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아내의 상자」, 『상속』, 문학과 지성사, 2002.
한강, 「내 여자의 열매」, 『내 여자의 열매』, 문학과 지성사, 2018.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러 관계에 묶인다. 그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강제적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관계, 그리고 여러 사회적 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은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요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슈도 이 무수히 많은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며, 특히 여성은 역사가 지속되는 내내 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당한 억압과 차별을 받아왔고 이 억압과 차별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는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와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여러 관계들 중, 특히 부부관계에 주목하여 읽어 보고자 한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의 주요 등장인물은 작품의 서술자인 나와 아내, 그리고 옆집 여자이다.
방부제 향이 희미하게 떠다니는 방의 귀퉁이에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 간 아내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귀신도 아닌 그 중간의 어정쩡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쌓은 상자 속에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던’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아내는 자신과 관계가 있는 외부의 모든 것들을 상자 안에 채워 뚜껑을 닫는다. 아내가 하는 이야기는 혼잣말처럼, 확실치 않은 기억에서 나오지만 나는 아내와의 소통이 명료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단정하게 집안일을 끝내 놓고 아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뚜껑이 닫힌 상자들 곁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옆집에 이사 온 여자는 아내와는 전혀 다르다. 외국 지사에 나가 있는 남편과 아들 둘, 개 두 마리에 집을 온갖 가구로 꽉 채워 놓았다. 수영과 마사지를 하러 다니는 그녀는 집 안에 빈 곳이 있으면 허전해서 참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외로운 옆집 여자의 차를 타고 아내는 외출이 잦아진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고, 평온한 일상의 모습과 더 깊은 잠을 자는 아내를 남편은 정신병원으로 데려간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집 안의 천사’(주1)라는 말은 이상적인 여성을 대표하는 말이다. 이 단어는 완벽한 현모양처로 매우 장식적이고 정적인 이미지를 나타낸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 속 아내에게 남편은 이 ‘천사’의 이미지를 입히고 있다. 까탈스러운 입맛에 맞는 얌전한 음식 솜씨를 지니고 있으며 집안일을 단정하게 하는 아내에게 만족한다.
된장찌개는 불을 잘 조절했기 때문에 멸치의 비린 맛이나 된장의 떫은맛이 안 났다. 갈치를 구워도 그릴에 달라붙지 않고 바삭바삭하게 속까지 익혔으며 아내가 부친 달걀말이는 약한 불에 익혀서 부드럽고 단단하게 잘 말려 있었다. 아내는 정돈도 잘했다. 손톱깎이나 여분의 건전지, 옷솔과 드릴 따위를 늘 같은 자리에서 찾아 쓸 수 있었고 욕실에는 늘 가슬가슬한 수건이, 냉장고의 냉동실에는 반찬 냄새가 배지 않은 깨끗한 얼음이 있었다. (「아내의 상자」, 285-6)
그러나 아내가 자신이 아직 보지 않은 신문을 오려냈을 때는 아내가 놀라 입을 다물 정도로 화를 내고, 아내가 만나는 옆집 여자에 대해서는 유난히 짙은 화장과 자신의 차 보다 한 등급 위의 중형차(297)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으며, 봄이 되기 전에 한 번 가보자고 했던 숲으로의 소풍 약속도 당연하다는 듯이 잊어버리는 인물이다. 아내의 관심을 끄는 뉴스의 내용에는 호들갑과 배부른 소리라 치부하고 옆집 여자와의 만남에는 혹시 다른 누군가(남자)가 동석을 하지 않았는지만 궁금하며 그들의 외로움과 만남의 목적에는 관심이 없다. 조직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가 공고히 됨에 따라 아내는 사소하고 제자리에 준비된 관계로 여겨진다. 그의 주된 관심은 아내의 임신이다.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불임클리닉에 갈 때이며 사랑의 욕망조차도 아내의 배란기에 맞춰 생겨 날 정도로 “규칙적이고, 무엇에든 잘 적응하는” “그러니까 상식적인 사람”(303)이다. ‘나’는 아내를 완전하게 ‘천사’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이런 남편에게 끊임없이 소리 내며, 삶을 원한다.
어느 날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말라 버려요!”
그녀의 손에 든 그릇 속에는 모래처럼 뻣뻣하게 마른밥이 들어있었다. 간장 접시 좀 보세요. 과연 간장은 죄다 증발해 버리고 검게 물든 소금 알갱이뿐이었다. 사과도 하룻밤만 지나면 쪼글쪼글 해져요. 시멘트 벽이 수분을 다 빨아들이나 봐요. 이러다가 나도 말라비틀어질 거예요. 자고 나면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 몸이 삐거덕거리는 것 같다구요. (289)
그러나 남편은 그녀가 내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전하는 소식이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변화”와 “삭막하지 않은 생활”(280)을 위해 신도시로 이사를 왔지만 부부의 일상은 변화가 없었다. 이제 아내는 자신의 몸이 아이를 원치 않는 이유를 알게 된다. 유전법칙에 의해 자신은 도태되도록 되어 있다고 말한다. 소년원에서 거세당한 아이와 옆집의 “더러운 개새끼”(296)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옆집 아이들의 학대와 살을 파고드는 목줄에도 “자살 같은 걸 안하”(296)는 그 더러운 개새끼의 삶의 대한 욕구는 아내의 욕구로 읽을 수 있다. 아내의 삶을 향한 욕구는 “그린 파크”(308)의 특실로 이어진다. “베개에 긴 머리를 탐스럽게(주2) 흩뜨리고 혼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하얀 얼굴”은 나의 단정하게 제자리에 정돈된 일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아내의 변명조차도 요구하지 않고 오직 벗은 알몸에만 분노한 나는 “뻔뻔스럽게도! 왜 자살 같은 걸 안 하”(310)는 아내의 방을 “빛과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틈을 다 종이로 발라” “그 위에 파라핀을 덧칠해서 봉인해 버리고 싶”(310)어 한다. 이제 남편은 아내를 더 견고한 통제 아래로 데려간다.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 역시 「아내의 상자」와 마찬가지로 서술자이면서 남편인 나와 그 아내가 주요 인물이다.
