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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 해상활동

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4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바이킹 선단


바이킹들의 배 건조 솜씨와 항해술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몇 세기에 걸쳐 노르망디 지방에서 바이킹들이 타고 다니던 배들이 건조되었고 선박 건조 기술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하고도 남습니다.


11세기에 완성한 바이외의 태피스트리리는 서로 다른 3척의 배들을 건조하는 장면을 마치 영상처럼 자수로 재현하고 있죠. 옛 문헌에도 등장하는 이 3척의 배들에게는 제각각 ‘에스네끄(esnèque)’, ‘에스카이(eskei)’, 그리고 ‘끄나흐(kenart)’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배(bateau, ‘바토’라 발음)’라는 말 자체도 스칸디나비아 어인 ‘바트(bátr, 작은 보트를 뜻함)’란 말에서 온 것입니다. 옛 철자상의 형태는 ‘바트(bat)’와 ‘바텔(batel)’이 바로 그것이죠.


‘에스네끄(esnèque)’(snekkja란 어휘에서 비롯한 말로써 전함을 가리킴)란 용어는 11세기 중반에 씌어진 「생 뷜프랑의 기적」에 등장합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세느 강 하구에 배가 뒤집혀 조난당한 선원들이 “이스네끼아(isnecchia)라는 뜻 모를 말을 외쳐댄” 끝에 전함의 도움을 받아 구조됐다는 것이죠. 12세기에 이 용어는 배를 가리키는 용어로써 매우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외교문서에 등장하는 예로 ‘황실의 전함(esnèque royal)’이란 용어는 노르망디 공작들과 영국 국왕들이 바흐흘뢰흐와 포츠머스 간 망슈 해협을 항해할 때 애용했던 배였습니다. 「루의 이야기」는 기욤이 영국을 정벌하기 위해 ‘에스뀌(esqueis)’를 건조하였다고 전합니다.


바이킹들의 skeið는 커다란 전함이었습니다. 바이외의 태피스트리에 등장하는 배의 형태와 거의 동일한 배였죠. “기욤 공작은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노라.”


‘끄나흐(kenart)’ 배라는 말은 12세기 노르망디 지방에서 폭넓게 사용된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스칸디나비아 어인 knörr에서 온 말로써 화물운반선을 가리킵니다. 오흐데리크 비탈이 언급한 라틴어 ‘카나르두수(canardus)’가 바로 이 용어에 해당합니다.


배의 건조에 따른 이중 피복 기술[1]은 북쪽 사람들만의 기술이었으며, 지중해 세계에서 만의 가장 특별한 기술이라고 자부했던 선박 바깥쪽의 평판 붙임(franc-bord)과도 확연한 차이가 나는 그들만의 고유한 방식이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서로 등을 댄 양쪽 패널로 배의 외피 판을 두껍게 만드는 방식을 고집했죠.


11세기에 제작된 정복왕 기욤의 서사시로 알려진 바이외의 타피스리 가운데 바이킹들이 배를 건조하는 장면. [2]


바이외의 태피스트리는 벌목공이 도끼로 나무를 베어 쓰러트린 뒤 가지를 치고 잘라내어 널빤지로 만드는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목수는 자귀(도끼날이 아래위로 길쭉한 형태로 된 쇠로 만든 도끼로써 한쪽 끝에만 날이 나있음)로 나무들을 잘라 한쪽 한쪽 널빤지로 만들고 있죠. 그는 꾀바르게 나무줄기 사이에다가 널빤지 끝을 끼워 넣어 안정감 있게 일하는 모습입니다.


태피스트리에는 스칸디나비아 식 연장임을 확실하게 증언해 주는 배 건조 작업에 사용하던 연장들까지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자귀(doloire)[3]를 비롯하여 일반 도끼에다가 천공에 쓰이는 모루 송곳까지도 등장합니다.


도편수는 서있는 채로 선수에서 선미까지 갑판의 만곡을 측정한 뒤 용적량을 계산하면서 무언가를 목수들에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목수들은 배의 외판에 이중 피복을 하고 있죠. 특이한 점은 서로 다른 색칠을 한 널빤지를 이어 붙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목수들은 또한 리벳으로 조이기도 하며, 선체의 빈틈을 메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 피복을 위해서는 상당량의 리벳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노를 젓기 위해서는 노를 끼워 넣을 구멍들을 뚫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타피스리에는 배의 진수식 장면도 나와 있는데 백사장에서 건조한 배를 바다에 띄우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장면은 이들이 돛대와 노, 닻, 선미에 다는 키를 사용했음을 예시하고 있으며, 배에 선구를 갖췄음을 몇몇 장면에서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활대와 돛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돛대 주위에 감는 줄과 함께 돛에 매단 천을 지탱하기 위해 활대를 이용했음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돛대 꼭대기에서 양쪽 뱃전으로 뻗쳐 돛대를 고정시키는 밧줄들뿐만 아니라 돛을 올리고 내리는 줄들과 돛 아랫귀를 펴서 묶는 밧줄들은 물론이고 돛의 양 끝을 팽팽하게 당기기 위한 줄을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예시한 태피스트리 사진에서 보듯 자수를 놓은 단순화한 형태로 장식된 배들은 실제 배와는 거리가 멉니다. 다만, 두 가지 용도에서 배들이 건조되었다는 점만큼은 충분히 고려되었습니다. 첫째는 전함들로써 인력(수병들뿐만 아니라 전투요원도 포함한)을 수송하기 위한 군선들이었고(전함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음), 또 다른 용도에서 건조된, 즉 물자와 말들 그리고 군수품과 무기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수송선들이 건조되었다는 점이죠.


