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을 쓰려다가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오은영 선생님은 인생을 아주 열심히 살아도 쪽팔릴 일이 생긴다고 하셨다. 내가 왜 그 말에서 위안을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나는 아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쪽팔리는 일이 많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주 못난 꼴이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보고 욕을 할 수 있는 곳에 자주 업로드 된다. 시쳇말로 흑역사가 박제된다고 하는 그 꼴을 나는 꽤 자주 당했다. 매번 생각했다. 내가 주제넘는 짓을 해서 그렇다고. 그러면 그 일을 그만 두면 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지난주에도 그랬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느꼈던 그 자괴감과 모멸감. 시발 내가 오늘 뭘 한 건가.
아무튼, 그날의 경험과 관련된 책에서 시작했다.
앞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읽었으니 기록이나 해두자고 책의 줄거리나 갈겨쓰다가 뜻밖의 소득을 얻은 것에 꽤나 감동해서, 오늘도 일단 읽었으니 기록이나 해두자고 또 한 권의 책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 일을 하다가 쪽팔리는 일이 왜 생기는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는 글이 되었다.
'과장창'이라는 과학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랍시고 설치고 다닌 적이 있어서 한 번씩 불러 주셨다. 이번에 대대적인 개편을 하고 새 시즌을 시작하신다고 했다. 역사 스토리텔러 썬킴 님을 주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나도 꼈다. 곰팡이 얘기를 해달라고 하셨다. 작가님은 내가 에어컨을 산 이후로 단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셨다. 그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지는 몰랐다 진심으로. 필터 청소를 꼬박꼬박 잘하고 있었고, 외부 먼지도 곧잘 닦아서. 결로가 생기기에는 우리 집 에어컨이 그 정도의 온도차를 경험하는 일이 없다. 에어컨을 산 이후로 가장 격하게 온도를 낮춘 것이 27도였다. 그나마도 추워서 금방 올렸다. 우리 집 에어컨은 상시 30도에서 29.5도로 돌아간다. 30도는 약간 더울 때가 있는데, 29.5도로 돌리다 보면 발이 시려서 또 올려야 한다. 아무튼 아무리 더워서 28.5도에서 30분 넘게 돌아간 적이 없다. 그래서 먼지가 쌓이긴 할지언정 곰팡이가 창궐할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통화를 마치고 작가님은 에어컨 셀프 청소가 가능하다며 영상까지 보내주셨다. 나는 에어컨 전면을 직접 열 수 있는지 몰랐다. 앞판이 너무 쉽게 분리가 되었다. 으.. 먼지가 꽤나 많이 끼어 있어서 바로 닦았다. 곰팡이는 없었다. 축축한 느낌도 없었으니. 작가님은 그 까만 것이 곰팡이라고 하셨다. 그런가. 아무튼 닦았다.
곰팡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곰팡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동네 도서관에 갔더니 곰팡이 책이 4권 있길래 죄다 빌려 왔다. 가장 재미있고 배울 거리가 많은 것이 <마이코스피어 - 우리 옆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이웃, 곰팡이 세상>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곰팡이에 대해서 몰랐던 것도 배우고, 알고 있었던 것도 다시 상기하고, 과장창 녹화 가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면 재미있겠다 하고 메모도 했다. 그때까지는 기분이 괜찮았다.
녹화가 시작되고서, 아주 익숙한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한 것을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그 느낌. 아무것도 내 의도대로 할 수 없고, 준비해 간 것의 9할은 언급조차 할 수 없으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가 답하기 어려운, 또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는 그 느낌. 아뿔싸.
거기까지 준비했어야 했는데.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묻는 말에만 잘 대답하는 것은 보통은 미덕이고 좋은 재주다. 나는 그 재주가 좋아서 영업일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 고객들은 나와 미팅을 하고 나서 우리 회사와 제품에 관심을 갖고 샘플과 견적을 요청한다. 하지만 방송 일은 다르다. 연예인들이 '잘 치고 들어간다'라고 하는 그 재주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무 때고 그래서는 안 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이야기로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아무튼 내가 그 재주가 아주 없다. 그런데 많은 경우, 진행하시는 분들이 대본을 안 보고 그냥 이야기를 이끌어가신다. 어떤 질문들은 주제와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거기서 적당히 대답을 하면서 내가 준비한 이야기로 잘 넘어가야 하는데 그걸 아주 못하고 말았다.
나는 내 이름 뒤에 박사를 붙이는 걸 아주 싫어한다. 어느 정도냐면 수치심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걸 알 수 없다. 박사를 박사라고 부르는 게 오히려 당연하지.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계속 주눅이 든다. 그 호칭이 신경이 쓰여서 머리가 더 굳어 버린다. 트라우마 걸린 쥐새끼처럼.
진행자분은 내가 에어컨을 4년 동안 한 번도 열어서 청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을 하셨다. 녹화 내내 그 질문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왜 4년 동안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나. 나도 모른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안 했겠지. 근데 이 질문이 몇 번이고 돌고 돌면서 정작 해야 되는 이야기를 아주 많이 못해버렸다.
