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가 남긴 것: AI보다 중요한 사람의 예의

같은 씨앗, 다른 토양

by 팀 포라

귀인이 된 퇴사자

퇴사를 앞둔 짐 정리의 끝자락, 예상치 못한 단어 하나가 내 마음의 문턱에 걸렸다. “차장님이 제 인생의 귀인이세요.” 같은 팀 동료가 건넨 말이었다. 내가 그분께 해드린 것은 대단한 구원도, 거창한 가르침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먼저 익히고 실무에 적용해온 ‘AI 활용법’을 곁에서 조금 더 세심하게 공유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공유의 결과는 놀라웠다. 나보다 적지 않은 연배임에도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새로운 파도를 탔고, 현재는 기획부터 화면 설계까지 AI 에이전트와 협업하며 업무 효율을 200% 이상 끌어올리셨다.

우리는 이제 화면을 보며 함께 웃는다. 처음의 막막함이 확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가르쳐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달콤한 퇴사 선물이기도 했다.


'기술'이라는 씨앗, '태도'라는 토양

아이러니한 지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나는 분명 팀원 모두에게 똑같은 씨앗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그 씨앗이 싹을 틔운 곳은 오직 열정적인 동료의 토양뿐이었다. 어떤 이에게 AI는 ‘버튼만 누르면 다 되는 마법’이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귀찮은 잔소리’였다. 내가 열성을 다해 노하우를 설명할 때, 누군가는 하품을 참지 못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 표정에는 ‘어차피 AI가 다 해주는데 뭘 그렇게까지 배워야 하나’라는 안일함과, 동료의 호의를 가볍게 여기는 무례함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모른다. AI가 똑똑해질수록 그것을 부리는 인간의 맥락과 디테일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것을. 시장 조사부터 문제 분석, 카피라이팅, 정책 설정, 그리고 사이트 개발까지. 이 모든 것을 하루 안에 해내는 기적은 기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장악하려는 인간의 집요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과 보따리의 거리

이제 내가 떠나면, ‘AI가 다 해주는데 뭐가 어렵냐’던 이들이 나의 업무를 인계받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내가 구축해놓은 AI를 써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도구는 주인만큼만 일하기 때문이다. 가장 씁쓸한 것은 ‘태도’가 결여된 사람들의 보상 심리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심보. 동료가 쏟은 시간과 노력을 당연한 전유물로 여기는 이들에게 나는 더 이상의 호의를 베풀지 않기로 했다. 태도가 글러 먹은 이에게는 딱 정해진 매뉴얼만큼만, 선을 넘지 않는 차가운 친절로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다. 그것이 내 진심을 귀하게 여겨준 ‘귀인’에 대한 예의이자, 내 노력의 가치를 스스로 지키는 법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길에 남기는 문장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좋은 도구가 손에 쥐어져도 그것을 감사히 여기고 갈고닦는 사람과, 그저 남이 차려준 밥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의 미래는 결코 같을 수 없다.


나는 이제 홀가분하게 이 자리를 떠난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귀인’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꾼’으로 기억되겠지만 상관없다.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일수록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국 인간의 '태도'라는 사실을, 나는 이번 퇴사길에서 다시 한번 확신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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