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다

크레타와 산토리니

by 손봉기

아테네의 항구 피레우스에서 친구와 헤어져 크레타로 가는 배에 오르려 하는데 낯선 사람이 다가와 무조건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자신이 꼭 필요한 인재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들고 남루해 보이지만 형형한 눈빛 뒤로 태도가 당당하다. 골치 아픈 석탄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는 그의 적극적인 태도에 이끌려 그를 같은 배에 태웠다.


긴 항해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그의 오랜 경험과 능력에 감탄한 나는 그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배에서 내리자 그는 자신을 고용하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일이 밀려도 자신을 몰아세우면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묻자 자신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 자존감과 절대적인 권한이 필요하다고 이야기이다.



절대적인 권한이 무엇이냐고 묻자
자유라고 이야기한다.



그와 일을 함께한 나는 그의 생활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물레방아에 손가락이 걸려서 일을 할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는 손가락을 잘라냈으며 과부와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천국에 가는 것이라 이야기하며 자유연애를 하였으며 시간이 날 때면 산투르라는 악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연주하고 춤을 추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전쟁에 참여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 그는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생각했으며 아픈 과거를 잊기 위해서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매 순간을 기적처럼 대하는 그의 모습에 반한 나는 그의 생활에 동화되어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며 그와 춤을 추기도 하였다.


어느 날 석탄 사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케이블을 설치하였는데 그 시설이 무너져 사업이 순식간에 망하자 나는 곧장 해변으로 달려가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이제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사업을 접고 조르바와 헤어진 나는 그동안 미루었던 여행을 하다가 그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죽음이 임박하자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창가로 갔다. 창가에서서 창틀을 쥔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산을 바라보며 웃다가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는 동안 죽음이 그를 서서히 데려갔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크레타섬의 중심에는 베니젤로 광장이 있다. 크레타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정치가인 베니젤로의 이름을 딴 베니젤로 광장에는 1628년 베네치아 인들이 만든 사자 분수와 산마르코 성당 이 있다.


베니젤로 광장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베네치아 성벽이 나오고 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지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이 있다.



소박한 나무 십자가가 세워진 그의 무덤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있다.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베니젤로 광장으로 돌아와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을 방문한다.



기원전 19세기에 미노스 왕에 건설된 크노소스 궁전은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천 개가 넘는 방이 배치되어 있어 미궁이라고 불린다. 그 이유로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이 오늘날까지 내려온다.


미노스 왕의 아내는 왕이 자신을 등한시하자 왕궁에서 키우던 수소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왕비와 수소 사이에 괴물이 태어났는데 바로 미노타우로스이다.


왕은 난폭한 미노타우루스를 가두기 위해 미로를 만들었으며 괴물의 먹잇감으로 당시 식민지였던 아테네 사람들을 바쳤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이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젊은이로 위장하여 크레타로 왔다. 이때 테세우스를 보고 한눈에 반한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칼과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는 실타래를 건네준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데 성공한 테세우스는 아드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섬을 떠나 낙소스 섬에 이르지만 이곳에서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혼자서 아테네로 돌아갔다.


크노소스 궁전을 입장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방이 왕좌의 방이다.



왕좌의 방 벽화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들과 전설 속의 동물 그리핀이 보인다. 독수리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그린핀은 왕과 신을 상징한다. 왕좌의 방에서 미노스 왕이 의식 정화에 사용한 세면대 뒤로 왕의 자리가 보인다.


왕좌의 방을 지나면 왕비의 방이 나온다.



왕비의 방에서 활기찬 느낌을 주는 푸른색 돌고래 벽화는 그리스 문명이 고대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인간의 즐거움을 추구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레타섬의 항구로 돌아와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산토리니섬으로 이동한다.



에게해를 가로지르는 배가 점점 산토리니에 가까워지자 엄청난 높이의 절벽 위에 새하얀 집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하얀색과 파란색이 조화를 이루며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아 마을로 접어들자 좁은 골목을 따라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1537년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산토리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기색인 하얀색과 파란색을 표현하기 위해 교회는 파란색을, 집은 하얀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산토리니 엽서에 등장하는 <3 블루 돔 교회>를 지나면 굴라스 성채가 나타난다.



굴라시 성채를 오르는 길에는 노을을 보기 위해 온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성채 꼭대기에 오르자 이아마을의 새 하얀 건물과 파란 성당 그리고 풍차가 노을과 함께 붉게 물들어가는 간다.


푸른 바다 위로 펼쳐진 붉은 노을은 여행자에게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황홀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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