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로방스

1화 시작하는 글

by 오래된 타자기


일찍이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삶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파편화된 삶의 조각들을 퍼즐을 맞추어 가듯이 사라진 기억을 통째로 되살려낸 20세기 전무후무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는 그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그의 소설작품이 어떠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든 간에 인간의 기억의 회로를 통해 이미 잊히고 사라진 과거의 일상사까지 하나하나 되살려낸 작가의 치열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그의 빛나는 이 아포리즘은 프루스트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탐험에 대한 그만의 정의일 것이다.


이상향에 대한 상실감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핍진함에서 기인한다. 존재의 불확실성이 가져다 주는 불안감도 한몫한다. 과거의 재구성은 그럼으로써 사라진 기억을 되찾아가는 새로운 여행이 된다.


기억의 재생은 온전히 과거의 재발견을 추구한다. 스산함밖에 더 할 것이 없는 과거의 추억일지라도 순간 맛본 차 한 잔의 향이, 혀끝으로 전해오는 따뜻함이, 입안에 퍼져 나가는 은은함이 싸늘한 겨울의 부산함을 가라앉혀주듯 감정은 도로 차분해지고 존재감은 자존감에 더한층 빛난다.


삶은 그럼으로써 더욱 풍부해진다. 되살린 과거의 추억이 지금 현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이전에 보았던, 경험했던, 스쳐갔던 모든 일들이 감동으로 남아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지금 현재의 삶에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삶의 보폭을 교정해 주고, 그 길이를 조정해 주고, 목표를 수정해 주며, 나아갈 길을 선명히 가늠케 해 준다.


분명히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그저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부산함도 아니다. 확실히, 삶은 되돌려질 수 없으며, 한 방향으로밖에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어느 지점에서 길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는 것은 나아갈 길을 가늠하고, 길 위에서 서성대던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행복하게 조우하여 빚어내는 또 다른 삶을 비추며, 이 둘이 서로 겹쳐진 지난한 삶의 의미까지도 떠올려주는 창조적 삶으로 나아간다.


눈부시다! 한 걸음 한 걸음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내가 서있는 길의 풍경을 되새기며 나아갈 길을 가늠해 보는 ‘여행’은 ‘방황’이 결코 아니다.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 구태연한 삶에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아름다운 저항이고 익숙한 자신에 대한 항거다.


앉아있던 자리를 툴 툴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는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용기는 단지 반항의 표시일 뿐, 새로움에 대한 질투심에서 싹튼 일상의 권태로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바쁘게 움직이는 노동과 작업과 나름의 의미 있는 일, 과제, 성과만이 삶의 의미를 정당화시켜주지만은 않는다. 실망과 원망의 이리저리 흔들리는 추는 늘 순간순간 끼어들어 다시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마저 꺾어놓고 종종 인생길을 막다른 길로 유도하거나, 아예 가로막고 나서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지지부진한 일상의 하품쯤으로 넘기는 유쾌함에 빠져들기를 희망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단지 살아간다는 가벼운 존재의 단순함에 스스로 길들여져 가고 싶어 한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짜증 나고 화까지 나는 존재의 유약함으로부터 쉽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시 차 한 모금이 주는 평안함을 따져보면, 그 자유분방한 분주함이 삶의 온기로까지 작용한다면 불쾌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으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생기 도는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다.


여행의 순간은 이러한 존재가 망설여지는 순간마다 휴지를 통해 찾아온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휴지의 순간에 참다운 여행이 시작된다. 단순히 떠돎이 아닌, 존재의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존재 내면의 사색을 여행은 고스란히 품어준다.


여행은 삶의 의미를 정당화시켜 주고 존재를 다시 살리는 힘이며, 존재의 삶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에너지다. 이런 역동성에 길들여진 여행자는 참다운 인생의 아포리즘으로 나아간다. 걸어갈 길의 참다운 의미까지도 가늠할 수 있는 삶의 여정은 그렇기에 걸어간 길과 걸어가고 있는 길, 그리고 걸어갈 길까지도 어느 것 하나 잊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만들어낸 처연한 실존적 삶의 찬란함이다.


길은 되돌아보면 그 길이가 줄어드는 법, 늘어나기만 하는 내디뎌야 할 길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되돌아본 길에는 늘 아침 안개가 서려 있다. 안개는 오후가 되면 순순히 걷히면서 찬란한 햇살아래 지나온 길의 풍경 하나하나를 실감 나게 재생시켜 줄 것이다. 흔쾌히 되살아나는 추억은 레미니선스의 작용으로 더 생기를 띤다. 그 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쓸쓸한 존재의 자태는 사라지고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인상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