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시기의 글라눔

나의 프로방스 5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개선문 형태의 중앙 통로


그리스의 영향은 이 오래된 도시의 번영을 반영하는 것과 동의어이지만, 알프스에서 피레네 산맥까지 뻗어 있는 영토에 대한 로마의 영향은 이 도시를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이 오래된 도시는 살리엔 전쟁 기간 동안 지속적인 파괴를 겪었다. 기원전 125년, 살리안 족의 수도인 앙트르몽의 오피둠은 집정관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의 군단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런 다음 그는 아쿠아 섹스티(Aquae Sextiae)라는 도시를 건립했다. 오늘날 프로방스 지방의 수도로 불리는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를 가리킨다.


로마 제국의 상징은 포럼(Forum)이다. 글라농(Glanon)의 시민 및 종교 건축물은 주거를 위해 해체되고 로마 기념비적인 포럼을 비롯하여 대성당, 마구간이 지어졌다. 온천탕과 승리의 분수 역시 들어섰으며, 대산괴의 중심부에 있는 부지 남쪽에 건설된 저수조에 고인 물은 수로로 도시에 공급되었다.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기간 동안 도시의 이름은 라틴어화 되고 글라농(Glanon)은 글라눔(Glanum)으로 바뀌었다.


로마 제국 시기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보여주는 유적. 바실리카 양식의 기둥들과 포럼 일부가 남아있다.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갈리아를 정복한 이후, 글라눔(Glanum)은 오피둠 라티눔(oppidum latinum)으로 변모했다. 이 도시에 사는 글라니쿠아인(글라눔에 살던 주민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라틴어 법’을 충실히 쫓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방 행정관으로 선출될 수 있었고 일부는 로마 시민권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이때 도시는 북쪽으로 계속 확장을 거듭했다.


도미티아의 길로 불리던 ‘비아 도미티아(Via Domitia)’의 교차로에 있는 개선문은 이 도시가 로마 제국 시대에 발전을 거듭했음을 상징하는 표지다. 그 옆에는 이 도시에서 태어난 토착 엘리트의 일원이었던 쥴리(Julii)를 기념하기 위한 영묘가 세워졌으며, 특히 갈리아 전쟁 중에 로마 제국은 이 도시를 제국의 명예를 드높인 군사 협력 도시로 지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기 100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통치 아래 도시는 제국 숭배를 섬기는 2개의 쌍둥이 신전을 포함하여 권위 있는 제국의 도시로 거듭난다.


헬레니즘 시대부터 시작된 글라눔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도시 남쪽 일부는 인자한 여신을 숭배하는 데 바쳐졌다. 방문객들을 위하여 벤치가 놓여있는 까닭에 한 걸음 쉬었다 갈 수 있는 이곳엔 대지의 여신인 키벨레와 인자함의 상징 보나 데아(Bona Dea) 신을 숭배하기 위해 마련된 성전이 자리 잡았다. 키벨레 신전을 지키는 사제들은 봄만 되면 아티스 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소나무를 여신의 성소로 운반해오곤 했다.


전설에 따르면, 키벨레의 연인인 아티스는 그녀가 님프 사가리티스와의 결혼을 반대하자 미쳐버렸다고 전해진다. 양심의 가책에 휩싸인 키벨레는 그녀를 소나무로 변신시키고, 그럼으로써 소나무는 이 도시에서 그리스 신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보나 데아(Bona Dea)에게 바치는 비석.


서기 100년 같은 해 봄 즈음에 이 도시가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이 살기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로마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도시를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자 주민수도 급격히 늘어나면서 도시는 확장을 거듭했다.


외곽에 건강을 비는 여신 발레투도(Valetudo)와 헤라클레스에게 봉헌된 신전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들어섰는데, 당시 식민지 속주 총독과 황제의 사위인 아그리파(Agrippa)가 입회할 정도로 로마인들께는 두 그리스 신들에게 바쳐진 대단히 흥미로운 신전이었다.


글라눔 입구에 세워진 개선문과 영묘(L'arc et le mausolée de Gla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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