큼 서글프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마치 뭔가를 더 가져야만 하는 듯 말하고 있었고, 더 높은 자리, 더 큰 집, 더 많은 돈, 더 많은 보장과 더 높은 안정감. 그 모습은 어릴 적 놀이터에서 “우리 아빠 차 벤츠야”, “우리 집은 2층이야”라며 서로 자랑하던 꼬마 아이들의 대화처럼 느껴졌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또렷하게 느꼈다. 지켜보고 있으면 알 수 있었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친구들 중에도 승진에 실패하거나 회사 기대에 못 미치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무너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랑해서 결혼했으면서도 배우자가 자신보다 돈을 조금 덜 벌면 그걸 내심 무시하는 친구들의 태도에,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저런 삶을 원하는 걸까?’
물론 나 역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어떤 날은 후회도 했다. 그때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직을 고려했다면, 좀 더 타이밍을 빨리 잡고, 좀 더 전략적으로 커리어를 쌓았다면, 어쩌면 나도 지금쯤은 어깨 펴고 자랑할 수 있는 뭔가가 있었을까. 혹은 남들처럼 결혼을 했더라면, 그렇게라도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미련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이 모습이 나였던 건 아닐까.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경로를 따라가기엔 어딘가 너무 다른 감각과 결을 가진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건 더 높은 직함도, 더 넓은 집도, 더 많은 재산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히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 내가 나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은 삶. 하루를 정성껏 살아내고,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삶. 스스로가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하루. 처음에는 그걸 몰랐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니까 나도 같이 뛰어야 할 것 같았고, 나만 정지해 있는 기분이 들면 실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열등감도 있었고, 조급함도 컸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는 다른 마음이 생겼다. 나는 이제, 더 많은 걸 가지는 대신 더 적게 욕심내고, 더 깊게 웃고, 더 오래 나를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조금씩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은 단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비교와 무기력, 질투와 자책, 그리고 질문과 질문을 거치며 서서히 내 안에 자라난 것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들의 잣대로 내 삶을 재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느라 점점 내가 흐려지고 무뎌지는 경험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오히려 요즘은, ‘내가 무엇을 하면 진짜로 웃게 되는가’, ‘내 마음이 조용히 따뜻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를 더 자주 묻는다.
예전에는 커리어, 타이틀, 아파트, 연봉, 그런 외형의 것들이 나를 채워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걸 손에 쥐어도, 내 마음이 모르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짜로 나를 웃게 한 순간들은 언제나 아주 작고 소박했다.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 조용한 방 안에서 음악을 틀고 조용히 웃었던 순간. 누구도 보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던 하루. 어쩌면 나를 진짜 살게 하는 건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는 것’이라는 걸, 나는 이제 조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조용히, 조금 느리게, 남들이 정해준 방향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그은 선을 따라 걷고 있다. 더는 누구에게도 증명하려 들지 않고,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누가 보지 않아도 좋고,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오늘 하루를 얼마나 진심으로 살았는가이고, 내가 내 안에 있는 감각을 얼마나 잘 지켜냈는가이다.
어쩌면,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을 끊임없이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더 정교하게 발견해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느리지만 분명히 자라고 있는 것들—나를 아끼는 마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끝까지 나를 잃지 않으려는 단단한 의지. 나는 이제 그걸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모두가 바쁘게 어디론가 달려가도, 나는 내 속도로, 내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진짜로 괜찮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