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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나무 Apr 26. 2023

우리 신화 다시 읽기
-<초암제>, <천지왕본풀이>

이 세상의 처음은 밤과 낮이 모두 캄캄했다. 이 때 남방국 일월궁의 청의동자와 하늘옥황 도수문장이 이 내려와 축원하자 해가 둘, 달이 둘 솟아났다. 세상은 밝아졌지만 햇볕에 사람이 죽고 달빛에 얼어 죽었다. 이 때 인간세상에 무도막심한 수명장자가 몹시 사나운 말과 소, 개들을 아홉 마리씩 거느리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늘의 천지왕에게까지 도전하여 둘은 힘을 겨루었다. 


수명장자는 천지왕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살려달라고 빌지 않았고 그의 배포에 천지왕은 물러났다. 천지왕은 돌아가는 길에 백주할망의 집에 머물고 백주할망의 딸과 부부가 되었다. 사흘 뒤에 천지왕은 부인에게 박이왕, 그리고 대별왕, 소별왕 이라고 자식의 이름을 미리 지어주고 부자 간의 증표를 주고 하늘로 돌아갔다. 


형제의 나이가 일곱 살이 되자 아버지를 찾아갔다. 세상에 해와 달이 두 개씩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은 천지왕은 활과 화살을 주어 해와 달은 하나씩만 남게 되었다. 이후 대별왕과 소별왕은 수수께끼와 꽃 피우기 내기를 통해 이기는 쪽이 이승을, 지는 쪽이 저승을 차지하기로 하였다. 


대별왕이 내기에 이겼으나 소별왕의 편법으로 대별왕이 저승을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대별왕은 소별왕에게 “만약에 네가 잘못하면 재미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저승으로 떠난다. 소별왕은 수명장자를 불러 능지처참하고 뼈와 살을 갈아서 바람에 날리고, 수명장자의 뼈와 살과 피는 파리, 모기, 빈대, 각다귀가 되었다. 이후 소별왕은 선악을 구별하고 복록을 마련하여 인간세상을 다스렸다. 


<천지왕본풀이>에서 대별왕과 소별왕이 인간세상을 차지하기 위하여 내기를 한다. 내기에서 소별왕이 대별왕에게 속임수를 써서 이승을 다스리게 되었다. 수수께끼 두 개와 꽃 피우기가 그것인데 이 내용이 모두 나무와 꽃으로 식물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식물은 일반적으로 생명의 순환을 잘 보여준다. 싹이 나고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지면서 열매와 씨앗을 맺고 다시 이 씨앗에서 싹을 틔우는 하나의 개체가 완전한 순환을 한다. 대별왕이 키운 번성꽃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고 소별왕이 키운 시드는 꽃은 노쇠와 죽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잠을 자면서 꽃을 자라게 하는데, 대별왕이 깊이 잠든 사이 자는 척을 하던 소별왕이 자신의 꽃과 대별왕의 꽃을 바꿔 치기 한다.  꽃을 피우고 자리를 바꾸는 행위는 삶과 죽음이, 이승과 저승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상호교환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 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한다. 


아름답고 생명력이 왕성한 삶의 상태는 쇠하고 사라지는 죽음의 상태로 변하고 다시 생명을 얻는 식물의 살이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순환에 비유되어 생명의 윤회를 보여주고 있다.  


<천지왕본풀이> 뿐만 아니라 우리 신화의 많은 부분에서 꽃 또는 식물은 생명이나 아버지(자신의 근원)와 관련이 있다. 바리 신화에서도 저승에서 가져온 세가지 색깔의 꽃이 각각 죽은 사람의 뼈와 살과 피를 되살린다. 박씨에서 나온 줄기가 아버지를 찾게 해주는 등 식물 또는 꽃은 생명과 뿌리와 관련을 가진다. 


<천지왕본풀이>는 식물의 생명현상을 통해 인간의 삶이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생명을 얻어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신화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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