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화
프랑스 갈리마흐(Gallimard) 출판사에서 폴리오(Folio) 문고판으로 간행된 소피 쇼보(Sophie Chauvau)의 『마네의 감춰진 비밀(Manet Le secret)』을 처음 접한 것은 ‘여행 중’이었다. 책으로의 여행이 아니라 인간 숲으로의 여행이었다. 파리에서 온갖 인종, 온갖 부류의 인간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히면서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과연 무얼 의미하는가?”라는 고통스러운 고민으로부터 한사코 벗어날 수 없었던 때였다. ‘이방인’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붙는 자의식도 한몫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파리 기차역, 기차역 안에는 서점이 있다. 얼마나 파리 다운 발상인가? 파리 리용 역 안에 있는 서점의 가판대에서 무심코 집어 든 책이 바로 『마네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다.
대충 훑어보다 본격적으로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것은 코로나가 가져다준 폐해였다. 코로나 때문에 집 밖으로 외출하지 못하다 보니 방 안에 틀어박혀 책 읽는 삼매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곤혹스러운 상황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그런 탓에 나는 이 책을 즐겁고 재밌게 읽은 게 아니라 곤혹스럽고도 고통스럽게 읽었다.
책을 읽는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끔찍한 일도 겪었다. 손위 동서 형님이 돌아가시는 아픔도 겪었다. 이제는 내 차례인가? 하는 불안감 속에 책장을 넘기면서, 타이핑을 하면서, 활자의 난무를 지켜보면서, 사전을 뒤적이면서, 술잔을 홀짝이면서, 때늦은 식사를 하려고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새벽 커피 한 잔이 주는 매혹에 빠져들면서, 나는 ‘마네’와 ‘세상’이라는 화두를 떠올렸다. 인터넷을 멀리한 탓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내는 것은 오직 아내의 몫이었다.
참으로 무능한 남편이었다. 남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직 책 읽고 글 쓰는 일에만 매진했으니 할 말이 없다. 세상의 남편들을 대신해서도 참 부끄럽기 짝이 없고 민망한 시기였다.
그 원고를 오늘 다시 읽어가면서 <브런치 스토리> 매거진에 소개하는 지금, 유튜브를 통해 방영되는 국내 뉴스는 오직 두 사람 ‘이재명과 김문수’ 이야기뿐이다. 지겹고 징그럽다! 그 두 사람이 무슨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마네는 무심히 저 유명한 「뚜께의 백사장」(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을 그렸다. 동생이 정치의 길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따르는 당시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던 감베타(Léon Gambetta)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마네가 뒤늦게 초상화 한 점을 남긴 건 동생의 종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린 것이다. 나 또한 정치인은 입 밖에 꺼내고 싶지 않다. 다만 마네가 그림으로 남긴 대서양가에 위치한 뚜께(Touquet)는 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지역구라는 점만 밝히고 싶다.
가장 정치적일 수 있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귀스타브 쿠르베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 왜였을까? 선정적인 것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능란한 필치의 재능을 뽐냈던 마네였지만, 그건 화가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는 리얼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인상파 화가이기도 거부했다. 그는 오직 파리지앵이자 화가 에두아르 마네로만 남고 싶어 했다.
파리 16구 에펠탑이 바로 보이는 파시(Passy) 공동묘지에는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잠들어 있다. 공동묘지에 자리한 마네의 가족묘에는 아내와 마네가 한때 사랑한 여인이자 제수씨였던 여인도 함께 묻혀있다. 이 불가사의를 언론인 출신 여성작가 소피 쇼보가 들려준다.
소피 쇼보는 소설로서 『거짓말쟁이 미녀들』과 『엘렌의 추억』을, 에세이집으로 『에이즈와 싸우는 동안 산산이 부서진 사랑의 찬가』를, 또한 사랑의 기술과 언어에 관한 심도 있는 글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지난 4년 동안 준비 중인 피렌체 르네상스 시대에 관한 『보티첼리의 몽상』과 『다빈치의 집념』과 함께 삼부작 맨 첫머리를 장식할 『리피의 열정』을 위한 자료를 수집해 왔다. 『풍기 문란한 천재 디드로』와 함께 계몽주의와 백과전서 시대와 관련한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프라고나, 행복의 발명』을 집필하면서 18세기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2013년에 펴낸 『숯의 혼인』으로 2014년에 갠스 재단이 수여하는 폴 훼발 문학상을 수상했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원제목은 『마네, 알려지지 않은 비밀』)은 1870년의 보불 전쟁과 오스만 도시 개발에 열광한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희대의 사건이었던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나폴레옹 3세가 주최한 미술전람회에 출품되면서 일어났던 소동을 작가의 인생에 비추어 조명한 저작이다.
대단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목을 비틀 만큼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거나……
- 폴 베를렌느
그림을 그린다는 건 지적인 작업이다.
우리는 그걸 마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 파블로 피카소
아름다움과 예술이 서로 두 갈래로 나뉜
백주 대낮에 현대 미술이 태어났다.
- 앙드레 말로
내 삶은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점철되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곤경에 처한 삶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단 한 차례도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다.
- 앙리 미쇼
그림 속의 벌거벗은 여인은 전혀 외설스럽지가 않습니다.
그건 단지 예술작품으로 그렇게 제작되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 드니 디드로
이야기해야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그저 저녁인사에 지나지 않는다!
직업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교감이 필요하다.
학문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우리 화가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상상하는 것만이 훨씬 값진 일이다.
- 에두아르 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