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반란

퐁피두 센터

by 손봉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형들조차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나는 내 작품을 들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는 그들과 만나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다. 전문가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은 서로의 편의를 봐주며 명성과 부를 나누어먹는 사람들이었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밤에는 내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이 지겨워질 무렵 뉴욕에서 연락이 왔다. 파리에서 버림받았던 나의 작품이 1,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강대국이 된 미국의 새로운 문화요구와 맞아지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신대륙이라는 희망을 안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는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역시 부자와 기득권의 횡포가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통쾌한 반란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 반란이 현대 회화의 신호탄이 될지는 당시 그는 꿈에도 몰랐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뒤샹은 파리에서 예술가로 이름 날리는 형들 덕분에 학교를 졸업하고 파리로 올 수 있었다. 파리에서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신문에 풍자만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풍자만화를 그리며 틈틈이 그림을 공부한 덕분으로 그는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독립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다. 그가 출품한 작품은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이었다.


당시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 화가들이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보고 옆에서 본 것을 한 화면에 동시에 그렸다면 뒤샹은 여기에 시간을 첨가하여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았다.


입체파에 머물러 있었던 기존 작가들은 뒤샹의 작품을 보며 딴 나라 세상의 작품처럼 질투하고 경시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진 신인을 발굴하겠다는 독립 전시회의 비평가들은 물론 형들조차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


뉴욕에 초청을 받은 뒤샹은 뉴욕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미국 예술계의 관행에 맞서는 반란을 꾸미기 시작했다.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본 소변기를 뒤집어 R.MUTT라는 가명을 적어서 <샘>이라는 제목으로 뉴욕 독립 전시회에 출품했다. 누구든지 1달러를 내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독립 전시회의 위원들은 기성품인 소변기를 보고 당황했으며 단번에 그 작품을 거절했다.


이를 예상한 뒤샹은 독립 전시회의 위원장직을 사임하고 자기가 발행한 <눈먼 사람들>이라는 잡지에 <샘>이 전시되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와 풍자가 담긴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작가도 관람객도 아닌 기득권을 가진 비평가와 화구상들이 그들의 권위와 부를 이용해 미술계를 전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뒤샹의 글은 곧바로 뉴욕의 미술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으며 뉴욕의 저명한 매체에 <샘>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샘>의 작가가 뒤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이 소변기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화가는 더 이상 비평가와 화구상들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작품을 창조해야 한다고 뒤샹은 주장했다.


또한 작품을 예술가 자신의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화가의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으면 그 자체로 모든 일상용품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뒤샹은 현대회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77년에 개관한 퐁피두 센터는 파리의 현대 미술관으로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내부의 철근 구조물을 외부에 보이게 하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완공되었다.


건물의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붉은색으로, 수도관은 녹색, 전기 배선관은 노란색으로 표현하였으며 마지막 환기관은 흰색으로 표현하며 내부의 철근 구조물을 외부에 노출하면서 내부 전시공간은 단순하고 넓어졌다.


언제든 용도에 맞게 전시공간을 바꿀 수 있게 만들어진 퐁피두센터는 해마다 4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퐁피두 센터 5층에 위치한 현대 미술관으로 입장하면 프랑스혁명으로 왕이나 귀족을 위해 사용하였던 화려한 장식이나 입체적인 원근법은 사라지고 새로운 주인인 시민의 자유와 평등에 맞는 단순하면서 평면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이다.



피카소의 작품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에서 피카소는 사람의 앞면과 옆면을 한 화면에 동시에 보여주며 인간의 눈과 뇌는 사실 사물을 동시적이면서 입체적으로 인식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마티스는 색만으로도 화가의 감정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작품 <루마니아 풍의 블라우스>에서 평면적이면서 단순한 색만으로 품위 있는 여인의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여향을 준 화가는 세잔이다.



세잔의 작품 <사과와 오렌지>를 보면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보는 사물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세잔은 작품에서 위에서 보이는 부분과 앞에서 보이는 부분의 사과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과의 색감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색으로 사과를 표현하고 있다.


5층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 신부이다>이다.



샤갈이 장 콕토의 시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이 작품에서 결혼한 신랑과 신부가 염소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축하 음악을 들으며, 수탉을 타고 에덴동산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들 옆으로 부케를 받은 친구는 천사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고 있으며 파리의 자유로운 햇빛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다.


작품 속에서 동물과 인간 그리고 사물이 이웃처럼 모두 어우러져 허공에 뜬 상태로 진행되는 결혼식은 현실의 고된 삶을 잠시 잊고 행복 속에 머문 순간처럼 보인다.


그림 속 신랑과 신부는 샤갈 본인과 사랑하는 아내 벨라이다. 샤갈은 오직 벨라를 통해서만 사랑을 느끼고 행동하고 그림을 그려왔다고 고백했을 만큼 아내를 사랑했다.


마지막으로 뒤샹의 <샘>을 감상한다.



<샘>을 보면 작가 이름과 제작연도로 <R. MUTT 1917>라고 적혀 있다.


작가의 이름 MUTT는 소변기 제조업체 <Mott works>에서 가져왔는데 이를 MUTT로 바꾸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만화영화 <Mutt & Jeff>에서 욕심 많은 땅딸보 머트가 돈만 밝히는 미술 비평가와 화구상과 닮았다고 하여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 R은 프랑스어 Richard의 약자로 벼락부자를 뜻하는 속어이다.


뒤샹은 현대 예술의 주인공은 화가도 작품도 아닌 관람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관객이 없는 작품은 쓸모가 없으며 작품의 가치는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며 관람자가 작품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것이 진정한 현대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예술로 인해 자신을 감정을 탐구하는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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