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오 Mar 07. 2021

인생퀘스트

프롤로그



10대, 20대


10대의 나와 20대의 나는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10대는 대충 살았다면 20대는 영혼을 불태웠다.

10대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그냥 학교를 가야한다고 해서 갔고 나의 의지로 살았다기보다 그 나이 누구나 다 이렇게 산다고 해서 집-학교-학원의 쳇바퀴 속을 돌고 돌았다. 남들은 죽을동 살동 공부했는지 모르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살았던 10대의 삶은 다시 되돌이키고 싶지 않은 인생의 암흑기였다. 수능을 망치고 한 달 내내 울면서도 주변인 모두 당연히 재수를 하라할 때 절대 이 삶을 되살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는지 점수에 맞춰 지원한 대학을 가버렸다.

반면 20대는 집을 떠나 자유를 만끽함과 동시에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고 판단해야 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고 '앞가림'이란 것을 그때서야 했던 것 같다. 내가 공부해야 할 것을 스스로 찾았고 해쳐나갔다. 여중 여고를 다니다 공대 여자가 되니 체력 좋은 남자들 사이에서 정신력으로 밤새 버텨가며 공부했었더랬다. 그렇게 '공부'의 재미에 빠져 새벽같이 공부했더니 10대에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1등을 줄기차게 했다. 성적장학금도 항상 다 받아먹었다. 웃기지만 그렇게 했더니 부모님은 누구나 다 주는 건 줄 알았고 새벽까지 술 쳐 먹고 돌아다니는 줄 알았다고 했다.





30대 갑자기 닥친 숙제들의 쓰나미



원했던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내 나이가 서른이 되어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입에서 '결혼'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20대 때는 '늦게 결혼해라. 너는 늦게 해야 한다.'를 줄기차게 이야기하더니 내 나이에 3자가 들어가자 돌변했다. 엄마의 말에는 조바심도 느껴졌고 걱정도 담겨있었다. (결혼 후 한참 지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집안사람들은 여자가 머리만 키워서 어떡하려 그러냐 우려도 많았다고 했다. 기존의 공부와 일과는 달리 30대에 닥친 것들은 참 어려운 숙제였다. 그냥 열심히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정답이 존재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이상형이란 것은 한 해가 갈수록 뭔가가 더 추가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꼭 그것이 대단한 직업을 요하거나 연예인 같은 외모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남들이 보기에는 노처녀 주제에 뭘 그렇게 따지나 싶었나 보다. 회사의 윗분들은 담배 태우며 이야기 도마 위 소재거리로 왕왕 부서 내 노처녀들을 올렸고 이야기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늘 귀에 들어왔다.

주위의 말보다 더 피부로 느끼는 건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생겨나면서 대화의 주제는 나와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덧 인생에서 한참의 거리가 생긴 것이다. 절친들이 아이가 생겨 육아와 시댁 스트레스 단계로 들어가면서 더욱더 거리는 멀어졌고 인생에서 뒤처진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졌다. 그렇게 결혼한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결혼 안 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 이야기할 때 더 편해졌다. 미혼녀들이 만나 이야기를 하면 처음에는 '홀로 사는 것이 편하고 좋다.', '결혼한 00봐라 시댁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더라, 난 그렇게는 못 산다. 그냥 지금이 좋다.'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조금 진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외로움에 대한 토로였다.





인생퀘스트


누군가가 인생의 갈림길, 혹은 인생 자체에 정답을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의 삶을 속속 다 알지 못하지만 내 눈에는 다들 잘 나가는 것 같고 나보다 쉽게 풀리는 것 같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꾸역꾸역 산을 넘고 나면 왜 또 다른 산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게임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남편의 게임용어를 귀동냥하다 듣게 된 단어, '퀘스트'

(네이버사전 정의 - 퀘스트 :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 또는 행동. 게임의 장르나 특성에 따라 내용은 다르게 구성된다.)

퀘스트를 깨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데 이건 꼭 인생의 단계와 같지 않은가..

10대, 20대를 지나 30대의 과제들은 이전의 삶과는 참 다른 주제였고 하나하나가 다 새로웠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나만의 방식을 찾아 헤쳐나감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아직도 나는 30대의 퀘스트들을 이행 중이다. 이제 이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만 특별한 상황이다, 나만 힘들다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평범한 어느 30대의 이야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나의 상황이 과거형 혹은 미래형 일수도 있지 않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