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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홍 Oct 04. 2019

인생의 관성

인생에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느낀다. 관성이란 운동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마찰력, 공기의 저항 등으로 인해 관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물체가 결국 정지하게 된다. 짧은 내 인생에서도 그러한 관성을 느낀 적이 몇 있었다. 그러한 관성을 깨려면 무언가 힘을 줘야 한다는 것도 느꼈었다.


중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서 이래저래 많이 삶을 피해 다녔었다. 결국 회피의 끝으로 집에서 나와 기숙사 학교까지 들어갔는데, 거기서 마주한 친구들과 내가 앞으로 공부할 것이 내게 힘을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 비해 이미 이것저것 많이 해본 친구들이 나에게 자극이 됐었고, 전에는 간단하게나마 해본 적 없는 코딩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더 운동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계속 공부하던 끝에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와 같은 좋은 기회를 얻고, 거기서 많은 힘을 받아 더더욱 운동하게 됐다.

아마 거기서 힘을 받지 않았더라면 계속하여 코딩을 공부하는 인생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나는 또 다른 힘을 받았다. 대학교를 가보면 어떨까 하는 힘이 나를 운동하게 만들었고, 결국 돌고 돌아 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이제는 공부하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관성이 됐다. 비록 매우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진 못했지만 후회 없게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학교에 충실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또 다른 힘을 받아 진짜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스스로 지치지 않는 한, 또한 의지력이 바닥나지 않는 한 관성에 의해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인생의 운동 방향이 어느 정도 고정된 것 같다고 느낀다. 제대로 회사에 매진하여 삶을 살기 시작한 지 이제 2년 조금 넘었다. 이전에도 계속 일을 하긴 했지만 파트타임이었거나 오래 지속되진 않았었던 반면, 지금은 꽤 장기간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30대까지 개발자로서 최고 수준이 되고 싶다는 목표는 있고, 또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싶기 때문에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내 일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양반은 못 되는 것인지, 마음속 한 켠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전에 어떤 A라는 분과 대화하던 중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A님은 지금의 일을 충분히 열심히 하고 계시고 또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로는 과연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일 까에 대한 고민을 하곤 한다 이야기했다. 내가 해보지 않은 다른 무언가가 더 나의 적성과 흥미에 맞을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A님의 이야기를 들은 당시의 나는 나 스스로도 비슷한 고민을 하긴 했었지만 지금의 컴퓨터라는 길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다른 길을 찾게 된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지금의 길을 계속 가겠다 말했었다. 

이것은 일에 대한 나의 인생의 방향이었다. 불현듯 든 생각은, 일 외에 다른 내 삶의 조각은 어떠할까였다. 10년 뒤의 나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가 설정했던 삶의 방향이 당신을 행복하게 했느냐" 질문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일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능력 없는 내가 얼마나 불행할까 생각한다. 하지만 10년 뒤의 나도 그렇게 생각할까? 능력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삶의 다른 조각을 찾아 행복할 수도 있을까? 지금의 나는 컴퓨터라는 조각을 제외하곤 다른 조각이 없다. 10년 뒤의 나는 그 조각 밖에 없다는 사실에 불행해지진 않을까?


그러던 도중 "인사이드 빌 게이츠"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빌 게이츠를 존경하게 되는 다큐멘터리였다. 그리고 저렇게 최고 수준의 지능을 가진 빌 게이츠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한 편으로는 서글퍼졌다. 내 지능이 빌 게이츠만큼 되지도 못하는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처럼 다큐멘터리나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넷플릭스를 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빌 게이츠만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이러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지금, 인생의 관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다른 어떤 특별한 일을 마주하지 않는 이상 내 인생은 계속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 말인즉슨, 내 인생이 외부 힘을 끌어오지 않는 이상 하나의 조각만 남아있는 상태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관성을 밀어내야겠다. 외부 힘을 끌어와 내 삶의 운동 방향을 바꿔보자. 솔직히 두렵다. 제한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다른 곳에 더 활용하게 됨으로써 더 열심히 운동하지 않아서 원하는 만큼 강해지지 못한 내가 될까 봐 두렵고, 더 열심히 컴퓨터에 집중하지 않아서 30대가 됐을 때 최고가 되지 못한 내가 될까 봐 두렵다. 하지만 인생의 운동 방향을 바꿔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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