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초상
런던 국립미술관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수도사이자 화가였던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이다.
천사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요단강에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남의 머리 위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하늘에 떠 있다. 그리고 요단강가에는 한 사람이 세례를 받기 위해 옷을 벗고 있는데 시간이 멈춘 듯 영원해 보인다.
르네상스 초기의 원근법이 돋보이는 이 작품에서 정적이면서 경건한 분위기가 맑은 하늘 그리고 푸른 강과 어우러지며 여행자에게 내적 평화를 가져다준다.
다음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이다.
대장장이의 신인 불카누스와 결혼한 비너스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와 바람을 피운 뒤 걱정에 잠겨있다. 반면 마르스는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며 그의 주위로 쾌락의 신인 사티로스가 마르스의 투구와 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결혼식 사물함에 그려진 이 작품은 평생의 반려자에게 충실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그려진 작품치고는 작품 전체적으로 보티첼리 특유의 시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특히 비너스의 옷과 베개에 넘치는 유려하고 우아한 선의 아름다움이 관람자를 매료시킨다.
다음은 브론치노의 <사랑과 시간의 우의>이다.
금사과를 들고 있는 비너스의 가슴을 잡고 입맞춤을. 하고 있는 에로스의 모습이 대담하면서 야릇하다. 하지만 파란 바탕에 비너스의 차가운 살색 그리고 격자무늬의 구도가 우리를 육욕적인 감성에서 이성으로 이끈다.
비너스 오른쪽으로 장난기 가득한 소년이 가시 있능 장미를 뿌리고 있으며 파충류의 얼굴을 가진 소녀는 달콤한 벌집을 들고 있다. 각각 사랑과 고통 그리고 변덕을 상징한다그 아래로 젊은 여인과 늙은이의 가면은 기만을 상징한다.
육체적 사랑은 달고 감미롭지만 뒤에는 변덕스러우며 고통괴 기만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화면 왼쪽 상단에 늙은 질투의 여신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으며 그 위로 망각의 여신이 파란 장막을 덮으려 애쓰지만 반대편에서 모래시계를 어깨에 두고 있는 시간의 신이 장막을 거두며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육체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이 아닌 그림으로 풀어가는 브론치노의 서사적 힘에 여행자는 압도당한다.
서사적 이야기가 담긴 또 다른 작품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다
핸리 8세가 후사가 없는 자신의 첫째 부인 캐서린과 이혼하려 하지만 클레멘스 교황이 반대하자 헨리 8세는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국 성공회를 세운다.
작품에서 가톨릭으로 복귀할 것을 설득하려 영국에 파견된 대사들 사이로 수많은 책과 악보 그리고 천구의는 세상의 즐거움과 지혜를 상징한다.
독일출신으로 영국왕실 화가인 됭 한스 홀바인은 작품 위 오른쪽 끝에 십자가를 숨겨두고 작품 전면에 해골을 두어 이 모든 것이 신앞에서 헛되고 헛되다고 이야기한다.
압축투영법으로 그려진 해골은 작품 오른쪽에 서서 보아야 제대로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다음 작품은 유화를 발명한 얀반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이다.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창가의 오렌지는 부부가 이탈리아에서 온 부유한 상인임을 보여주며 샹들리에의 하나뿐인 초와 맨발인 것은 결혼식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또한 발아래 보아는 강아자는 충실함을 상징한다.
신랑과 신부의 사이에 보이는 거울에는 이 작품을 그린 작가이자 결혼식의 증인인 얀반아이크가 보이고 거울 위로 얀반아이크가 여기 있다는 서명도 보인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각자 개성 있는 사물과 인물을 부드럽게 하나로 조화시키고 있는 이 작품이 완성되기 1년 전에 아내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작품이 완성되고 작품 속 토라진 아내의 얼굴과 털끝까지 생생한 아내의 옷 그리고 아내를 늘 따라다니는 강아지를 본 순간 아르놀피니는 왈칵 눈물을 쏟아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 작품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를 감상한다.
자신이 존경하던 고갱이 아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고흐는 기쁨에 넘쳐 고갱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해바라기를 그렸다. 하지만 고갱과의 결별을 미리 예견한 듯 몇 송이는 시들어 아래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정신병과 가난 그리고 무명이라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불행에도 꺾이지 않으며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고흐의 두텁지만 불꽃같은 터치를 직관하다 보면 마치 고흐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가슴이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