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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나무 Nov 08. 2023

욕망의 표출로서의 글쓰기

-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을 읽고


『고백록』의 서문에서 장자크 루소는 “제가 비열하고 비천할 때는 비천하게, 제가 선량하고 관대하게 고상했을 때는 관대하고 고상하게, 과거 제 모습 그대로 저를 보여”(12쪽) 주겠다고 말한다. 신고전주의 문학, 예술관에 맞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문학사에서 낭만주의의 시작은 1798년인데, 이 글이 1770년에 완성된 것을 감안하면 그의 이러한 말은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도발이었음에 틀림없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그의 용기는 현재에도 쉽지 않은 행동이다. 루소의 ‘거푸집을 깨는’ 글쓰기에 공감하면서 그의 상상력과 글쓰기를 특히 여성과의 사랑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보았다.


그의 첫 번째 여성과의 관계는 자신의 출산 직후 죽은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루소는 여성과의 관계의 부재를 경험하며 아들을 죽은 어머니의 대체물로 보는 아버지 때문에 일생 동안 여성뿐 만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 맺기도 쉽지 않았다. 따라서 루소는 현실에 발붙이는 것보다 공상의 세계 속에서 완벽한 세상과 자신을 꿈꾸었다. 가없는 상상의 세계 속에서 그의 글쓰기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 세계를 계속해서 확장시킨다.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루소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신비화하면서 상대 여성에게 품게 된 욕망을 충족하는데, 그의 상상 세계 속에서 욕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육체적 욕망은 죄의식과 동반되거나 아예 제거되고 도덕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욕망을 미덕으로 포장하여 최상의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스스로에게 찬사를 보낸다. 여성 인물들에게 ‘사랑과 우정’이라는 캐릭터를 덧씌워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과 사랑의 모델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남성성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그가 생각하는 또는 상상하는 이상적인 남녀관계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로 확장되어 미덕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라는 사상을 내놓게 된다.


정말 이상한 일은 내 상상력이 가장 유쾌하게 용솟음칠 때는 내 처지가 가장 유쾌하지 못할 때이며 반대로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즐거울 때는 내 상상력이 덜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내 고집스러운 성격은 상황에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 대상들은 내 머리에서 기껏해야 있는 그대로를 그려질 뿐이다. 내 머리는 오직 상상의 대상들밖에는 장식할 줄 모른다. 내가 봄을 그리고 싶다면 겨울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고 싶다면 나는 벽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내가 이미 수없이 말한 바이지만 내가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게 되면 나는 거기서 자유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268쪽)


성적 욕망과 그에 대한 금지, 사실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루소는 자신에게 금지된 공간을 글쓰기로 채운다. 금지된 행위를 보충하고자 하는 흥분과 망상은 상상력을 매개로 글을 타고 승화한다. 그의 사랑에 대한 감정이나 글은 삼각관계를 유지할 때 가장 활발하다. 자신의 육체로 상대 여성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생각과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여성에 대한 육체적인 욕망 또는 사랑은 제삼자인 남성의 역할로 고정시킨다. 자신은 여성과 열정적으로 ‘감정적 사랑’을 나눈다. 상대 여성은 그의 눈에서 이미 상상력을 매개로 완벽한 여성으로 변해있고, 그는 이 완벽한 여성과 글쓰기 안에서 육체의 관능을 완벽하게 맛본다. 육체가 부재한 여성과의 ‘관능적인’ 사랑은 오히려 그를 더 대범하고 관능적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그의 글 속에서 이 세 사람의 사랑의 결과는 늘 감정적 사랑을 나눈 루소가 원하는 루소의 승리로 끝나는 것은 당연하다.


루소는 만나는 여성들 거의 모두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고백록』에서 그가 묘사하는 여성들의 외모는 사실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는 않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외모가 이성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될 수는 없지만 첫눈에 사랑에 빠지기에는 쉬운 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통하여 상대 여성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에 외모에 가려진 많은 다른 부분에서 장점을 읽어낸다.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평할 수는 있지만 사람에 대한 그의 이러한 접근법은 인류애로 확장되고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며, 실제로 루소는 당시 사회 제도로 인한 불평등과 곤란함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이해의 대립과 편견이 없는 사회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가 느끼는 사랑의 종류는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사랑과 우정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진다. 사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에 빠지는 그의 성향은 자신을 출산한 후 죽은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삼각관계가 해결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논문에서 상을 받은 후나 왕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풍요가 오히려 자신의 사고와 글쓰기에 해악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하며 거절한 일이나 그동안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의 시계를 버림으로 한 사람의 ‘남자’로 당당히 새로 태어났다는 그의 확신과는 달리 여전히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루소는 모든 여성에게 자신이 바라는 인물상을 덧씌워 완벽한 사랑을 만들어 낸다. 그가 만들어 낸 완벽한 틀 속에서 그의 상상력은 그 틀을 메우고 틀을 벗어나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부재에서 사랑을 느끼는 루소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과 자신이 원하는 실재를 상상력의 힘으로 새롭게 만들어 낸다.  


따라서 루소의 글쓰기의 욕망은 현실에서 포기한 모든 부재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글을 씀으로써 부재로 인한 비어있는 공간을 채운다. 그의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넘치도록 공간을 채우면 비로소 그의 성적 욕망과 금지는 합을 이루고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낭독을 끝냈고, 모두들 말이 없었다. 내게는 데그몽 부인 한 사람만이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눈에 보이도록 몸을 떨었지만, 매우 신속히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처럼 침묵을 지켰다. 이것이 내가 이 낭독과 고백으로부터 얻은 성과였다.(591쪽)


상상력을 매개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평등한 사회를 구성하고자 한 루소의 진실한 고백은 독자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데그몽 부인의 떨리는 몸에서 그의 진정성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글쓰기는 다소 비틀린 욕망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는 지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루소의 상상이 만들어 낸 글 속의 여성은 결국 현실의 여성이 원하는 타인의 시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감추고 싶은 개인의 단점과 허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루소의 고백은 현재에도 중요한 글쓰기의 방법 중의 하나이다.




참고도서

장자크 루소 지음, 이용철 옮김, 『고백록 1』, 이용철 옮김, 나남, 2012.

장자크 루소 지음, 이용철 옮김, 『고백록 2』, 이용철 옮김, 나남,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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