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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Oct 23. 2015

아빠가 하고싶은 딸의 결혼식

딸을 보내기 싫은 아빠는 결혼식이 싫다

포카라 피시테일 롯지  


딸의 이야기  


“아빠, 결혼은 하고 싶은데 결혼식은 하기 싫어.”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로 돌아와 이 동네에서 가장 고급호텔이라는 피시테일 롯지(Fish Tail Lodge)를 찾았다. 페와 호수 끝자락에 위치한 이 호텔은 카누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호수와 사랑곳이 한 눈에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그 뒤로 설산이 보일 테니 더욱 멋질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많은 네팔 사람들이 예쁜 옷을 입고 이마에는 빨간 쌀알을 붙인 채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물어보니 방금 결혼식이 끝났다고 했다. 아쉽게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예쁜 옷을 차려입고 돌아다니는 하객들을 보며 우리도 나름 파티의 여운을 즐길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의 결혼식을 상상하는 순간, 결혼을 하고 싶다던 나는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아빠에게 뱉어버렸다.


누구나 그랬듯 나도 어릴 때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 홀로 조명을 받아 빛나는 순간을 꿈꿨었다. 사실 결혼이 뭔지도 몰랐을 때니 그저 예쁜 공주님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는 결혼적령기가 되어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니 ‘공주님’이 되는 순간을 위해 거쳐야할 힘든 과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새벽부터 나서야 하는 메이크업, 신부대기실에서부터 하루 종일 장착하고 있어야하는 웃음, 눈이 마주칠 때 짧은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 친구들, 생전 처음 보는 먼 친척에게 들어야하는 형식적인 축하인사, 끊을 수 없으니 듣게 되는 뻔하고 지루한 주례사, 사회자가 동의 없이 진행하는 짓궂은 장난에 장단 맞추기,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바쁘게 떠나야하는 신혼여행. 정말 ‘공주님’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이 힘든 것은 당일뿐이 아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지면 내 행복까지 버려질 것 같아서 보내기 망설여지는 카드청첩장, 모바일로 보냈다고 혹시 맘 상해하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청첩장링크, 누가 올 수 있는지 확답을 받을 수도 없는데 인원은 확정지어야하는 예식장, 수도 없이 많은 업체의 포트폴리오를 뒤져가며 골라야하는 스튜디오 사진,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지극히도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할 상견례. 여기다 예단이다 뭐다, 정말 뭔지도 모르겠는 일들이 덧붙여지면 아무리 사이좋은 커플이라도 싸움이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것이다.     


신랑 입장으로 시작해서 결혼행진곡으로 끝나는 1시간 이내의 결혼식을 수도 없이 많이 찾아가면서 이제는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많은 결혼식이 준비되는 과정 또한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심정도 이해가 간다. 양가 부모님의 손님들을 오지마시라 할 수도 없고, 특별하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준비하고 신경써야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진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는 예비부부들은 시간도 없고 바쁘니 그냥 남들이 만들어놓은 형식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신랑신부가 직접 축가나 축하공연을 준비하거나, 친구 혹은 가족의 축사가 있고, 주례가 없는 대신 동영상이 상영되는 정도면 꽤나 준비를 많이 한 결혼식이다.     


결혼식은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어느 순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축하와 응원을 받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양가 부모님이 결혼을 결심한 둘의 의사를 가장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상상하는 나의 결혼식은 이러하다. 연애할 때 자주가던 카페를 하루 통째로 빌릴 것이다. 지인들은 그룹별로 몇 시쯤 같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언질을 해주겠지만 하루 중 언제든지 편한 시간에 찾아오면 된다고 할 테다. 카페가 그리 크지는 않으니 엄청난 식사 대접까진 못하고 간단한 핑거푸드를 준비할 것이다. 나는 하루종일 찾아오는 지인들과 수다를 떨어야하니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는 입지 않겠다. 그냥 예쁜 원피스정도만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부모님의 손님이 찾아올 시간에는 동생에게 축가를 부탁할 것이고, 친구들이 찾아올 때는 또 다른 친구에게 축가를 부탁할 것이다. 신랑의 친구가 많이 찾아올 때는 신부의 인생 이야기, 신부의 친구가 많이 찾아올 때는 신랑의 인생 이야기, 중간 중간 우리의 연애 이야기, 각자의 다짐 낭독, 소중한 사람들의 축사,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인생에 대한 전략보고회가 될 것이다. 하객들은 청첩장으로 받았을 일일 프로그램을 보고 본인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시간에 맞춰서 오면 된다. 카페 전체를 갤러리처럼 우리의 사진으로 꾸며 놓을 테니 언제든지 충분히 둘러보고 가실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이야기를 하는 자리니 딱히 준비할 것도 많지 않다. 저녁이 지난 밤 시간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가장 친한 친구들과 밤새도록 와인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축하하고 싶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결혼식이다. 이런 상상을 함께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결혼식을 우리 아빠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아빠의 이야기   


