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자각이 싹트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2화

by 오래된 타자기


참된 예술이 무언지를

아울러 전혀 고갈되지 않을 샘물을 길어 올리듯

독창적 세계를 구현해 나간 진정한 화가가 누구인지를

내게 깨닫게 해 준

프레데릭 브랑동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고 싶다.

꺼칠꺼칠한 감촉뿐인 화폭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그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들어갔노라. 그리고 마침내 이해했노라.

여전히 세상을 흔들고 있는

여전히 스스로 진동하고 있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

이제야말로 화가의 시선을 통해 회화 작품을,

그것도 마네라는 거대한 예술 세계를 알게 되었다.


화가인

친구에게 감사하며.


소피 쇼보

Sophie Chauveau



1장 1
(1832-1848)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무시무시한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아르튀르 랭보



누구나 어린 시절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의식이 싹트는 순간이 있다. 분명한 실체를 띠지는 않지만, 명료하기만 한 자각이 시작되는 그 순간이야말로 이제 유년기가 끝났다는 걸 예고해 준다. 그러나 그걸 정확하게 눈치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마네의 어린 시절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느 날 어린 마네가 자신이 정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무언지를 분명히 확신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싶지 않을뿐더러 아버지의 삶과 같은 삶을 결코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이었다.


내면에 싹튼 이 같은 명료한 생각은 느닷없이 생겨난 것이면서 지독할 정도로 자의식을 형성한 덕에 앞으로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쪽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이러한 강한 자의식으로 말미암아 에두아르 마네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날개마저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무모한 짓이라 할지라도 그걸 감행하게 해 줄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난 셈이다. 이제 나이 겨우 13살, 아버지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이였다. 반항심은 점점 내면에서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폭발에 이를만큼 정도로 격렬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기력 자체를 표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잠재화된 불만이 표출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아버지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갔지만, 마네는 자신의 형제들과 더불어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반은 존경의 의미를 띠면서도 반은 조롱에 찬 존칭을 구사할 정도로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절대 그와 같은 불만이나 적개심을 표출하지 않으려고 상당히 조심했다.


에두아르, 으젠 그리고 귀스타브 마네 삼 형제는 허세를 부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아주 부유한 중산층 부르주아 집안의 음산한 기류와 준엄한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에두아르 마네 역시 그런 신분에 자신이 속해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자신을 위한 날이 닥쳐올 것도 예감하고 있었다.


아뿔싸!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에두아르는 이제 더는 자신을 억누르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신 안에서 싹튼 이 처음으로 겪는 참신한 각성은 그에게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각성은 원대하고 기운찼다. 아니 너무나도 강렬해서 그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려 스스로 조심해야 할 판이었다. 에두아르는 마침내 아버지 앞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전 공부 하고 싶은 맘이 없습니다. 저마저도 ‘법학’을 공부해야만 한다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찰 때까지 에두아르는 여느 아이들처럼 온순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아버지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두 형제들처럼 에두아르 역시 더 이상 말썽을 피우거나 버릇없이 구는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란 탓이었다.


적어도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반항심이 폭발하던 1845년까지 에두아르는 말을 잘 따르고 고분고분한 성격을 지닌 아이였다.


그러나 점점 위험을 무릅쓰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려는 강한 성향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완고하면서도 강직하기만 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정서적으로 차분하고 열정적인 꿈에 젖어 들어갔다.


귀스타브는 정확히 에두아르와 3살 차이였고 으젠은 에두아르보다 1살 어렸다. 두 아이들은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고 체격도 커다란 형인 에두아르를 쳐다볼 때마다 부러운 듯이 우러러봤으며, 햇살 가득한 날 놀이터에서 장난을 치는 날에는 자신들보다 힘이 센 에두아르가 다칠 것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위험한 장난에 뛰어들도록 부추기기까지 하는 것에 놀랐다.


수줍음을 잘 타면서도 허풍을 떠는 데 한 성격을 하던 에두아르는 스스로 무언가를 다짐하기 위해 되뇌던 말 한마디가 있었다. 그 말은 ‘나중에’란 말이었다.


훗날을 기다리는 듯한 이 말을 에두아르는 늘 되풀이해서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무언의 동의를 표하는지 항상 눈여겨보면서, 게다가 은밀한 지원을 해주기를 기대하기까지 했지만, 에두아르는 결코 그런 상황에 이르지는 못했다.


에두아르의 모친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입장에서 행동하느냐 아니면 자신이 낳은 세 명의 아들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행동하느냐를 놓고 따져보면 항상 그녀 스스로 작정한 쪽으로 행동했다. 그녀가 생각할 때 장남은 가족의 모든 기대가 걸린 존재였다.


그래서 모친인 그녀는 장남인 에두아르를 늘 애정을 다해 보살폈으며, 집안을 이끌어가고 있는 가장 앞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조차 단 한차례마저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장남이 색채에 눈 떠가면서 그에 대한 꿈을 키워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아이가 나이가 꽉 들어찬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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