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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Jul 28. 2023

혼자 살아도 에어팟은 필요하다.

혼자 사는데 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껴야 되냐고?



이어폰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수시로 알콜스왑으로 닦으며 관리 하지만, 잊을만하면 귓구멍이나 귓바퀴에 염증이 생기고는 한다. 

없어도 된다면 안 쓰는 것이 낫다.


집에 혼자 있는 동안,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집에서 혼자 하는 활동 중에 갤럭시 버즈나 이어버드 같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도움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




이것은 '좋은 날'이다.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요리를 하면서 가장 짜칠 때는 조리 도구가 성에 차지 않을 때다.


후라이팬이 인스타그래머블 하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니라, 

도마가 너무 작고, 후라이팬이 너무 작고, 칼이 무뎌서 잘 잘리지 않는 아주 성가신 문제들이 진짜다.


도마는 최근에 바오먼트 도마를 아주 큰 걸로 사서 굉장히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그동안 7년쯤 전에 산 조셉조셉 인덱스 도마를 쓰고 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후라이팬은 평생 쓸 용도로 산 스뎅과 특정 요리에만 사용하는 코팅팬을 고루고루 쓰고 있어서

딱히 불편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칼이 문제였다, 칼이. 


한 번도 집에서 칼을 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지금 쓰는 칼은 근 10년 전, 독일에 출장 갔다가 사온 뭔가 유명한 브랜드의 칼인데, 꽤 오래 버텼다.

8년이 넘어가니 칼날이 식재료를 써는 것이 아니라, 내 팔힘으로 찢는 것 같았다.

대파나 토마토 같이 질긴 껍질이 있는 것들은 깔끔하게 잘리지를 않았다. 


칼은 뭐랄까.. 버리고 새로 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머릿 속에서는 스뎅 냄비처럼, 칼도 평생 쓸 물건이라고 분류된 것 같았다.



무뎌진 칼을 계속 쓰려면 갈아야 한다. 


존경하는 요리사 이연복 선생께서도 심심하면 칼을 간다고 하셨다.

칼질의 달인께서 그렇게 꾸준한 관리를 하시는데, 나같은 핫바리가 뭔 재주로 도구 관리조차 소홀했던 건지.

반성하는 마음으로 칼 가는 도구를 검색했다. 


일단, 손잡이가 달려있고 칼날을 끼운 다음 뒤로 당겨서 갈아주는 형식의 물건은 제꼈다.

너무 못생겼다.

내가 쓰고 있는 칼이랑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간지나는 칼갈이 봉이 있었다. 

제이미 올리버나 레이먼 킴도 TV에서 그걸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었다. 멋있었다.

지금도 그걸 갖고 싶긴 한데, 사진 않았다. 너무 비싸다.


대신 숫돌을 샀다. 


어린 날, 시골에 가면 수돗가에 놓여있었던 옴폭 패인 숫돌. 

그때의 추억을 자극하는 숫돌 또한 몹시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내 주제에 합당했다. 바로 샀다.

3000방과 1000방이 양면으로 붙어있는 나름 첨단 기술이 적용된 숫돌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데에는 방해가 되는 요소지만, 칼날을 예리하게 가는 목적에는 적합한 요소다.



그 뒤로는 수시로 칼을 간다.


칼날을 정면에 두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가 나간 부분들이 보인다. 

은색의 칼날선이 끊어지는 부분이 이가 나간 자리다.

칼질이 성에 차게 되지 않아서 들여다 봤는데 이가 나간게 보인다? 그럼 칼 가는 날이다.



숫돌로 칼을 갈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과 마주해야 했다.


아주 소름끼치고 귀가 아픈 소리.

가뜩이나 소리에 예민해서 지나가는 버스가 굉음을 내면 울면서 집에 오는 개복치가 나인데,

칼 세 자루의 양면을 1000방, 3000방으로 총 12번 가는 동안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몹시 괴로웠지만 칼을 다 갈고 종이를 자르며 느낄 서걱한 손맛으로 위안 삼으며 참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내가 얼마나 생각을 안하고 사는 인간인지 깨달았다.


1933년 Paul Lueg 박사께서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에 대한 컨셉을 처음 특허로 등록하신 이후,

BOSE와 젠하이저 같은 음향 기기 기업의 걸출한 연구자들이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의 수준을 얼마나 높이 끌어올렸는지 모르지 않으면서

'노이즈'로 겁나 고생받는 동안 방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는 그 첨단 기기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으니

스물여섯 살에 했던 IQ 검사 결과, IQ 95는 제법 믿을만한 값이다.




노캔 이어폰을 꽂고 갈아본다.



그렇게 오늘, 이어폰을 꽂고 푸바오가 뿌앙뿌앙 하는 소리를 들으며 기쁜 마음으로 칼을 갈았다.

저 미친 소음도 만만한 놈이 아니어서 글로벌 No.1 기업의 기술도 뚫고 귓구멍에 박혔지만

무뎌진 칼날처럼 한층 그 기세가 꺾여서 들어왔다. 

4메다가 넘는 죽순을 꺾어 먹는 푸바오를 향해 

다정하게 화를 내는 강바오의 목소리 또한 나의 위안이 되었다.




만족감을 주는 쇳가루


칼을 갈고 나면 숫돌에 묻은 쇳가루를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칼을 갈면 갈수록 칼은 점점 작아진다. 과도는 이러다가 쓸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이 또한 나와 그들 사이의 역사의 흔적이니, 칼들과 나의 유대는 더 강해진 것 같아서 애정이 간다.


숫돌 사면서 리뷰를 보니까 숫돌을 쓰는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다들 그 끔찍한 소음을 어떻게 이겨내시는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숫돌에 칼 가는 소리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참아가며 칼을 가는 분들이 계시다면

앞으로는 꼭 애플 에어팟이나 갤럭시 버즈, 아니면 보스나 젠하이저의 노캔 헤드폰

도움을 받아 보시기를 권한다. 



과학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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