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5] 딸과 함께 걷는 밤길에서

by 도치맘

저녁 식탁에서 딸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낮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혼자 있었어. 점심 먹고 자리에 앉아 엄마가 내준 숙제만 했어.”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무겁고 깊었다.

평소에는 친구들과 점심 먹자마자 운동장으로 나가 놀던 아이였는데, 며칠 전부터 학교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모양이다. 문득 식탁 위에서 터져 나온 말이 아이가 얼마나 오래 마음을 눌러왔는지 알려주었다.


엄마로서 당장 무슨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딸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집 앞 길은 저녁 노을이 막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드리워진 길을,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아이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발걸음을 맞추다 보니 조금씩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가 내 비밀 얘기를 다른 애들한테 말했어. 그래서 애들이 다 알게 됐어. 그러더니 다들 내가 이상하다고 놀려. 난 이제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해? 누구와도 말을 못하겠어. 내 마음이 그래.”


나는 한참을 그냥 들었다.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단지 아이의 말이 끝까지 흘러나오도록 귀를 기울였다. 아이의 목소리가 떨릴 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으로 함께 울었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다이소를 지나 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공원 벤치에 앉아 물을 건네며 조심스레 말했다.

“친구 문제로 마음이 힘든 건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야. 그냥 서로 다른 마음이 부딪히는 거야. 그럴 땐 거리를 두어도 괜찮아. 네 마음이 먼저야.”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표정은 무거웠지만, 손에 쥔 물의 찬 기운이 아이의 손끝으로 번져가답답한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덧붙였다.

“넌 누구보다 따뜻하고 좋은 아이야. 네 진심은 언젠가 꼭 전해져. 어떤 친구와는 멀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상엔 널 이해해주고 네 곁에 있어 줄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언제나 네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아들러 심리학에서 ‘소속감’은 핵심적인 개념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며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필요하다고 느끼길 원한다고 했다. 그러니 첫 사회를 경험하는 우리 아이들은 ‘소속감’을 잃었다고 느낄 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부모가 줄 수 있는 큰 선물은 “넌 언제나 안전한 곳에 속해 있다”는 확신이라 한다. 아들러 심리학에 따라 나는 그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붙들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아이의 세상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다만 그 세상에서 아이가 흔들릴 때, 기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품이 되고 싶다.

친구 문제에 울던 오늘이, 언젠가 아이의 성장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며…. 나는 우리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