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레 보 드 프로방스

나의 프로방스 9화

by 오래된 타자기


렌터카를 길가에 주차시키고 마을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간다.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걸음을 내딛을 때면 예전에 이 마을을 찾았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그러나 가물가물한 기억밖에는 없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기도 한다. 좀처럼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 답사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지만, 여행은 짧은 시간 안에 스치듯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기억하려고 해도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레 보 드 프로방스 하면,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성채가 떠오르고 사라센 망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라는 것쯤은 기억이 되살아날 법도 하다.


사라센 망루에서 바라보는 풍경.


문 닫을 시간이니 서둘러 돌길을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때는 9월 한창 가을로 접어드는 청명한 날씨덕에 돌길은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때늦은 점심을 드는 사람들,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이들,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간만의 휴식을 즐기는 눈빛이 역력하다. 머리에 모자를 쓴 이들이 많은 걸 보니 프로방스의 햇빛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개중에는 그저 망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는 이들도 많다. 관망자의 시선!


다시 시계를 살핀다. 아직 여유가 있다. 점심은 알포스 도데의 풍차가 있는 마을에서 들었으니 성채를 돌아보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켜면 되겠다 싶다. 문제는 발길을 잡는 카페들을 외면하기가 참 어렵다는 점이다. 나 역시 저들처럼 파라솔아래 앉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을 갖자면 여행의 시간을 더 길게 잡아야 하니 그게 문제다. 오늘은 저 언덕길을 넘어 생 레미 드 프로방스까지 갔다가 액상 프로방스로 가서 잠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 호기심에 찬 눈으로 지나다니는 이들을 바라보며 저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며칠이나 묵을까? 레 보 드 프로방스는 어떻게 알고 왔을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 오지까지 올 수 있었을까? 참견을 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그의 아들 찰스 왕자(지금은 국왕이 되었으니 찰스 3세라 불러야겠다)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 호텔에서 묵으면서 주변을 훑어보고자 계획한 걸까? 아니면 여기 사는 자칭 예술가인가?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고흐나 세잔, 피카소 또는 야수파의 화가들을 좋아한 까닭에 그들이 거쳐간 예술가들의 성지이기도 한 이 요새 마을을 거쳐가고 싶은 이들일까? 하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 그러나 모르겠다. 밤이 되기도 전에 내 프로방스에서의 여정도 뒤엉켜 하루 종일 운전만 했다는 피곤함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생각해 봐야겠다. 나 역시 이곳을 다시 찾아온 이유에 대해!


마을의 길들은 모두 돌길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여행안내 사무소가 나오고 온갖 차림의 여행객들로 바글대는 그 비좁은 광장에서 미로 찾기 하듯 샤토(Château) 표지판을 보며 걸어 올라가면 자칭 동방박사 가운데 한 명의 후손이라 여긴 레 보(Les Baux) 가문의 성채가 나온다.


샤토 뜨락에서 바라본 망루.


성채는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그 아래쪽은 중세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점차적으로 확장된 마을이다. 샤토는 레 보 가문의 마지막 공주 알릭스(Alix)를 끝으로 더 이상 후계자가 없었던 관계로 맥을 다하고 개신교도들의 성지였던 이곳은 루이 13세가 보낸 리슐뢰이에 의해 종말을 맞게 된다.


성채는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그 아래 마을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
레 보 드 프로방스 마을에 나붙은 샤토의 마지막 주인공 알릭스 공주 찾기 놀이 포스터.


오늘날 보는 폐허는, 앙상한 유적으로 남은 이 성채는 구교도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멸망의 길로 들어선 그 흔적과도 같다. 종교란 이름으로 행해진 살육과 파괴는 이뿐만이 아니겠지만, 특히 개신교도들의 성지였던 랑그독(Langue d’Oc)과 프로방스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의 여파는 역설적이게도 왕국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폭발력을 지닌 것이었고 국왕의 권위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성채가 이처럼 앙상한 뼈대만 남은 이유는 주변에서 건물을 짓기 위해 돌을 뜯어가는 바람에 더 심각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자유로운 사상과 문화의 용광로였던 프로방스가 파리에 수도를 둔 국왕 루이 13세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그의 아들 루이 14세에 이르러서는 왕국의 변방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레 보 가문의 성채도 버려지고, 마을도 파괴되어 19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인구 3천 명의 마을이 고작 주민 400명이 사는 촌락(village)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역사의 흐름 속에 레 보의 폐허뿐인 성채는 모나코 왕국을 건설한 가리발디에 건네지고, 가리발디가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은 덕에 전통에 따라 모나코 국왕 알베르가 이곳 레 보(Les Baux) 성주의 자격으로 후작 지위를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해지기도 한다.


폐허뿐인 성채로 걸어가면서 그처럼 나는 역사의 변전으로 말미암은 폐허로 남은 성채가 지닌 의미는 뭘까 한참 생각에 잠긴다.


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aux de Provenc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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