“아빠, 결혼은 하고 싶은데 결혼식은 하기 싫어.”


포카라가 한눈에 보이는 경치를 보면서 칵테일을 마시던 중 방금 결혼식을 마친 하객들을 보면서 딸이 한 마디 한다. 이미 결혼식을 한지 만 30년이 된 나이지만 나 역시 결혼식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내 결혼식은 1985년 5월 1일이다. 지금은 노동절이 휴일이지만, 내 기억에 그날은 휴일이 아니었다. 5월이라기에는 날씨도 무척 덥고 햇살도 따가웠다. 와이셔츠와 양복이 벗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훌륭한 분이시라며 장인어른이 모셔온 주례선생님은 어찌나 그리 말을 길게 하시는지 신랑인 나조차 짜증이 났다. 아내의 드레스는 정말 예뻤다. 그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진부한 결혼식이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 기념으로 찍어둔 비디오도 다시 보지 않았다. 10년 쯤 지난 뒤에 우리 아이들이 비디오와 앨범을 꺼내보며 가끔씩 키득거리기는 했다.     


신혼여행 또한 아주 피곤했다. 그 당시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제주도가 최고의 신혼여행지였고, 설악산이나 부산으로도 많이 갔었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소개해준 렌트카 기사가 제주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되는 3박4일의 여행은 모두 기사 아저씨의 진행과 연출에 맡겨진다. 온갖 포즈로 연출된 스냅사진은 기사 아저씨가 얼마나 현란하게 카메라를 다루느냐에 따라 달렸다. 피곤한 결혼식을 마치고 바로 떠나온 여행에서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밤을 보내는 어색함이 첫날밤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나니 제자들이 가끔 주례를 부탁한다. 진부하고 전형적인 결혼식이 싫어 대부분 사양하지만 주례선생님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가끔 마지못해 승낙하고는 한다. 판에 박힌 결혼식에 판에 박힌 주례를 서면서 스스로가 정한 규칙은 절대 5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하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주례로서 사진에 얼굴을 남기고 떠나주면 그만이다.      


나의 결혼식과 내가 찾아갔던 수많은 결혼식들을 떠올렸을 때 ‘결혼은 하고 싶지만 결혼식은 하기 싫다’는 딸의 말에 공감을 했다. 우리 딸은 평범하지 않은 결혼식을 면 좋겠다. 거창한 호텔 결혼식에서 식장의 크기와 하객의 숫자를 맞추려고 노심초사하기도 싫고, 한 시간 간격으로 이루어져 누가 누구의 하객인지도 모르는 공장 같은 예식장 결혼식도 싫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교회나 성당의 결혼식도 싫다. 하객이 가져오는 축의금이 많을지 결혼식의 비용이 많을지 고민해야하는 내 모습은 더더욱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다고 유튜브에 올릴만한 스카이다이빙 결혼식이나 스쿠버다이빙 결혼식도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영화에서 보듯 라스베가스로 떠나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말겠다. 너무 감정이입을 했나보다.      


우리 딸이 나 몰래 라스베가스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면 조금 서운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진부한 결혼식에서 딸과 함께 입장하여 미래의 사위에게 내 딸을 넘기는 의식은 정말 하기 싫다. 평생 잘 키운 소 한 마리의 고삐를 건네듯 손을 놓아주는 그런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다. 딸이 상상하는 결혼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까지 신이 났다. 당사자들도 기억에 남을 결혼식이지만 부모인 내게도 기억에 남을 결혼식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결혼식을 하는 불행인지 행운인지가 내게 찾아온다면 나도 지민이가 상상하는 결혼식을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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