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로방스 2화
나의 프로방스 여행은 생 레미(Saint Rémy)로부터 시작되었다. 몽펠리에(Monpellie)[1]를 출발한 버스는 한 젊은이를 생 레미에 내려놓았다. 1991년 봄이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만들어낸 뿌연 수증기는 열기에 약한 기관지를 자극했다. 흩날리는 꽃가루는 시야를 어지럽히면서 애꿎은 후각만 마비시켜 갔다.
잔기침 속에 걸어간 로마 유적의 폐사지는 시간이 멈춰 있는 고대 도시였고 의식을 뒤흔들만한 역사적 자장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젊었고 폐허의 분위기에 함몰될 정도로 서정의 추락과 감정의 기복 속에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 고대 도시는 차라리 순간의 희망에 목 매인 한 젊은 문학인의 초상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날들을 거꾸로 비춰주던 봄날의 상징이었다.
죽음보다는 삶을, 딱딱함보다는 말랑말랑함을, 추락하는 가벼움보다는 상승하는 묵직함을, 되돌아봄보다는 앞으로 나아감을 믿고 싶었던 한 젊은 존재를 저 고대의 굳게 닫힌 빗장을 풀고 역사의 공간으로 진입하게 만든 계기로 작용했다.
시간이 멈춘 선사시대의 유적과 뒤엉킨 로마 유적의 폐사지는 시간이 멈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역사는 긴 행진을 멈추고 돌 틈에 숨어버린다.
하물며 폐사지에서 역사적 사건과 그와 함께 하던 주역들을 발견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 이름이 선사시대의 유목민이든, 제국의 문화에 심취한 갈리아 인이든, 식민화의 길을 충실히 걸어간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뒤따르던 로마 제국 신민이든, 제국에 맞서 피 흘린 베르생제토릭스(Vercingetorix)가 이끄는 갈리아(프랑스의 옛 표기)의 원주민이든, 그 모두는 역사적 사건의 한 중심에 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폄하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마냥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남발하는 것도 치졸한 짓일 뿐이다.
시간은 되돌려질 수 없지만, 역사의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시간이 멈춘 공간 속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릴 수 있고, 역사의 주역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들이 먹던 음식까지도 엿볼 수 있다.
여행은, 유적지 답사는 이 모든 걸 가능케 해 준다. 그렇기에 역사 유적지는 그저 버려진 폐허가 아니라 저 아득한 시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의 다발을 풀어헤치는 역사적 공간에서 상상의 공간으로 이행하는 살아 숨 쉬는 문명의 장이며, 인류의 역사 또한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퇴행하기도 하고, 물 흐르듯 천천히 흘러가기도 하면서 혁명을 통해 갑자기 시대를 건너뛰기도 하는 것이다.
프로방스에서의 여행의 시작은 그렇듯 역사의 현장이자 폐허로 남은 인류 문명의 폐사지였던 글라눔(Glanum)의 생 레미에서였다.
[1] 프랑스 남서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랑그 독(Langue d’Oc) 지방의 에호(Hérault) 도(道)에 속한 고대 로마 문명이 정착하여 번영을 누렸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