13세기에 제작된 노르망디 인들의 필사본에 그려진 채색삽화가 증거 해주듯, 또한 같은 시대에 완성된 색유리창들이나 조각들 그리고 성화나 낙서까지도 바이킹들이 항해(술)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예증해주고 있습니다.


14세기말에 작성된 대저택이 소유하고 있는 작은 범선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결과는 놀라운 사실을 전해줍니다. 이 문서철에는 루앙의 병기창에서 건조되고 있는 선박들을 언급하면서 선박 바깥쪽의 평판 붙임이란 어휘와 아주 유사한 이중 피복 기술에 관한 어휘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서에는 ‘이중 피복(clinqueurs)’이란 말과 함께 ‘고정쇠(teneurs)’와 같은 용어도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쇠 고정나사(리벳)를 조이는 일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첫째로는 선체 내부에서 하는 작업이고 둘째로는 선체 바깥에서 하는 작업인데 리벳을 두드려 조이는 작업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리벳으로 배의 외피 판을 접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 ‘cliquier’(또는 ‘clinquier’)라 불렸습니다. 나무로 만든 쐐기로 선체에 외피 판을 고정시키는 것은 ‘relier’(또는 ‘requeviller’라 불렀습니다. 또한 ‘calfestrer’라는 용어는 선체의 틈 막이 일꾼이 배 안에 들어가 쇠로 된 둥근끌이나 대패를 이용하여 선체의 틈을 막는 것을 뜻하죠. ‘brayer’란 용어는 배에 콜타르(역청)를 칠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생트 카트린느 섬에서 발견된 이중 피복을 위해 사용된 리벳. 장 르노 사진. 엘뵈프 박물관.


‘이중 피복의 못(clous à clinq)’이란 표현은 리벳을 가리키는데, 이 표현은 16세기까지 루앙과 르 아브르에서 간행된 여러 다양한 노르망디 고문서들에 등장합니다. 게다가 이중 피복을 표현하기 위한 ‘clinquier’라는 동사까지 등장하고 있죠.


‘clin’이란 어휘는 옛 프랑스 어인 ‘cliner’(라틴어는 clinare)에서 온 말이 아닙니다. 이 어휘 역시 스칸디나비아 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덴마크 어 klink와 일치합니다.


12세기 사가들이 발견한 노르망디 인들이 사용하던 배에 관한 용어들은 거의 대개가 스칸디나비아 어에 상응합니다. 몇몇 어휘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쓰이지 않게 되었죠.


예를 들어 ‘estren’(strengr, 닻줄)이라든가 ‘feste’(festr, 닻줄)은 밧줄로 단단히 동여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betas’(beításs, 같은 의미)는 돛이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기 위해 둥글게 만든 돛대를 가리킵니다.


‘brant’(brandar)이란 용어는 배의 이물 끝의 물결 헤치는 부분을 가리키는 뱃머리란 단어에 해당합니다. 바이외의 태피스트리와 「루의 이야기」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run’(rúm, 배 위의 공간)은 선창(la cale)을 가리켰고, ‘tialz’(tjald, 같은 의미)는 정박 중인 배에 둘러쳐진 천막이란 뜻입니다.


기욤 드 베른느빌이 쓴 「성인 질(Gilles)의 생애」에서 구사된 이 어휘는 ‘taud’(雨裝)라는 형태로 프랑스 어로 굳어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비가 내릴 때 이를 피하기 위하여 다리 위에 설치한 천으로 만든 천막을 가리키죠.


‘sigle’(segl에서 온 말, 같은 의미)은 돛을 가리키는 용어로써 1050년경에 씌어진 「알렉시스 성인의 생애」에도 등장합니다. 동사 ‘sigler’(sigla, 같은 의미) 돛을 펼치다란 뜻인데, 프랑스 어 ‘cingler’(비, 바람 따위가 휘몰아치다란 뜻)는 이 동사에서 파생한 것입니다.


문헌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리 드 프랑스의 유산」에 등장하는 ‘estière’(stýrí, 같은 의미)와 ‘hel’ 또는 ‘helm’(hjálm, 같은 의미)는 각각 배의 키와 키 손잡이를 가리킵니다. 로베르 바스는 배들과 항해에 관하여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브뤼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왼쪽으로 틀기 위해서는 키 손잡이를 앞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틀기 위해서는 키 손잡이를 높이 쳐든다.”


15세기부터 서서히 커다란 배가 건조되면서, 또한 배의 적재량이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스칸디나비아 전통 배 건조 기술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에 바탕 한 이중 피복을 한 보트들이 19세기말까지 여전히 망슈 해협 연안에서의 어업활동을 위해 건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훼깡에서 건조되던 ‘이물과 고물 양쪽 끝이 모두 뾰족한 배(caïque)’, 꾸흐쇨르에서 건조된 ‘대형 보트(chaloupe)’, 바흐흘뢰흐에서 건조되던 ‘후미가 둥근 형태의 배(cul-rond)’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성공의 조건이었던 범선의 이중 피복(clin) 기술은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점점 배들은 커지고 그에 맞춰 항구들 또한 넓어져야만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선박 바깥쪽에 평판을 붙이는(frand-bord) 기술은 꼿꼿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이 또한 바이킹들의 항해에 관한 유산이 사라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바이킹이 타고 다녔던 선박 전문 용어는 존속하게 되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어에서 비롯한 12개가량의 이 전문 용어들은 옛 노르망디 방언을 거쳐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박 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어에 바탕을 둔 선박전문용어. 스쿨델레프 난파선 복원을 위한 도면 2. 덴마크 로스킬트 바이킹 선박 박물관.






[1] 배의 외피 판에 널빤지를 이어 붙여 이중으로 피복하는 방법.


[2] 바이외 시 당국의 특별한 허가를 받아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3] 널빤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얇게 자르는 연장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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