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로방스 3화
[대문 사진] 생 레미 인근의 고대 도시 글라눔(Glanum)
생 레미 지역에 최초로 원주민들이 거주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그러나 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후로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이들은 갈리아 원주민들이었다. 그들이 이 땅에 본격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년 경으로 마시프 데잘피유(Massif des Alpilles)[1]에 속한 산악지대의 동굴 근처 샘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따라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이 지역이 풍요롭다는 걸 의미한다. 더군다나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은 외부 침입에 쉽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해 땅까지 비옥하다 보니 정착민은 점차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바로 그런 곳에 그리스 문명이 유입되자 도시가 건설되기에 이르는데, 마르세유(이들은 ‘막세이’라 발음한다)로부터 유입된 헬레니즘 문명은 신성하면서 치유의 샘으로 알려진 샘에서 발원한 물줄기 주변의 비옥한 옥토에 도시를 건설하게 만들었다. 이후 기원전 2세기 로마 제국 문명이 다시 유입되면서 로마인들은 갈리아 인들이 신성시하는 그들의 도시 글라눔(Glanum)에 매력을 느낀다. 결국 로마 제국 시절에 글라눔은 프로방스의 주요한 거점 도시로 성장하면서 번영을 구가하기 시작한다.
프로방스(Provence)란 지명은 ‘시골, 변방’을 가리키는 용어로 로마인들의 입장에서는 수도 로마가 아닌 식민지는 모두 변방으로 간주했다. 그렇듯 로마 제국의 변방은 로마를 빼놓은 곳 모두를 지칭하는 용어였겠지만, 라틴어를 기원으로 둔 프랑스어에 입각해서 본다면 ‘지방, 시골’을 뜻하는 프로뱅스(province)란 말이 프로방스 방언으로 고착되어 지금은 고유한 지명으로서의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한마디로 이 땅은 기원전 2세기엔 셀토-리구리아(Celto-Ligurian) 출신의 살리안(Salyans) 인들로, 그리고 다음엔 마르세유에서 내륙으로 진출한 그리스 인들(Phocaeans)로, 그리고 로마 제국 문명이 정착하면서부터는 로마인들로,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마지막으론 라틴 화한 골루아족들이 역사의 주역들로 등장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 고대 도시 글라눔 역시 로마 제국 시대에 지어진 포럼, 신전, 목욕탕 및 극장 건물과 같은 대형 건축물들이 세워진 오래된 도시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번영을 구가하던 이 로마 제국의 변방에 위치한 도시도 제국의 멸망과 궤를 같이하면서 이 땅을 호시탐탐 노리던 야만족의 침략에 저항하지 못한 채 끝내는 260년경에 멸망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글라눔을 버리고 도망쳐 북쪽으로 1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평원에 위치한 작은 이웃 마을 생 레미 드 프로방스(St Remy de Provence)에 정착한다.
글라눔과 고대인들
생 레미 드 프로방스(Saint Rémy de Provence)가 형성되기 전에 글라눔(Glanum)의 오피둠(oppidum; ‘요새’를 뜻하는 고대 로만어)은 아피유(Alpilles)의 산기슭에 건설되었다. 오늘날 보게 되는 이 고대 갈리아 도시는 로마인들이 지은 건축물들이며, 그들이 믿었던 ‘신성한 샘’ 주변에 지어졌을 뿐 아니라 다양한 고대 로마 문명이 집약적으로 정착한 곳이다.
이 오래된 역사 도시를 발굴한 이들은 3명의 고고학자들이었다. 20세기 초까지 깊은 잠을 자던 글라눔을 발견한 고고학자들, 그 가운데 피에르 드 브룅(Pierre de Brun)의 주장에 따르면, 여기저기 관광책자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글라눔의 지명의 기원에 대한 주장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란 것이다. 즉, 도시명 글라눔의 기원이 된 글란(Glan)이란 용어가 갈리아 인들이 믿는 신(神)을 가리키는 이유를 들어 글라눔이란 도시명이 생겨났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글라눔이란 도시명은 ‘물(水)’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고고학자의 조심스러운 견해다.
고고학자 피에르 드 브룅은 한 마디로 Glan 또는 Glane란 용어의 변천 과정을 유의 깊게 살펴보면서 이 용어가 프랑스의 강 이름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제시한다. 일례로 푸아투(Poitou)의 오라두르 쉬흐 글란(Oradour sur Glane)이 그 경우에 속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또는 네덜란드의 강 이름과도 궤를 같이하지만, 신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글라눔이란 지명은 고대 도시 이름에서 기원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Glano(갈리아 명칭), Glanon(헬레니즘 시대), 마지막으로 Glanum으로 변천했다는 것이다.
[1] 복수형 알피유(Alpilles)는 알프스의 프로방스 방언으로 항상 복수로 표기한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알피유 대산괴(大山塊)’라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