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는 이유, 돈을 버는 이유가 여행을 가기 위해서랄까? 나는 언제나 여행을 준비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으고, 항공권이 저렴하게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예약을 한다. 그리고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지역의 정보가 나와있는 책이랑 다큐멘터리, 블로그 등을 보면서 여행가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나는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여행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여행의 맛과 멋을 알기 전에는 난 여행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사실, 왜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외지에 가면 고생만 하고, 돈은 돈대로 쓰고, 돈쓰고나면 내 품에 남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왜 사람들은 여행을 가는가에 대한 궁금점이 생겼다. 그렇게 그 해답을 얻기 위하여 대학과 대학원을 관광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물론, 관광학을 전공한다고 하여, 여행자들의 심리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딱딱한 학문적 내용에 질리기도 했고, 여행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려고 했던 점이 더 문제였다. 결국, 나 스스로가 여행자가 되지도 못하고,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게 내가 선택한 전공이 질려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관광 전공이 그닥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아~
그러다가, 우연히 학과에서 진행하는 연합답사의 팀장을 맡게 되었다. 연합답사는 관광학을 전공하는 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여하는 답사 프로그램으로, 관광지를 정하여 그 지역에서 어떠한 것을 보고 돌아오며,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논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행을 다니지도 않은 내가 여행장소를 정하고, 여행일정을 정한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보고 내달리라니. 그래도 여행에 대한 컨셉과 논의해야 할 사항을 정하고, 다시 장소와 일정을 잡고 났더니, 내가 스스로 준비해서였을까? 여행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여행은 내 스스로를 여행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과 유사하게 나 또한 돈을 벌어야 했다. 게다가 결혼을 하면서는 더더욱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논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 여행자로 지내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직장인 여행자의 내 마음대로의 정의는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비용을 가지고, 직장에서 눈치를 살피며, 최소한의 업무 로드(짐)를 고려하여, 최대의 효용으로서의 여행을 다녀오는 여행자”라고 생각한다. 즉, 직장인 여행자는 걸어서 세계속으로, 세계테마기행 등의 여행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전문적인 여행작가와는 다르다.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거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여 돈을 벌지 않는 이상, 피고용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관광개발과 관련된 연구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업무 특성상, 여행을 갈 일이나, 시간이 비교적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직장인 여행자는 길게 여행을 해봤자, 명절 연휴, 연차 등을 다 합해서 아무리 길어야 2주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한 번 여행을 갈 때, 목적지 국가 이외에 옆의 인접 국가를 함께 여행하는 것이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또한, 한 번 원하는 지역까지 가려면 도심에서도 2~3일씩 걸리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페루의 마추피추 같은 곳도 너무나 가보고 싶었음에도 가기 어려웠다.
여행 가기에 직장인으로서의 시간은 너무나 부족하잖아!!
그렇다고 일정을 매우 타이트하게 잡고, 또 이동이나 식사를 한 번에 처리해주는 패키지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패키지 여행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라기 보다는 취향의 문제였다. 패키지 여행으로 처음 유럽을 다녀왔을 때, 거의 하루에 한 국가를 모두 봐야 하고, 심지어는 밤 10시에 숙소에 들어왔다가,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출발하는 강행군을 할 자신이 더 이상 없었다. 나는 20대 직장인 여행자가 아닌, 이제 그래도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선 반(半)꼰대 직장인 여행자이기에, 내 저질 체력은 내가 더 잘 아니깐.
그런데도 여행은 계속 가고 싶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시간이 너무 한정됐다.
그래서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한량"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좋아하는 모든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 그렇게 조언하는 것은 정말로 무책임한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삶에서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면, 무언가 다른 방도가 없는지를 찾을 수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원래 계속 해오던 업무가 관광지 개발이나 경영 컨설팅, 사업타당성 분석과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직장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조금은 여유있게 이러한 업무를 계속 할 수 있었다. 또 여행이나 관광분야 관련하여 기업체, 공무원 대상의 강의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강의를 통해서 생활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만약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보면, 누가 알겠는가. 여행에 따른 내 무형의 자산가치가 증대되어 더 많은 기회가 생길지도.
