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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09. 2024

여행 그 씁쓸함에 대하여

몽생미셸 가는 길 200화


설렜던 여행의 시작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는 꼭 여행지에서 마주친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다. 길가에 차를 세우려다 차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든 집시들 떼거리만도 아니고 우연히 정말 우연히 길을 걸어가다가 마주친 카지노에서 돈 다 잃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교포 한인 가족과 마주쳤기 때문도 아니다.


집시들도 소매치기나 도둑질을 하지 않는 한, 이 아름다운 도빌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길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떼거리로 모여 있다 해서 카지노 경관을 해친다는 논리적 근거도 미약하다. 더군다나 유랑민족인 그들이 유럽 사회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걸 고려해 본다면, 그들을 오히려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둔 마음 탓이 아닐까에 방점을 찍고 싶다.


“그들이 싫다!”는 루마니아 경찰의 노골적인 비난이나 혐오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인종차별일 수 있다. 여름철이면 파리 경찰과 함께 도심 시가지를 순찰하는 루마니아 경찰의 강경한 태도에는 그 같은 인종차별적 편견이 배어있다. 루마니아 경찰은 그들이 자국 루마니아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분노심까지 표출한다. 집시들 왕초가 루마니아에 있다느니, 서유럽 국가에서 훔친 돈이나 돈세탁한 자금은 루마니아 왕초에게로 흘러들어 가고, 루마니아 자국 정치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마피아 조직과도 같은 집시들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고 있다느니 하는 프랑스 언론 매체의 온갖 비난 기사 역시 르포르타주의 도를 넘어선 인종 혐오를 부추기는 일종의 폭력과도 같다.


그러나 해변 카지노 앞에 우르르 몰려 있는 이민자들의 천태만상이 꼭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에 몽타주처럼 겹쳐진 아시아 인종의 표정들도 썩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다. 인상을 찌푸리고 마치 돈을 다 털린 사람처럼 카지노에서 허탈하게 나오는 이름 모를 한인 가족은 절대 인화하고 싶지 않은 사진 한 장을 더욱 얼룩지게 만든다.


하지만 자동차로 새벽을 달려 도착한 봄이 오는 해변에는 그런 모욕감이 없어 좋다. 텅 빈 바다!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바다, 고운 모래사장에 아직도 남아있는 발자국들은 여름을 기다리는 그리움이 묻어 있다. 나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발자국이 끊긴 지점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흔적을 지운 것이 물살만이었을까? 인간의 기억은 영사기의 필름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마디마디 잘린 필름처럼 끊어진 조각들로 기억 속을 어지럽게 부유한다. 밀려오는 조류에 날아오르는 물새들에게서 소란스러운 짠 내음이 진동하는 아침바다에는 이처럼 누군가의 기억이 끊어졌다 이어지는 물살의 소용돌이가 묻어날지도 모르겠다.


갈 길의 방향을 잡아야 할 때다. 파리로 되돌아갈지 아니면 앞으로 걸음을 더 내디뎌야 할지 망설여진다. 다만, 저 곧장 뻗어나간 백사장 끝을 향해 걸어가 보겠노란 생각뿐이다. 그게 바로 이 순간 가장 합당한 산책의 이유로 끼어들기까지 한다. 백사장 끝에는 또 다른 바다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겠지, 아침이라 산책하는 이들도 없는 해변에서 무한히 차오른 허공을 바라보며 걷는 이는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처음의 기억으로 다시 되돌려진다. 아내와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한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네의 손을 잡고 용감히 새벽을 달려온 기쁨이 묻어나야만 하는 여행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설레임, 충만함, 낯선 풍경과 마주한 신선한 충격, 그리고 의미까지도 떠올려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앙드레 함부르크가 화폭에 담은 이글거리는 오후의 태양을 향해 걸어가야만 한다. 씁쓸한 뒷맛을 이겨내려면 현실과 다른 찬란한 색조의 힘을 빌어서라도 현실과 다른 꿈을 이어가야만 한다. 그게 희망이고 삶의 의미일 수 있다. 가끔씩 꾸는 꿈이 아름다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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