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1화
[대문 사진] 프랑스는 물론이고 영국까지 지배했던 정복왕 기욤(윌리엄 1세)
노르망디 왕국은 바이킹들에 의해 프랑스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건설된 왕국을 가리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911년 프랑스 국왕 샤를과 바이킹의 수장이었던 롤로 간에 체결된 생 클레흐 조약에 따라 할양되고, 1204년 필립 오귀스트에 의해 프랑스 왕국에 병합된 지역을 가리키지만, 노르망디 왕국의 역사는 그러나 그 이전부터 시작되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분야 역사학자들의 한결같은 지론입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스칸디나비아 분야의 석학인 장 르노의 역사관은 압권입니다.
브런치스토리 글마당에서 들려드리는 『바이킹이 이룩한 노르망디 왕국』은 이처럼 역사학자 장 르노가 철저한 고증을 통해 밝혀낸 프랑스 노르망디 왕국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10세기 때로 시선을 돌리면 바이킹들은 여러 차례 세느 강을 거슬러 올라가 강 연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이킹들이 처음으로 뇌스트리(뇌샤트리우스)를 침공한 것은 820년의 일입니다.
몇몇 바이킹 부족들은 세느 강 연안에 둥지를 틀고 정착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부족들은 코탕탱(Cotentin) 지역이나 망슈(Manche) 해협에 위치한 섬들에 정착했습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프랑크 국왕인 단순왕 샤를이 바이킹의 우두머리인 흐롤프르와 조약을 맺은 911년입니다. 이 바이킹의 우두머리를 당시 프랑크(오늘날 프랑스) 인들은 롤로라 불렀습니다.
노르망디의 역사는 이처럼 911년 생 클레흐 쉬흐 엪트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왕국이 탄생하게 됨과 더불어 그 역사적 사건들이 점철되어 이루어진 인물들의 서사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서로 얽히고 설킨 역사적 사건들의 타래를 풀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노르망디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궤적을 정밀하게 추적해가지 않으면 이해하기 조차 어려운 정말 난감한 천 년 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노르망디 공국 초기의 정치적 변화와 바이킹들이 이룩한 정치, 경제, 사회적 통합을 이해하고 바이킹들이 노르망디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전수한 그들 고유의 수완인 배 건조 기술과 함께 항해 기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21세기 노르망디 지방을 여행하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르망디는 스칸디나비아 인들이 정주한 지역임이 틀림없으며, 심지어는 이들을 제쳐두고 노르망디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이곳을 여행하는 이들로서도 절절히 통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도로 표지판에 표기되어 있는 그 이중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들이 뿌리내린 땅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 흔적과 함께 오늘날에도 발굴되고 있는 이들의 유물과 유적들을 통하여 노르망디는 더욱 스칸디나비아 인들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노르망디가 바이킹의 공헌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문화가 발생한 지역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오만에 찬 발상이며, 더해 바이킹에 대한 일종의 질투심 같은 것이라 판단됩니다. 노르웨이 인들과 덴마크 인들 사이에 아직까지도 롤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이를 반증하고도 남습니다. 노르망디는 결국 이 지방에 대한 그들의 영광에 찬 과거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60회에 걸쳐 이어지는 『바이킹들이 이룩한 노르망디 왕국』의 서사는 노르망디를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 지방을 여행하는 이들에게도 환한 등불이 되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많은 성원과 깊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