어느 날 아내의 몸에 피멍이 들었다. 멍은 점점 그 색이 진해지면서 온몸으로 퍼져 갔다. 병원에서도 아내의 문제를 찾지 못했다. 안정된 가정을 흔드는 비밀스럽고 불가해한 아내의 상황을 남편은 자신을 외롭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자신을 외롭게 하는 아내에게 분노한다. 일주일간의 해외출장을 다녀온 날 남편은 베란다에서 식물로 변한 아내를 발견한다. 매일 아침 뒷산 약수를 길어와 부어주고 기름진 새 흙으로 열심히 가꾸니 연두색의 딱딱한 열매를 받게 되었다. 다음 날 작은 화분을 사서 열매를 심어 아내의 화분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평생을 정착하지 않고 살고 싶어”(22)하던 아내는 늘 자유를 꿈꿨지만 화초와 채소에 대한 이야기와 외롭게 살았다는 그의 이야기에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 후 나는 안정을 얻고 만족한 삶을 산다.
지난 삼 년은 나에게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힘에 버겁지도 못 미치지도 않는 직장인, 다행히도 무심하여 전세금을 올려 받지 않는 집주인, 만기가 가까워오는 아파트 청약금, 별다른 애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충실한 아내까지. 모든 것이 적당히 덥혀진 욕조의 온수처럼 차랑거리며 내 고단한 몸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25)
하지만 “결혼 전에는 함께 거리를 걷기가 부끄러울 만큼 어려 보”이고 “천진한 이목구비”(11)는 삼 년이 지난 지금 피로의 흔적으로 오히려 늙어 보이고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 같지 않았다.
. . . . . .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갈 것 같단 말이야. 그 십삼 층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 같단 말이야.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야. (17-8)
그러나 몸이 자주 아픈 탓이었겠지만, 좁은 어깨를 시든 배춧잎처럼 늘어뜨린 채 베란다 유리문에 뺨을 붙이고 서서 질주하는 차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내를 보면 가슴이 내려앉곤 했다. 마치 누군가의 투명한 팔이 아내의 어깨를 결박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 사슬과 묵직한 철구가 발과 다리를 움쭉달싹 못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은 채 거기 서 있었다. (19-20)
결혼 후 자신의 소망과 달리 변해버린 아내의 모습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아내의 예민함을 참을 수 없어 남편은 “더러운 비”(23)를 손바닥 가득 담아 아내의 얼굴에 뿌린다. 남편의 폭력에 아내는 더 이상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남편이 아내 때문에 겪는다고 생각하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 때문에 화를 내고 아내에게 가한 폭력은 “아무래도 헤어질 수 없어서”(19) 세상 끝까지, 가장 먼 곳으로, 정착하지 않고 유목하고자 한 그녀의 자유를 포기하고 남편과 정착한 아파트의 십 삼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혈관 구석구석에 낭종처럼 뭉쳐 있는 나쁜 피를 갈아내고, 자유로운 공기로 낡은 폐를 씻어 내고 싶”(18)었던 아내는 드디어 변신하여 온몸을 진초록으로 만들고 “바람과 햇빛과 물만으로 살 수 있”(33)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변신한 아내는 이제껏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 지고, 진딧물을 잡아주고 뒷산의 약수를 떠다 주며 자신의 외로움을 없애고 다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된 듯이 보인다. 남편은 커다란 화분과 기름진 새 흙으로 정성껏 아내를 심는다.(주3) “아파트 베란다에 큼직한 화분들을 들여 거기다 파랑 상추랑 들깨를 심는” 남편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내는 베란다를 뚫고 옥상까지 그 생장점을 하늘 끝까지 밀어 올리는, 이 집을 떠나는 꿈을 밤마다 꾸면서,
어머니, 무서워요. 내 사지를 떨구어야 해요. 이 화분은 너무 좁고 딱딱해요. 뻗어나간 뿌리 끝이 아파요. 어머니,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죽어요. 이제 다시는 이 세상에 피어나지 못하겠지요. (37)
그녀는 사라지고 있다.
남편들은 여전히 아내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아내들을 ‘집안의 천사’로 만들고자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거나 약간의 착오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 소망의 끈을 결코 놓으려 하지 않는다.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 병원과 베란다의 화분에 밀어 넣어지더라도 자유를 향한 꿈을 아내들은 꾼다.
남편의 분노에도 유령처럼 집 안을 다니며 “열심히 밥을 먹”(「아내의 상자」, 312)는 아내는 이제 숲 속 깊은 곳의 병원에 있다. 나는 자신을 배반한 아내에게 나의 동의 없이는 병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내의 방을 없애는 것으로 그녀를 벌주지만 “풀이 북슬북슬한 방둑길”을 지나 “가고 싶어 하던 숲”(316)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식물이 된 아내(「내 여자의 열매」)는 그녀를 옥죄던 여성(또는 인간)의 몸을 식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비록 남편이 식물이 된 그녀를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에 또다시 잡아 놓기는 하지만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열매”라는 형상으로 여성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남편이 작은 화분들을 사서 그 열매를 심고 여전히 아파트 베란다에 정착시키고자 하겠지만 언젠가 베란다를 뚫고 그녀가 밤마다 꾼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1.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에세이 「여성의 직업(Professions of Women)」에 나오는 ‘The Angel of the House’를 차용했음.
2. 볼드체- 필자강조.
3. 볼드체-필자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