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보 드 프로방스

나의 프로방스 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생 레미 드 프로방스를 향해 가던 길에 되돌아본 레 보 드 프로방스


기억으론 2017년 막 가을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오로지 낡은 올림퍼스 디지털카메라 한 대만 들고 아내와 지인과 함께 떠났던 프로방스 여행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순간이었다.


파리 리용역을 출발한 테제베(TGV)는 5시간 만에 니스 중앙역에 우리 세 사람을 내려놓았다. 역 근처서 차를 빌려 타고 코다쥬(Côte d’Azur)의 알프스 단애 끝단의 마을들을 돌아 아흘르까지 흘러든 뒤에 1991년의 기억을 되살려내면서 마침내 알퐁스 도데의 소설에 등장하는 풍차마저 건너뛴 채 막 프로방스의 심장으로 들어서던 찰나였다.


그런 우리의 일행을 알피유 대산괴 줄기가 가로막고 나섰다. 생 레미 드 프로방스로 가는 길을 막아선 언덕 위의 요새 마을, 그곳이 바로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aux de Provence)였다.


Les Baux-de-Provence 7.jpg 프랑스 여행을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한다는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aux de Provence).


숨이 막혔다. 이 기나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곳은 아니었으나 숨이 막히는 것은 30년 내내 찾았던 프로방스에서의 정처 없는 떠돎에 방점을 찍은 곳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역사에 홀렸던 것이 틀림없었다.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 주역들에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극화(劇化)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극히 어설픈 역사관에 입각하여 이념의 자를 들이대면서 그들을 미화하거나 깎아내리는 일은 허구를 만들어내는데 재미를 붙인 소설가의 몫이다. 시인은 그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재미 때문에 ‘진정한 역사’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심상!


1991년으로 돌아가면, 2017년은 사진 한 장마저 남기지 못한 실수 아닌 실수가 왜 후회막급한 심사를 낳았는지를 여실히 방증하는 예에 속한다. 1991년 그 해 봄날 내가 걸어 올라간 요새 마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중세에 대한 호기심에 찬 답사였다. 이렇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글라눔과는 달리 보 드 프로방스는 중세 때 산꼭대기에 들어선 요새로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chateau-baux-de-provence.jpg 중세 때 지어진 레 보 드 프로방스의 성채.


산꼭대기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이웃한 적의 동태를 쉽게 관찰할 수 있고, 적의 침입에 대비할 수 있으며,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럽 남쪽에서 발견되는 중세 마을들이 마치 독수리 둥지처럼 모두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석회암 지형은 지하수가 풍부하긴 하나 산꼭대기 정상 부분은 지하수를 찾기가 어려워 인근에 위치한 샘물이나 강물을 길어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평지는 조금만 땅을 파도 쉽게 물을 찾을 수 있고,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우물도 금방 찾을 수 있으며,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도 한몫 거든다.


“태초에 물이 있었나니.”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인류에게 마실 물을 구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탈리아의 중세 마을 오르비에토는 인류의 물에 대한 무한한 갈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산언덕 마을이다. 오르비에토 우물은 ‘우물’이 지닌 상징성 그 이상의 것이다. 오죽했으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으로 이어진 박물관 계단을 오르비에토의 우물을 연상시키는 나선형 계단으로 만들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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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기에 설치한 브라만테 계단(왼쪽), 오르비에토 우물(가운데), 바디칸 박물관 출구를 향한 계단(오른쪽).


인류의 역사적 실체마저 신화화되고 신비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걸 비아냥댈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물과 요새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 개의 상징체계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버스에서 내려 프랑스어 가이드 뒤를 쫓아 언덕 마을로 향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다. 설렘으로 아침 일찍 눈을 떠 반쯤 혼곤함에 시달리는 가운데 경사진 언덕길 가파른 계단에 이르니 정신마저 아찔해진다. 계단을 올라서야 요새는 차치하고서라도 마을에 진입할 수 있다.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자 언덕 아래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모처럼 시원한 느낌처럼 걸어올라 간 계단 수만큼 언덕 아래 마을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Le vallon de la Fontaine, au pied du village.jpg 계단을 올라 서자 발치 아래 ‘샘이 있는 작은 골짜기’란 뜻을 지닌 르 발롱 드라 퐁텐느(Le vallon de la Fontaine)가 한눈에 잡힌다.


땀 흘린 자의 노고는 보상받을 길 없을 것이나 언덕에 올라서자 자그마한 성당을 비롯하여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골목길, 부산하게 오가는 관광객들 틈에서 언덕 아래의 전망은 더 이상 내려다볼 틈이 없다.


Ruelle_Baux-de-Provence_2021_2.jpg 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광장, 겨울엔 인기척마저 들리지 않지만, 한 여름 이 작은 광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차라리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루살렘의 좁은 골목길이 더 인간적이다. 나폴리의 골목길은 어떠한가? 어둡고 좁은 통로를 지나야만이 확 트인 전망이 나타나는 신비, 건물이 앞을 가려 그늘지고 어수선하게 갖가지 빨래들이 널려 있고 골목길을 벗어나야만이 모습을 드러내는 바다, 이처럼 인간적인 골목길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시야는 한정되기 마련이고 앞만 보고 쫓아가다 보면 주위의 건물들이나 가게들, 정경들, 화분 장식에까지 일일이 눈길을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점이 가이드 투어가 맘에 안 드는 제일 큰 이유다. 프랑스 역사에 해박한 프랑스어 가이드라 해서 이런 세세한 점까지 챙길 줄 아는 섬세함은 기대할 일이 못된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 곳, 무한대의 시간이 흘러가는 곳, 비옥한 농경지에 자리한 포도밭이 구릉을 이루는 마치 바다를 품고 있는 것처럼 파노라마가 펼쳐진 곳, 나는 그곳만이 보 드 프로방스라 명명하지 않는다. 보 드 프로방스는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라센, 무소불위의 세력을 떨쳤던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프로방스의 중세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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