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된 사나이

오베르 쉬르 오아즈

by 손봉기

밀밭 위로 바람이 분다.


노란 밀밭과 황톳길 그리고 코발트 빛 하늘 등 모든 세상이 황홀하게 빛나지만 그 자신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10년 동안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며 수많은 작품을 그렸지만 하나의 작품만이 헐값에 팔렸을 뿐이다.


무명에 가난과 정신병에 시달리는 자신을 평생 돌보아 주던 동생 테오가 돈이 없어 수술도 못하고 자식을 잃자 그에게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그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다.


눈물이 흐르고 손이 떨렸지만 죽음 앞에 서자 오히려 담담해졌다.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까마귀가 날아올랐고 세상이 일순간 깜깜해졌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이별로 목사가 되기를 단념하고 삼촌이 운영하는 화구상에서 일하였다. 그때까지 그가 화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화구상을 그만두고 화가기 되기 위해 파리로 온 것은 그의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동생 테오의 권유 때문이었다.


파리의 생활은 외롭고 힘들었다. 어느 누구도 네덜란드 촌에서 온 무명의 화가를 알아보아주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파리의 생활은 고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인상파의 밝고 화려한 빛에 눈을 뜬 고흐는 자신의 작품에 화려한 색과 긴 터치로 생동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파리의 생활을 접고 아를로 간 고흐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려 하지만 혼자서는 힘들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존경하던 고갱을 초청해 함께 작업하지만 고흐와 고생은 작품에 대한 시각도 생활방식도 모두 맞지 않았다. 화가 난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고갱은 서둘러 파리로 돌아갔다.


1889년 발작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아를의 정신 병원에 머물렀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지난 몇 주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아 그 조각들을 이리저리 다시 끼워 맞춰보려 했지만 다 부질없다. 문뜩 발작성 불안감이 휘몰아치듯 닥치곤 하는데 그러다가도 밑도 끝도 없는 공허와 허탈감이 밀려온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상 아무렇지 않게 멀쩡히 하루를 보내는 때도 많으니 내 걱정으로 너무 마음 졸이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내가 진정으로 이성을 잃은 건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당시 정신병원에서 고흐가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그렸던 작품이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이다.



고흐는 소용돌이치는 별과 하늘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고향 마을을 그려 놓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미로 속에 자신이 안정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정신병은 더욱 깊어졌다.


정신병원을 나온 고흐는 동생과 가까우면서 평화로운 오베르 쉬르 와즈로 왔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걸리는 오베르 쉬르 와즈에 도착하면 작은 시골 역은 물론 거리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한적하고 고요하다.


새소리를 들으며 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으면 라 부쉬 여관이 나온다. 고흐가 죽기 전 마지막 5개월간 머물렀던 이곳을 1987년 벨기에의 사업가가 구입해 고흐가 살던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라 부쉬 여관 2층의 고흐 방으로 들어가면 지금 그의 의자와 빈 액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권총 자살을 시도한 고흐는 이곳에서 사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



라 부쉬 여관 앞 광장으로 가면 시청이 나오고 시청 앞 광장에 고흐의 작품이 담긴 게시판이 보인다.


고흐는 이 작품을 라 부쉬 여관 주인에게 선물했는데 그의 사후 이곳을 찾은 화가들에게 헐값에 넘겼다고 한다.


시청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반 고흐 공원이 나온다. 긴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원 중앙에 입체파 조각가 자킨이 만든 고흐 조각상이 보인다.



거구에 앙상하게 마른 그의 모습에서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아픔이 진하게 배어 있다.


공원을 지나 좁은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오베르 성당이 나타난다. 오베르의 성당은 시골 마을의 성당답게 작고 소박하지만 길과 거리를 두는 정원을 가지고 있어 경건함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 옆으로 고호가 그린 < 오베르의 성당> 이 보인다. 오베르의 성당을 보고 게시판에 있는 고호의 작품을 보면 고호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따뜻한 노란 모자를 쓰고 가는 여인 아래의 길과 평범한 성당 앞마당은 파도처럼 물결치고 돌로 만든 성당의 벽과 지붕은 꿈틀거리며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성당 위로 보이는 코발트 빛 하늘은 그 빛이 너무 짙어 딱딱한 평면으로 보인다.


고흐 특유의 격렬한 터치와 강렬한 색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완성한 고흐는 평소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마음이 깊고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오베르 성당을 뒤로하고 언덕을 오르면 공동묘지가 나온다. 이곳 한구석에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이 있다.



고흐의 명성에 비한다면 무척 초라한 무덤 앞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머리를 숙이고 숙연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한다.


고흐의 무덤을 나와 오솔길을 따라가면 고흐의 마지막 작품인 <밀밭 위의 갈까마귀 떼 >를 그렸던 장소가 나온다.


밀밭 길을 헤치고 나가면 고호의 작품이 담긴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이 있는 곳에 서면 고호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며 그린 짙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갈까마귀 떼가 나는 밀밭이 펼쳐진다.



고흐는 덕지덕지 두껍게 칠한 푸른 하늘괴 황금빛 밀밭에서 그의 절망과 아픔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밀밭길 사이로 돌아올 수 없는 황톳길을 그리며 그의 죽음을 예견하듯 밀밭 위로 까마귀 떼를 그리고 있다.


고흐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권총 자살한다. 동생이 소식을 듣고 올 때까지 죽지 못한 고흐는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아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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