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3화
1장 2
(1832-1848)
프랑스 공화력 제4년 12월 14일에 태어난 오귀스트 마네는 35살에 결혼했다. 그러나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아주 이른 나이부터 남보란 듯이 수염을 길렀으며, 존경을 한 몸에 받아야 할 이들이 허세 부리기 좋아하듯, 벌써 젊은 나이부터 으스대는 용모를 띠고 있었다.
일 드 프랑스[1]에 거주하기 시작한 마네 가문의 내력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벌써 2백 년이 넘는 집안의 내력은 물론이거니와 선조들 모두가 모든 공직을 꿰차고 있었다. 재판소의 서기들, 검사들, 구제도 하의 에폰에 있는 즉결 재판소 재판관 – 이 모두는 쟁쟁한 마네 가문의 요람에서 태어났다. – 세리들, 법률가들, 그리고 대를 이어 쥬느빌리에흐(Gennevilliers)의 시장 자리를 독점하고 있었다.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는 거의 100 헥타르에 달했으며, 경작지 모두를 소작농들에 부쳤다. 과거가 미래를 규정하기도 했던 것이다.
가계 혈통에 따른 가문의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에두아르 형제들이 아버님이라 부른 아버지는 좀처럼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경작지들은 모두 물 빼기 작업이 용이했을 뿐 아니라, 매번 시장에 선출되는 행운마저 따랐다. 온 가족이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오귀스트 마네 역시 모든 것이 변함없이 지속되기를 바랐다. 더군다나 그는 아무것도 바뀌는 일이 없기를 학수고대했다.
장장 여덟 세대에 걸쳐 마네 가문은 이처럼 한결같이 꾸밈이 없으면서 잘 재단된 옷차림을 한 분위기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의 장남 역시도 모든 걸 계승해야만 할 처지였다. 이 우중충한 옷차림에 더하여 쥬느빌리에흐 시장 직 역시 부친으로부터 장남인 에두아르가 물려받아야만 할 유산이었다.
자신의 장남이 신앙의 첫 번째 위기를 겪은 그 해에 오귀스트는 쉰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아내가 남편의 의견에 따르고 있었지만, 삼 형제 아들들인 에두아르를 비롯하여 으젠과 귀스타브는 모친을 자신들 편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참으로 나이보다 조숙한 아이들이었다.
오귀스트의 아내는 21살 때 자신보다 나이가 14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의 모든 것을 존중했고 남편의 의견에 따랐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호리거나 하는 수작은 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내에게 연거푸 세 아들을 임신하게 만들었다. 아니면 어떤 곡절이 있었던 것일까?
으제니 데지레 푸르니에는 남편 주위를 맴돌던 여자들보다 천성적으로 훨씬 더 경박한 여인이었다. 변덕쟁이?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옭아매거나 적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프티 오귀스탱 거리에 즐거움이 흘러넘칠 수 있었던 건 오직 그녀 자신에게서, 그녀의 이야기들에서, 그녀의 꿈들에게서, 그녀에 관한 일화와 그녀의 노랫가락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참으로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 난 여자였다. 그녀는 한 마디로 잘라 말해 국왕의 대녀와 같은 존재였다. 아무도 그녀를 무시할 순 없었다. 매시간마다, 30분마다, 15분마다 마치 알람을 맞춰놓은 듯 울리는 건 결혼식 때의 선물이었다.
거실 벽난로 위에 놓여있는 괘종시계는 결혼 지참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결혼할 때 스웨덴 국왕의 사랑스러운 나이 어린 대녀였던 베르나도트가 준 선물이었다. 게다가 시계는 그런대로 잘 작동하고 있었다. 현금으로 6천 프랑 이상 나가는 시계였던 만큼 매시간마다 정확하게 종을 울렸다.
그녀에게 있어서 부친에 대한 기억은 주 스톡홀름 프랑스 대사였던 시기와 맞물린다. 모두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던 부친은 궁정에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쁜 음모를 획책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과 파탄이 번갈아 찾아왔다.
하지만 총명하게도 국왕의 신임을 받은 덕분에 프랑스의 후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침착함이 베르나도트가 왕관을 거머쥘 수 있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프랑스 군대를 총지휘하는 원수는 카를로스 14세란 이름으로 스웨덴 국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덕에 감사하는 뜻으로 국왕은 스톡홀름 부영사 자리에 그를 지명했다. 1824년의 일이었다.
그는 파탄에 이르렀지만 으제니에게 약간의 무엇이라도 도와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더하여 그의 형제였던 포병장교인 에드몽 에두아르 푸르니에를 도와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몽팡시에 공작의 진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기뻐했다.
그는 일 드 프랑스에 속한 마홀르의 집과 함께 프티 오귀스탱 거리의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그들과 함께 공유했다. 그리고 으제니에게 결혼 선물로 살롱에 걸려있는 괘종시계를 선물할 수 있었다.
관능적이고 다정다감했을 뿐만 아니라 멋쟁이였던 에드몽은 사라진 왕국에 대한 향수에 갇혀 오만 여인네들과의 사랑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영혼까지도 군인정신에 투철했던 그는 무언가 군대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에 48 여단 혁명 군대와 결별했다. 다른 이들 모두가 증오하는 대상을 자신은 도저히 용납할 수도 없었거니와 그들의 적개심마저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에서였다.
방탕한 난봉꾼이었던 그가 뒤늦게 왕당파에 합류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동서와 합의에 이를 수 있었을까? 암울하기만 했던 공직생활에 몸이 밴 꼿꼿함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공화주의자들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키우면서 동시에 군주제에 대한 향수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저항하게끔 만들지는 않았을까? 그와 같은 이유로 그 둘은 한치도 서로 합의에 이르는 일이 없었다.
[1]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 :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수도권을 가리키는 행정구역 상 명칭.