<글담출판>에서 번역이 되어 나온 린마틴의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린마틴은 70세가 되던 해, 이렇게 늙어가지 말고 부부가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닐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집과 함께 자신의 많은 재산을 다 팔게 된다. 그들은 지금도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 한 편으로는 여행을 다닐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렇게 여행을 다닌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결심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그러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결심이 필요했으리라. 그동안 살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모든 짐을 털어버리는 린마틴 부부는 참으로 멋져 보였다.
직장인 여행자에서 보다 가난하지만 여유로운 여행자가 되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했다. 물론, 여기에 있는 기록들은 직장인 여행자로서의 기록도 있고, 가난하지만 여유로운 여행자로서의 기록도 있다. 사실 2가지의 기록의 질은 큰 차이가 없었다. 여행은 기간과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다가가느냐가 더 큰 문제였으니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직장인이라고 하여, 비전문적인 여행자라 하여 더 여행이 재미없거나, 무엇인가 비전문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일부 전문적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여행작가이거나, 전 세계 몇 개국을 돌아다녔다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일수록, 그들이 여행을 가서 본 것이 무엇을 본 것이고, 무엇을 위해 본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다. (일부의 경우이다. 나는 많은 여행작가의 글을 좋아하는데, 특히 오소희 작가나 노동효 작가의 글에서는 여행에 대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여행은 자랑질이 아니다. “나 어디 가봤는데 말이야!” 하면서 시작하는 여행 이야기야말로 들어볼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살아보지도 않은 이상 얼마나 그곳을 잘 알겠는가. 마치 외국인이 서울, 그것도 경복궁이나 명동 일대를 2박 3일 둘러보고 내가 한국을 다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여행하고 자랑질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ㅠ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어디 갔다 왔다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여행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러한 면에서 여행은 내게는 큰 스승이 된다.
내가 사는 일상에만 들어와 있으면, 이 일상이 정상인지, 또 올바른지 모를 때가 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실험을 하는데, 대조군이 없이 실험하면 그 실험결과가 제대로 성과를 냈는지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내게 여행은 우리 삶의 대조군이 된다.
몇 십년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며 지속적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 달려온 것이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고, 아무튼 자의반 타의반 이렇게 흘러왔다. 그런데 그렇게 달려온 사회를 한 번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보니 부끄러운 것이 너무나 많이 보였다.
내 아이만 잘 되기 위해 인성교육은 어디로 가고, 성적과 경쟁이 만연한 사회, 돈의 노예가 된 나머지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며 일을 부리는 사람이나 회사를 하대하는 이른바 갑질의 사회,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물 속에 생매장시켜야 했던 -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찾을 수조차 없는 – 세월호의 사회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아니, 가슴이 아팠다라는 표현은 부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했다. 나 또한 경쟁을 부추키고, 갑질하고, 배를 가라앉힌 장본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여행을 가서 본 것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사회에 투영이 되어 보였다. 여행을 가면, 다시 우리 사회가 보이곤 했다. 나는 이렇게 여행을 통해 우리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내가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사회상을 끈질기게 추격하거나 면밀하게 관찰하는 편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나는 직장인 여행자였다.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행을 가서 본 우리의 모습은 어땠을지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이야기하고 싶은 궁극적인 내용은 바로 요새 우리 나라의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른바 "헬조선"에서의 희망이다.
사는 게 힘든 우리.. 그러다보니 "헬조선"이라는 말이 익숙해지고 있는 지금이다
나는 여행이 분명 이러한 나라의 "희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여행을 다니다보면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된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나를 투영해본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또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여행에서 (무식하여 아주 디테일하게 까지는 아니지만) 이러한 몇 가지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그것이 우리에 대한 반성이든, 또 남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이제 여행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길에 대한 "희망"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다른 선진국에서의 동경과 배울 점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떠한 것은 우리보다 발전되지 않은 곳에서의 반성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간에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