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실뱅 테쏭

몽생미셸 가는 길 61화

by 오래된 타자기


기억 속을 떠도는 여행이 있다. 여행한 곳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대부분 기억에 의존하여 여행지와 여행할 당시의 느낌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에 더해 레미니선스의 도움을 빌린다면 여행할 당시를 좀 더 명확하고 생생하게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여행할 당시를 순차적으로 재생하기는 어렵다. 그러하기에 기억의 힘을 빌려 여행하던 순간을 되살리기 위하여 메모를 한다거나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것일 게다.


사진과는 달리 동영상은 훨씬 실감 나게 당시를 재현해 준다. 아날로그 방식보다는 디지털 방식이 여행을 하거나 혹은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동반한 순간들을 더욱 생생하게 재생해 준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까지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행의 순간을 현실감 있게 재생해 주는 그 놀라운 재현능력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번의 여행지는 베르농과 지베르니로 삼았다. 베르농은 저 아득한 중세 노르망디 공국과 프랑스 왕국의 경계에 해당한 곳이며, 지베르니는 클로드 모네가 수련정원을 만든 곳이다.


이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프랑스 요리와 막걸리의 결합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술과 음식은 서로 어울려야 제 맛을 낸다. 막걸리와 프랑스 음식과의 궁합은 절대 불가능한 어울림이다.


그럼에도 여행준비를 서두르는 건 서로 다른 톤으로 부르는 노래라 할지라도 감동만큼은 각각의 노래에 대한 느낌이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병 속에 서로 다른 물질을 넣고 흔든 다음, 혼합물이 천천히 가라앉아가면서 어떤 방식으로 침전되는 지를 가만히 지켜보는 순간처럼 흥분되는 일도 없다.


여행이란 것도 여행지에서의 서로 다른 느낌들이 사유를 거쳐 기억 속의 침전물로 쌓여가는 과정이 아닐 것인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켜놓았던 텔레비전에서는 이미 두 차례나 시청한 프로그램을 다시 내보내고 있다. 우수아이아(Ushuaia), 20년 전부터 시청한 티브이 프로그램이다. 처음엔 프랑스 티브이 테에프엥(TF1)의 프로그램이었다가 이제는 테에프엥 그룹의 한 채널로 자리 잡은 우수아이아는 환경에 관한 시사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하여 방영하는 환경전문방송이다.


내가 이 방송을 자주 시청하게 된 이유는 21세기 화두로 떠오른 ‘병든 지구’라는 슬로건에 호응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세계 구석구석을 실감 나게 카메라에 담으면서 동시에 정말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 있었다.


내 인생과는 무관하게 아주 무덤덤한 자세로 감정이입조차 없이 세계를, 지구를, 인류와 자연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방송인이자 제작자인 니콜라 위로[1] 역시 아주 독특한 인생을 살아가는 전형적인 프랑스 인이었던 점도 맘에 들었다.


그는 모험과 탐험을 즐길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화두를 던지는 탓에 그에 대한 호기심마저 작용했다. 이른바 문학적 서사나 지나친 비약이 없는 다큐로서의 무미건조함에 빠져들었다는 점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문학인으로서 서사를 배제한 다큐에 빠지다! 이건 좀 엉뚱해 보이긴 하지만, 인간사에 골몰하는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연과 인간 간의 순수한 관련성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에 빠져드는 것 또한 한편으로 보면 진지한 일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떨쳐버리기가 어려웠다.


120번 채널 우수아이아에서는 지금 한 사내의 6개월간의 고독한 일상에 관한 기록물을 내보내고 있다. 「바이칼 호숫가 오두막에서의 6개월(six mois de cabane au Baïkal)」이란 제목으로 방영되고 있는 주인공은 여행가이면서 여행작가이기도 한 2009년에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공꾸르 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인 실뱅 테쏭(Sylvain Tesson)은 항상 머릿속에 그리던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으로 알려진 바이칼 호숫가에 머무르고자 여행을 떠난다. 시베리아 남단 이르쿠츠크에서 북쪽으로 약 5백 킬로미터 떨어진 바이칼 호숫가의 한 자그마한 오두막에서 6개월간을 지내는 과정이 담담하게 화면을 채운다.


