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열쇠를 말하다
문장 하나, 치셤 신부의 한숨 소리 하나까지 머릿속에 각인시키려 애썼던 그해 여름. 결국 시험지 위에서 나는 단 하나의 오답도 허용하지 않은 '만점'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때의 만점이 책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증거는 아니었음을, 어른이 된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 시절의 나는 치셤 신부의 '치열함'을 정답으로만 배웠을 뿐, 그 삶의 '무게'까지는 알지 못했으니까.
그는 화려한 교권의 중심에서 밀려나 낯선 땅 중국으로 향한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쟁의 포화가 쏟아지는 그곳에서 그는 신의 이름으로 군림하는 대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람들의 상처를 닦는다. 동료 신부들이 세속적인 성공과 계급을 쫓을 때, 그는 홀로 낡은 옷을 입고 '진정한 선(善)'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증명해낸다.
중학교 때 외웠던 문장들이 이제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 박힌다. 그는 단 한 순간도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의 치열함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열심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한 처절한 자기 증명이었다.
치셤 신부는 종교의 벽을 넘어 무신론자 친구를 사랑했고,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을 용서했다. 그가 쥔 '천국의 열쇠'는 반짝이는 금니가 아니라,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끝내 버리지 않았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었다.
중학교 때의 100점짜리 성적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치셤 신부의 삶을 다시 마주하며 내 인생의 성적표를 새로 작성해 본다. 나는 그처럼 내 신념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내 앞의 이익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고립될 용기가 있는가?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이 오래된 고전은, 이제 나에게 단순한 추억을 넘어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치셤 신부처럼 투박하지만 정직한 열쇠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 수 있다면, 언젠가 내 삶의 끝에서 다시 한번 '만점'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