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의 세상

피렌체

by 손봉기

그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의 산이라고 불리는 산에는 쉴 새 없는 바람이 불었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첫사랑인 라우라의 모습만이 계속 맴돌았다. 수도사인 그는 그녀의 모습을 지우려 머리를 저어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 위로 세속적 쾌락과 명성을 갈구하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세속적 번뇌가 있을 때마다 산에 올랐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산을 오르다 보면 모든 고민들이 사라지고 숲길을 지날 때면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산 중턱을 지나자 호흡도 안정되고 생각들이 단순해졌다.


세속적인 사랑과 명성은 찰나적이며 오직 종교적 귀의만이 인간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뚜렷해지자 그는 마음 깊은 기쁨을 느꼈다.


4시간의 힘겨운 산행 끝에 산 정상에 오른 그의 눈앞에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르는 피레네 산맥이 펼쳐졌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리용 주변의 야산과 넓은 바다로 이어지는 론 강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상의 고요함이 좋았다.


그렇게 넋 놓고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불현듯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배낭을 뒤져서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가 찾은 구절은 고대 로마 작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중 다음의 문장이다.

사람들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센 파도와 넓게 흐르는 강과 별들을 보며 놀라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이 아무리 경이롭다 하더라도 세속의 사물인데 그보다 더 소중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일순간 그는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아름다운 자연만큼 소중한 것이 인간인데 자신이 인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산을 내려올 때까지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피렌체 역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으면 피렌체 대성당이 나타난다. 흰색과 분홍색 그리고 녹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피렌체 대성당은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다.


464개의 계단을 따라 꽃봉오리에 해당하는 거대한 성당의 돔 지붕인 쿠폴라에 올라서면 붉은 지붕의 피렌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십자군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숙박 등을 제공하며 거대한 부를 형성한 피렌체 상인들은 자치권을 가진 도시 국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큰 성당을 지었다.


1300년에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성당을 지은 지 100년이 지났지만 거대한 성당의 지붕을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초기 피렌체 상인들은 성당의 지붕으로 중세 고딕 양식의 첨탑을 원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자 당시 유행하는 로마식 돔으로 변경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지름 47미터의 거대한 돔을 올릴 기술이 부족했다. 이를 해결한 사람이 브루넬레스키였다.


한 번도 건축을 해본 적이 없는 브루넬레스키는 로마 판테온의 돔을 연구하며 중간 지지대 없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올릴 계획안을 만들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그의 계획안을 비웃었지만 그는 계란을 세워보라고 이야기한 후 탁자에 깨트려 계란을 세운 후 계란 밑부분이 깨어져도 위에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계란 안에 막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껍질과 내부 막으로 구성된 계란과 같이 대성당의 돔에 이중 천장을 만들어 하중을 분산한 후 판테온처럼 아래서부터 차례로 벽 돌을 쌓아 올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브루넬레스키는 지붕 꼭대기까지 6 각형의 이중 나무틀을 만든 후 나무 틀을 따라 그물을 짜듯이 벽돌을 가로 세로로 엮어 쌓으면서 1년에 2미터씩 지붕을 완성해갔다.


16년 만에 로마식 돔을 완성시킨 브루넬레스키는 본격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중세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고대 그리스 로마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말한다.


1436년 피렌체 하늘 아래 거대한 돔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피렌체 시민들은 북받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쿠폴라를 내려와서 성당을 나서면 광장이 나오고 광장의 모서리에 피렌체 대성당을 설계한 아르놀포 캄비오과 브루넬레스키의 조각상이 나란히 하고 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 공사를 시작하기 20년 전인 1366년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가 종식되자 피렌체 상인들은 신께 감사의 표시로 산 조반니 세례당의 북쪽 청동문을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북쪽 청동 문의 제작 공모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사람은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였으나 최종 제작자로 기베르티가 선정되었다.


공모에 당선된 기베르티는 예수의 일생을 보여주는 북쪽 문을 21년 만에 완성하였으며 다시 동쪽 문 제작을 맡아 27년이 지난 1452년 완성하였다.


세례당 동쪽 문은 황금색으로 장식되었으며 북쪽 문에 비해서 조각된 인물들이 생동감을 가진다. 북쪽 청동문 역시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서 유행이 바뀌어 원근법이 가미된 르네상스 양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동쪽 문을 <천국의 문>이라고 격찬했다



천국의 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작품은 카인과 아벨이다.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뻔뻔스럽게 모른다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손에 는 피 묻은 방망이가 들려 있다. 카인은 머리를 돌리고 있어 그의 뒤통수가 빤질거린다.


청동 문 공모전에 탈락한 브루넬레스키는 실의에 빠져 로마로 떠났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돌아보며 건축가로서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이후 20년의 시간이 흐른 1417년에 벌어진 대성당의 돔 공모전에 응시하여 경쟁자 기베르티를 물리치고 르네상스의 상징인 대성당의 돔을 완성하였다.


대성당 광장에서 좁은 골목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단테 하우스가 나온다.


1265년에 단테가 태어난 이곳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테 하우스 옆 골목에는 그가 평생을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가 결혼을 한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이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베아트리체가 결혼을 하는 장면을 몰래 지켜보는 단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볼 수 있다.



첫눈에 베아트리체에 반한 단테는 그녀의 결혼식까지 몰래 지켜볼 정도로 그녀를 평생 짝사랑했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베아트리체가 병으로 죽자 삶을 포기할 정도로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그 때 그녀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 <새로운 인생>이다.


<새로운 인생>이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라면 단테 최고의 걸작인 <신곡>은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신의 구원과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한 대서사시이다.



<신곡>에서 단테는 삶의 여정에서 때로는 길을 잃지만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지옥의 입구는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별을 따라가다 보면 영광스러운 항구에 실패 없이 도달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감미로운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단테는 천년만에 신 중심의 중세시대를 끝내는 종결자였다.


천년 동안 지속되었던 중세시대를 끝낸 종결자가 단테라면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은 사람은 페트라르카였다.


그는 몽 방투 산에서 내려와 인간의 사랑과 감정을 담은 <칸초니에레>라는 서정 시집을 출판하며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다.


단테의 집을 나와 피렌체 대성당을 가로지르면 산타크로체 성당이 나온다.



산타크로체 성당으로 입장하면 르네상스 최초의 화가인 조토의 작품과 미켈란젤로를 비롯하며 갈릴레오와 마키아 벨리 등 위대한 위인들의 무덤들을 만날 수 있다.



과거의 화려한 작품들과 현재의 고통을 보여주는 무덤 그리고 십자가로 이어지는 미래의 구원을 보여주는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마키아 벨리의 무덤이 오랜 여운을 준다.


노년에 실업자가 되어 낮에는 동네 친구들과 체스와 술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면 관복을 입고 서재로 들어가서 책을 읽고 숙고하는 삶을 보낸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제 죽음도 가난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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