어느 누구도 기다려주는 이 없고 무엇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것도 없이 그는 홀로 6개월 동안을 오두막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고 일기를 쓰고 식사하고 목욕하고 얼어붙은 호수와 산을 산책하다 잠에 들어 새벽에 깨어난다.


실뱅 테쏭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아이슬란드 중부사막을 자전거를 타고 횡단했는가 하면,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와 함께 히말라야를 다섯 달 동안이나 5천 킬로를 걸어서 여행하지를 않나(『지구를 떠돌다(On a roulé sur la terre)』), 부탄에서 타지키스탄까지 티베트를 관통하는 아주 비밀스러운 여행(『하늘 길을 걷다(La Marche dans le ciel)』)을 하기도 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는 초원을 말 타고 여행한(『초원에서의 기마여행(La Chevauchée des steppes)』) 정말 특별한 모험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몽고인들이 개척한 초원길을 걸어 인도 캘커타에서 북경까지 여행한 특이한 여행가다.


그가 바이칼 호수에서 보낸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 동안 쓴 일기는 자전적 형태로 2011년 『시베리아의 숲에서(Dans les forêts de Sibérie)』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답답하고 외롭고도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끓어오르는 욕망마저 억누른 채 사색하고 산책하고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다본 뒤에 길어 올린 그만의 사유는 바이칼 호수의 얼음장처럼 차갑고 투명하면서도 얼룩지지 않은 명료한 아포리즘에 가깝다.


그는 일기에 적어나간다. “고독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 영원한 연인이다.” 또한 바이칼 호수를 뒤덮은 눈밭에 그는 나뭇가지를 꺾어 그 끝으로 적어 나간다. “눈(雪)은 봄으로 가는 길목에 씌어진 시(詩)다.”


의사인 어머니와 기자인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실뱅 테쏭은 지리학을 전공한 뒤 모험가, 탐험가, 여행가, 작가의 길로 나섰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즐겨 언급하는 독일어 반데를러(Wanderer)처럼 그는 이곳저곳을 사색하면서 떠도는 여행자의 삶을 고수했다.


그는 여행가(Voyageur)이지만, 관광객(Touriste)은 아니고 유람객(Excursionniste)은 더더욱 아니며 오히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보여준 ‘이리저리 여행하는 사색가(Randonneur)’의 모습을 견지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기다려주거나 그 무엇도 찾을 수 없는 꽁꽁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눈밭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어떤 사유에 이른 것일까? 6개월 동안의 기나긴 사색 끝에 얻은 것은 무엇일까? 어둠 속의 깊은 심연에서 사유로 길어 올려진 모리스 블랑쇼의 잠언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깨달은 무심함이었을까?


그는 단지 “행복의 요리법이란 호수로 난 유리창 앞에 놓인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있는 것이다”라는 사유 하나만을 얻었을 뿐인가? 혹은 그가 정의한 여행자의 참모습처럼 “아무것에도 구속됨 없이 심지어 저버린 삶조차 어떤 미련도 두지 않고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단지 걸어갈 것”만을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오늘도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가 이야기한 아무 거칠 것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로 고독하게 욕망을 억누르며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조차 참아가면서 그는 걷고 있다. 그가 접어든 길에는 어느 누구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고, 그 역시 어느 누군가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기에, 그는 홀로 여행자의 참모습을 그려가며 걸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1] 방송인이자, 프로그램 제작자이면서 동시에 채널 티브이 방송국의 경영자이기도 한 니콜라 위로(Nicola Hulot)는 자크 시라크 정부를 필두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집권시절 환경부장관 후보자로 늘 거론되던 인물이다. 하지만 본인의 고사로 말미암아 환경부장관에 등용되지 않다가 엠마누엘 마크롱 집권과 함께 세골렌 루아얄 후임으로 환경부장관이 되었다. 이때 불거진 것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젊은 여성 리포터와의 성적 스캔들이었다. 프랑스 역시 한창 미투 운동이 번지던 때여서 법원에 드나들던 그는 돌연히 장관직을 사임하고자 사표를 던졌다. 현재 그는 방송 일에만 전념하면서 지구 환경 보호 운동가의 모습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