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다

베르사유 궁전

by 손봉기

결혼한 지 23년 만에 태어난 그는 네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자식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대와 사랑을 받았으며,

유년시절부터 모든 사람이 그의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5살 되던 해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모든 것은 달라졌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만으로 호화로운 궁전을 유지하고 계속되는 전쟁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귀족과 백성들에게 돈을 요구하였지만 그들 역시 계속된 전쟁으로 돈이 없었다.


그가 10살이 되자 귀족들은 왕은 필요 없다며 궁전으로 쳐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었으며 어린 왕을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이때부터 파리의 궁전은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1649년 1월 그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파리를 탈출하여 5년간 프랑스 각지를 떠돌면서 살았다. 초라한 옷에 뭐든 있는 대로 먹어야 했고 추위 속에 잠을 자야 했다.


하루는 연못에서 놀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어 익사할 뻔하기도 하였다.


5년 후 귀족들의 난이 끝나면서 백성들은 이 혼란을 정리해 줄 강력한 왕을 원했으며 어린 왕이 돌아왔다.


1661년 상공업을 중시하며 대리통치를 하던 재상 마자랭이 죽자 23세에 직접 통치를 시작한 루이 14세는 절대왕권을 의해 세 가지 정책을 펼친다.


먼저 자기 사람을 주요 요직에 앉힌 후 국가 재정을 직접 관리하였으며,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귀족 인증제를 실시하였다, 또한 귀족과 연금을 얻기 위해 몰려드는 귀족들에게 절대 왕권의 위엄을 보여주는 베르사유 궁전을 건립하였다.


파리의 루브르 궁전을 버리고 왕실 사냥터에 20년간 33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지은 베르사유 궁전은 국왕에게 절대적 권력을 안겨주었으며 귀족은 국왕이 만든 엄격한 예법을 따르며 왕을 신처럼 떠받들어야 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기독교가 가톨릭과 신교로 나누어지자 가톨릭은 검소하고 소박한 신교에 비해 화려함이 넘치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지으면서 우월함을 과시했다.


이후 종교색채를 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은 절대 왕정국가로 전파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건물이 베르사유 궁전이다.



철저한 좌우 대칭과 장엄한 U자 형태로 지어진 베르사유 궁전은 정면은 파리시를 향하고 뒷면에는 태양신인 아폴론 분수가 있는 대규모의 정원을 조성하여 문명과 자연의 중심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궁전 내부 역시 절대적인 국왕의 힘과 권위를 보여준다.


본관의 중앙 2층에 위치한 거울의 방은 73미터에 이르며 17개의 창문과 거울이 있는 가장 화려한 방으로 지어졌다.



이곳에 들어서면 수많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태양 빛이 커다란 거울과 샹들리에를 비추며 빛의 향연을 펼친다.


대연회를 베푸는 이곳의 천장에는 고대 신화의 영웅들이 그려져 있는 다른 방과 달리 태양왕 루이 14세의 전쟁 모습이 그려져 있어 그가 살아있는 영웅임을 보여준다.


거울의 방 중앙에 있는 문을 통해 나가면 왕의 침실과 서재가 나온다.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에 대한 과시로 왕들의 사생활 공간을 없앴다. 그는 왕의 일상과 사생활을 공개하였으며 왕의 침실마저도 귀족들의 접견실로 사용하였다.



루이 15세와 16세는 차츰 국왕의 사생활 공간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왕의 개인적인 침실과 서재를 이곳 거울의 방 옆에 따로 마련하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곳 침대에서 업무를 보았으며 침대 앞 나무 칸막이가 왕이 업무를 볼 때 높은 지위의 하는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경계였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접견실로 사용한 왕의 처소 중에 가장 유명한 방은 아폴론의 방이다.



천장에 황금빛 태양 마차를 끄는 아폴로가 보이는 이곳은 국왕이 외국대사를 접견하는 곳으로 왕의 처소에서 가장 화려한 방이었지만 9년 전쟁의 비용으로 금은 등 모든 장식품을 처분한 결과 지금은 붉은 벽지와 루이 14세의 초상화만이 남아 있다.



절대 왕권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는 기둥과 휘장을 배경으로 한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보면 그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푸른 색 망토를 입고 있으며 망토에는 부르봉 왕가의 상징인 흰 백합이 장식되어 있다.


루이 14세가 입은 하얀 레깅스는 전쟁 중 말을 타야 하는 필요 때문에 생긴 옷으로 후에 예복으로 승화되었다. 그가 신고 있는 신발 역시 말을 탈 때 몸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빨간 뒤축은 국왕의 상징으로 <딸랑 루주>로 불렸다.


또한 루이 14세가 군 통수권자임을 보여주는 지휘봉 아래로 왕관이 보이고 왕관 옆으로 손 모양을 한 지팡이는 정의를 상징하는 사법의 손이다.



왕의 처소 반대편에 있는 왕비의 처소에서 가자 유명한 왕비의 방은 장미 향이 묻어날 것만 같은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서 루이 15세와 루이 16세를 비롯하여 17명의 왕자와 공주가 탄생하였다.


왕비의 처소를 나오면 대관식의 방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베르사유 정원으로 이어진다.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되는 베르사유 정원에는 20만 그루의 나무와 산책로 그리고 운하가 조성되어 있으며 정원의 중심에 위치한 아폴론의 분수를 지나면 너비 62m 길이 150m의 십자가 모양의 인공 운하가 절대 왕정의 장엄한 기품을 보여준다.



운하로 내려가서 오른쪽을 이동하면 루이 14세가 자신의 애첩을 위해 지은 별궁인 그랑 트리아농이 나오고 그 옆으로 루이 15세가 역시 그의 애첩인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지은 프티 트리아농이 있다.



평민 출신으로 루이 15세의 은총으로 귀족이 된 퐁파르드 부인은 아름다운 미모와 지적인 매력으로 프랑스 사교계를 주름잡았으며 그녀의 우아한 장식은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루이 15세에 바친 그녀의 삶은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 인생은 끔찍하다.

단 1분조차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끝없는 접견과 반복되는 행사들, 1주일에 2번 이상을 작은 성들 사이를 떠돌아다녀야 하며 늘 왕후나 왕세자, 왕세자비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프티 트리아농은 루이 16세에 와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격식에 찬 궁정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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