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갈리아 도시

나의 프로방스 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기원전 20년에 들어선 포럼


기원전부터 그리스에 의한 지중해 무역이 개방됨으로써 지중해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었다. 지중해는 그리스인, 에트루리아인, 페니키아인, 이베리아인, 리구리아인 등 지중해와 국경을 접한 모든 민족에게 상업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접촉과 교류의 장소였다.


프랑스 남단 서쪽 지역에 처음 그리스 인들이 도착한 것은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경이고 그리스 인들은 지중해 서부에 자리 잡은 마르세유에 첫 발을 디딘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600년경 포카이아(오늘날 터키의 포사)인들에 의한 막살리아(Massalia; 마르세유 옛 표기)의 개척은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리스인들이 이 새로운 장소에 매력을 느낀 주된 이유는 원자재, 특히 금속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글라눔이 지닌 막살리아의 근접성과 오피디움의 지리적 위치는 확실히 막살리아에 거주하는 그리스인과의 교류에 유리했다. 그리하여 그리스 영향을 받은 살리안 족은 처음으로 지중해 무역에 참가하게 되고 지중해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의 교류 역시 빈번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이 고대 도시는 번영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영향은 2세기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기원전부터 큰 도르래를 사용하여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었던 헬레니즘 문명기의 그리스 건축술이 도입되면서 성벽이나 그리스 신전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건축물들을 손쉽게 지을 수 있었다.


이 오래된 성벽 도시는 살리엔 성벽을 넘어 주택과 불루테리온(Bouleutérion)과 같은 새로운 그리스 형 건물을 지으면서 확장되었다. 가장 주목할만한 예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리스 유형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에서 저명인사들이 모여 중요하다 싶은 안건을 토의하던 회합의 장소 블루테리온의 건립이었다.


헬레니즘 문명의 도입을 예증해 주는 기원전 20년 로마 식 최초의 포럼 불루테리온(Bouleutérion).


글라눔의 불루테리온은 살리안 인들의 도시에 사는 저명인사들이 모여 중요한 안건을 토의하는 헬레니즘 유형의 집회 장소였다. 3개의 층으로 쌓은 계단이 둘러싸고 있는 이 직사각형의 야외 홀과 3개의 기둥이 있는 넓은 현관으로 구성된 집회소 강당에는 연사를 위한 작은 설교단과 화환과 황소 머리로 장식된 중앙 원형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드로모스(Dromos) 우물과 마찬가지로 헬레니즘 시대에 지어진 이 기념비 적인 건축물은 프랑스에서 발견되는 거의 유일한 그리스 헬레니즘 시기의 건축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소위 ‘갈로-그리스’ 어로 된 비문이 그리스 알파벳으로 씌어지긴 했지만, 켈트어로 번역된 그리스 문자가 틀림없어 보이는 ‘글라눔 지역에 존재하는 신’을 가리키는 ‘ΓΛΑΝΙΚΩΝ(Glanics)’이란 문자가 찍힌 은화에서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예들은 현재 글라눔이라고 부르는 도시에 대한 그리스 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확실한 예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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