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번역가의 하루, 그리고 언어의 틈새에서 느끼는 것들
두 개의 언어 사이에서 눈을 뜬 아침. 프랑스어의 어떤 문장이 먼저 떠오른다. 어떤 단어. 어젯밤 끝내 풀지 못하고 잠든 형용사의 뉘앙스이거나.
번역가의 하루는 언제나 단어 하나로 시작된다. 이 단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라는 질문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식을, 어떤 감각을, 어떤 온도를 이쪽 세계로 데려오는 일에 가깝다.
프랑스어 원문과 내가 만들어낸 한국어 초고를 번갈아 보다 보면, 밤새 잠들어 있던 감각이 조금씩 깨어난다.
번역은 예상보다 훨씬 느린 작업이다. 하루에 1,500단어를 번역하면 나름 잘 한 날이다. 독자에게 닿는 문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같은 문장을 열 번, 스무 번 고쳐 쓰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심이 지나고, 오후의 빛이 책상 위로 비스듬하게 들어온다.
« Les langues sont des fenêtres sur le monde. »
언어들은 세계를 향한 창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생각한 끝에 이 말을 살짝 고치고 싶어졌다. 언어들은 세계를 향한 창문이기도 하지만, 그 창문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한국어라는 창문에서 보이는 세계와 프랑스어라는 창문에서 보이는 세계는, 같은 현실을 다른 각도로 포착한다. 번역은 그 두 창문을 이어주는 통로를 내는 일이다.
번역이 어려운 진짜 이유
사람들은 종종 번역이 단순히 A 언어를 B 언어로 바꾸는 기술적인 작업이라고생각한다. 물론 그 기술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에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에는 'dépaysement'이라는 단어가 있다. 낯선 환경에 있을 때 느끼는 이국적인 감각, 혹은 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오는 기분 좋은 낯섦. 한국어에는 이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말이 없다. 이 단어를 번역해야 할 때 나는 문장 전체를 다시 설계한다. 단어 하나를 살리기 위해 문장의 구조를 바꾸고, 문맥을 조율하고,때로는 주석을 달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이 번역을 힘들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매혹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두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그 자체임을 새삼 깨닫는다.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솔직히 말하면 번역가의 일상은 화려하지 않다. 납기일에 쫓기는 날이 많고,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문장이 편집 과정에서 바뀔 때는 허탈하기도 하다. 번역서에 이름이 작게 적히는 것도 처음엔 씁쓸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래야만 좋은 번역이라는 역설도 알고 있다.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번역은 내가 아는 가장 집요한 형태의 읽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책을 읽을 때 문장의 표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하지만 번역을 할 때는 그럴 수가 없다. 모든 단어 앞에서 멈추고, 그 단어가 품고 있는 무게를 느끼고, 그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저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구석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어쩌면 저자 자신보다 더 그 텍스트 안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번역가인지도 모른다.
언어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것
두 언어 사이에서 일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점점 한국어에서도 다른 가능성을 본다. 프랑스어의 구조를 한국어로 옮기려 애쓰다 보면, 한국어가 얼마나 유연하고 풍성한 언어인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어의 섬세한 시제 체계를 보며 한국어의 문맥적 풍요로움을 다시 사랑하게 된다.
번역가로 산다는 것은, 어느 한 언어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인이지만, 하루의 절반은 프랑스의 어떤 감각 속에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만의 언어 감각이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두 언어 사이의 다리를 놓는다. 완벽하지는 않다. 어쩌면 번역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언어의 아름다움에 조금씩 더 깊이 빠져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