진행자분은 궁금한 것들을 가감 없이 아무 때고 물어보셨다. 진행자분은 역사에 대해서 누가 그렇게 질문을 해도 언제고 잘 대답을 할 수 있는 분이셔서 그러셨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내가 공부한 것들과 미리 알고 있는 아주 적은 지식 외에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박사가 왜 모르냐는데, 박사인거랑 그건 상관이 없다. 박사까지 할 정도로 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가방 끈이 긴 사람이면 다른 생물에 대해서도 응당 관심을 많이 갖고 많이 공부해서 많이 아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로 물어본 말이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척척박사'가 아니냐는 의미라면 할 말이 있다. 척척박사는 가짜다. 박사 학위는 그야말로 바늘 같은 지식을 근거로 받는다. 깊다고 하는데, 솔직히 깊은지도 모르겠다. 은퇴할 나이쯤 되는 노교수나 되어야 깊이까지 갖추는 거지, 고작 박사 학위 하나 받는 거는 그냥 거대한 종이에 바늘로 구멍 하나 뚫은 수준이다. 그거 하나 뚫어서 받는 게 박사 학위다. 나는 식물세포생물학을 전공했고, 그중에서도 좁디좁은 식물의 생명현상 하나를 공부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밖의 것들은 양재꽃시장에서 다수의 식물들을 팔고 계신 분들보다 훨씬 모른다. 요구하는 지식의 방향이 다양한 식물종들의 넓은 특징에 대한 것이면 나는 일자무식의 수준이고, 식물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세포막 단백질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건 좀 아는 수준이다.
아무튼.
요는 촬영 내내 등신 같이 답을 하고 등신 같이 웃었다는 거다. 이것이 또 온라인 세상에 박제가 될 테지. 나는 수치스러울 거고.
다만, 예전에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와서는 다시는 방송을 하지 않겠다며 울었다면 이번에는 나름 조금 더 발전된, 건설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이 다르다.
방금 심리학자 김경일 선생님의 영상을 하나 보았는데, 그분도 스스로를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시더라. 헐, 나도 그런데.
여전히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나,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과학적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답이 가장 우세하다. 그것만이 기준이라면 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하면 안 된다.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내가 그다지 재주가 없을뿐더러, 흥미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일을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 거 같다. 아주 오래전, 그때도 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귀한 친구 궤도가 해줬던 얘기가 있다. 이따금 흔들리면 그 말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너는 너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해 낼 수 있는 과학 스토리텔러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튼 메시지는 이러했다. 순간의 위안으로만 삼던 이야기인데, 이제는 정체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때가 되었고, 이 말도 다시 꺼내서 곱씹어봐야 한다.
곰팡이의 학명을 줄줄 외고, 몇 년도에 어디 연구팀의 어느 박사가 실험을 했는지, 솔직히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충 1990년대이고, 어떤 맥락에서 무엇을 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만 안다. 과학 콘텐츠를 보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 좋은 학자의 박학한 지식을 기대한다. 그 기대에 내가 하는 이야기는 한참 못 미친다. 저딴 것도 박사라고, 아는 것도 없네요, 저 사람은 왜 나온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적재가 아니었고, 적소에 위치하지 못한 탓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학명이니 연구팀이니 연도니 논문 제목이니 뭐니 줄줄이 외워서 방송을 준비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가서 그걸 줄줄 외고 오면 후련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박사로 쪽팔리는 짓은 안 했다는 증명은 된 거 같아서 안심도 되고 그랬다. 근데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 게 별로다. 그런 걸 얘기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의 학명이 뭐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톡신들의 이름들이 무엇인지, 이 생물의 종을 분류하기 위해 분석하는 16s rRNA 어쩌고 같은 이야기는 구글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또 그 이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른 질문들에 대답하느라 정작 하지 못했지만, 곰팡이를 얘기할 때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이 생물이 지구의 분해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나무의 리그닌 같은 특정 물질은 곰팡이 만이 분해해 줄 수 있다는 그런 사실. 지구의 물질들은 순환해야 하는데, 독립영양생물인 식물이 무기물을 유기물로 만들어주면, 그것을 다시 무기물로 만들어주는 분해자가 있어야 이것이 돌고 돌 수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항진균제는 간에 독성이 있으니 술을 같이 먹으면 큰일 난다 같은 숏츠 타이틀 같은 얘기 말고, 그래서 학자들이 어떤 연구들을 하고 있는지, 곰팡이는 사람에 제법 가까워서 곰팡이를 죽이는 약을 만들면 그것이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얘기, 그 비슷함 속에서 곰팡이와 사람이 가지는 작은 차이를 찾아내서, 그것을 타게팅하는 항진균제를 만들고 있는 연구자들의 이야기 같은 거를 하고 싶었다.
곰팡이 독소니 해로운 곰팡이니 이로운 곰팡이니 하는 것들은 그저 우리가 써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지 진짜 세상에 선한 곰팡이 악한 곰팡이 따위가 있을 리는 없다는 거.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앞으로 또 기회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더 잘 준비를 해야겠다.
그리고 의외의 소득도 있다. 난 원래 곰팡이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 일을 준비하면서 읽은 곰팡이 책이 제법 재미있었고, 또 이래저래 찾아본 곰팡이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덕분에 작년쯤 소멸했던 과학에 대한 흥미가 조금 살아났다. 에르고스테롤을 타게팅하는 항진균제 개발에 대한 논문이나, 체르노빌의 멜라닌 곰팡이 논문을 좀 더 찾아서 읽어보려 한다.
썬킴 님은 스스로를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 스토리텔러라고 아주 당당하게 소개하셨는데, 나도 그리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초등학생 일기 같은 마무리다. 이런 글을 쓰는 날도 있는 거지 뭐. 과호흡이 올 때까지 눈이 짓무르도록 울며 괴로워하는 우울의 날들 속에서 이 정도만 하고 사는 것도 기특하다. 남들 보기에는 병신 같아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내가 기특하다. 그렇게 생각해 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