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이들에게 보내는 용기의 편지
첫 번째 이직은 '그럴 수 있는 일'이 됩니다. 두 번째는 '조금 부적응자'인가 싶고, 세 번째는 '문제아'라는 딱지가 붙죠. 네 번째가 되면 '이상한 놈' 취급을 받다가, 다섯 번째에 이르면 사람들은 비로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거, 미친놈이네.”
여섯 번째는 경악, 일곱 번째는 의문, 여덟 번째쯤 되면 "대체 어떤 사람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러다 아홉 번째를 넘어 열 번째에 이르면 비로소 '실력자'라는 수식어가 붙고, 열한 번째부터는 "일단 한번 만나나 보자"며 태도가 바뀝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인생에 참으로 쉽게 선을 긋고 단정을 짓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걷는 그 좁은 길이 세상의 유일한 정답인 양, 그 궤도에서 벗어난 이들의 꿈을 막아서곤 하죠. 하지만 세상은 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했습니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24개의 도메인을 정규직으로 거쳤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떠돌이'의 기록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성장'의 기록입니다. 단 한 번도 업무적으로 문제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5년 걸려 배울 것을 3개월 만에 끝내기 위해, 남들보다 곱절의 시간을 썼고 곱절로 일했습니다.
사람들은 결과물만 봅니다.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모습만 보며 "운이 좋네", "특이하네"라고 말하죠.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발짓은 보려 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쏟아부은 그 처절한 노력은 '이상한 놈'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지곤 합니다.
보이는 것만 믿고, 꾸며진 것에만 환호하는 세상에서 본질을 지키며 길을 찾아가는 이들은 언제나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해봅시다. 길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을 향한 손가락질, 그 본질은 사실 '질투'입니다.
자신은 감히 던져보지도 못한 사직서, 그 종이 한 장에 담긴 용기가 부러워서입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는 진실을 행동으로 옮기는 당신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주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신의 도전을 '부적응'으로 몰아넣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멈춰버린 삶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미친놈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왜 우리는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의 속도를 늦춰야 할까요?
인생은 결국 내가 살아내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오직 나만이 나를 온전히 신경 써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나로서 바로 서고,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에게 진정한 사랑과 에너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지키는 '성실함'은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금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나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다음 발걸음이 무겁나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지도를 그리는 중입니다. 24번의 이직을 거치며 제가 깨달은 것은, 결국 끝까지 나를 믿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자신만의 '전문성'이라는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미친놈 소리를 듣고 있다면,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지금 세상이 정해놓은 울타리를 넘어 당신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남들의 시선에 당신의 가능성을 가두지 마세요. 꾸며진 모습이 아니면 믿어주지 않는 이들을 위해 당신을 포장하지도 마세요. 당신의 치열한 발짓은 결국 결과로 증명될 것이고, 그제야 사람들은 당신을 '실력자'라 부르며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오직 당신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그것이 당신이 세상을 가장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